• 북의 핵실험으로 한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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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25일 02: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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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의 핵실험 때문에 기존의 여러 담론들이 한가롭게 느껴지게 되었다고 어느 모임에서 한 시인이 말했다. 듣는 순간, 그렇다면 참 큰일이다라는 걱정과 함께,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로구나 하는 생각 또한 드는 것이었다.

    다행이다 싶었던 것은, 사실 그동안 우리는 마치 분단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는 듯이 한가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왔기 때문이다. 남한만의 선진화를 꿈꾸기도 하고 분단국가로는 달성할 수 없는 평화국가나 평등사회를 주창하는 일도 흔했다.

    이런 담론들이 이제 한가롭게 느껴지기에 이르렀다면 그것도 하나의 진보일 법하다. 북은 우리가 ‘실패한 국가’로 낙인 찍어 외면한대서 그대로 사라져주거나 조용히 잊혀질 수 없는 우리 현실의 일부임을 이제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물론 분단을 무시한 담론들만이 공허해진 것은 아니다. 한반도의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위한 구체적인 경륜이 없이 ‘반통일세력과의 투쟁’만을 강조하는 담론 역시 그 어느 때보다 설득력을 잃었다. 모든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논의도 사태를 단순화하고 일방적인 변호에 흐른 이야기로 들린다.

    실감을 잃기로는 분단을 강조해온 또 하나의 세력, 어찌 보면 분단현실을 가장 일관되게 의식하며 철저히 이용해온 ‘보수층’의 담론도 마찬가지다. 한반도의 위기상황으로 마치 기쁨조를 만난 듯 신바람을 내며 남북경제협력과 민간교류의 중단을 부르짖고 ‘국지전(局地戰)을 인내’할 것마저 주장하는 인사들을 보면, 저들이 정말 국가와 사회를 제대로 보수(保守)하려는 세력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든다.

    이렇게 한가하거나 더러 위험하기까지 한 담론들의 문제점이 드러났으니 불행 중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큰일이다라는 생각이 앞선 것은 절대로 한가하지 않은 담론들마저 핵실험의 후폭풍에 날려갈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그것이 야기하는 경제적·사회적 양극화에 대응하는 일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절박한 과제다.

    비록 이제까지 분단한국의 현실과 동떨어진 비판담론이 많았다 해도,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가 안보위기론과 대미의존 불가피론에 휩쓸려버린다면 남쪽 국민들이야말로 북측 핵무기보유의 첫번째 희생자가 되는 꼴이다.

    당장 한미FTA가 발등에 불이다. 미국이 원하고 한국정부도 이미 원칙적으로 수용한 ‘높은 수준의 FTA’, 즉 말 그대로의 ‘무역협정’이라기보다 실질적인 ‘경제통합’에 해당하는 협정이 관철된다면,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지금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심해지고 한반도의 ‘시민참여형 통일’의 길은 더욱 험난해질 것이 뻔하다. 이것이야말로 핵폭탄까지는 아니더라도 전국토에 대한 일련의 융단폭격만큼 두려운 사태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려면 모든 FTA 또는 한미간의 모든 관계증진을 원칙적으로 배격하는 사람들의 투쟁만이 아니라, ‘이런 식의 한미FTA’는 곤란하다는 신중론에 입각한 시민사회의 광범위한 참여와 동원이 필수적이다. 실제로 그러한 연합세력은 점차 힘을 더하여 급기야 대통령이 자신의 판단이 맞고 틀림을 떠나 선의로 추진해온 점만은 믿어달라고 호소하기에 이르렀었다.

    그러나 핵실험 이후 분위기는 다시 급변했다. 북이 핵무기를 가졌는데 FTA협상에서 빡빡하게 굴 때가 아니라는 정서가 만만치 않아졌으며, 심지어 미국의 ‘핵우산’을 받아내는 댓가로 FTA를 내줘야 한다는 소리마저 들린다.

    미국으로서야 그러잖아도 줄 생각이 없지 않은 것을 주면서-아니, 이미 준 것을 새로 주는 양 생색을 내면서?-꼭 받아내고 싶은 것을 받아가는 곱빼기 이득이 무척이나 달콤하겠지만, 미국이 아닌 이 땅의 시민들이 한가하게 지켜볼 일은 결코 아닌 것이다.

    여기서도 기존의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되 새로운 국면에서도 한가롭게 들리지 않는 담론이 절실히 요구된다.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 역시 좀더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서동만 교수가 최근에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표현을 썼거니와(창비주간논평 <북한의 핵실험과 미국의 ‘성동격서’ 전략> 2006.10.17), 북쪽을 향해 소리질러서 북한정권의 전복을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남쪽으로 와서 한국정부가 미국과 좀더 대등한 관계를 이루려는 노력을 견제하고 남한사회에 숭미담론이 창궐하게 만드는 것만으로도 미국정부는 충분히 즐거운 것이다. 게다가 미사일방어 체제를 촉진하고 일본의 우경화를 촉진하는 등의 부대수입도 쏠쏠했다.

    이 모든 것을 미국이 면밀한 계획을 갖고 추진해왔다는 음모론에 동조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압박에 맞선 북의 강경 일변도의 대응이 그간 온갖 이득을 미국에 안겨주었고 드디어 누구보다도 북의 인민과 한국의 시민들에게 괴로운 상황을 조성했지만, 미국 또한 간단히 수습하기 힘든 골칫거리를 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더라도 미국의 목표가 오로지 북을 쳐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북측의 강력한 군사적 대응으로 실패를 거듭해왔다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해석이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한반도의 긴장이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위협한다는 원론적 비판도 좋고 압박과 봉쇄로는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현실주의적 충고도 긴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한국 민중이 그동안 피땀 흘려 이룩해온 경제를 위협하고 민주주의의 후퇴를 방조하며 제반 사회관계의 선진화를 저지하는 정책을 ‘우방’을 자처하는 나라가 이렇듯 집요하게 계속해도 되느냐고 따져야 한다. 이런 의미의 ‘미국책임론’은 한참 더 확산될 필요가 있으며 그 일을 놓고서는 아무도 한가해질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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