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을공동체와
    하나가 된 신앙공동체
    [그림 한국교회] 홍천 도심리교회
        2020년 11월 17일 10: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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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형제들이여, 나의 형제들이여, 하느님께서는 내가 겸손한 길을 가도록 부르셨으며, 나에게 단순함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이 세상에서 새로운 종류의 바보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으며 이런 인식 이외의 다른 인식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기를 원하지 않습니다.”(<오직 사랑으로>(리처드 로어, 한국기독교연구소 2020, 61쪽)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겸손하고, 단순하고, 바보처럼 살았다는 성 프란치스코의 고백이 떠올랐기 때문인지, 지난달에 만난 도심리교회 홍동완 목사님에게서 성인이 자꾸 연상되었습니다. 더구나 옛 도심리교회당이 프란치스코가 나병환자의 상처를 치료해주던 작은 교회당 같은 인상을 주어서 더 그랬을 것입니다. 작년 2019년 4월, 여러 종단의 종교인들과 함께 이탈리아 수도원과 교회를 탐방했을 때,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대성당이나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보다 성인이 나병환자들을 온몸으로 돌보던 작은 교회당이 자주 기억납니다. 홍 목사님은 크리스챤아카데미의 ‘목회아카데미’에서 여러 번 선교적교회 사례발표자로 수고하였는데, 도심리교회 증언을 들을 때마다 감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월 24일에 방문하여 직접 교회를 둘러보고 이야기를 들으니 감동 이상이었습니다.

    열두 골짜기로 이루어진 도심리의 맨 끝에 서 있는 옛 예배당은 곱게 물든 수목들과 기막히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홍 목사님이 벽돌을 찍어서 지은 열 평 예배당은 아늑하였고, 설교단 뒤 숲이 보이는 작은 창문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상징이랍니다. 교회 앞 오른편 등성이의 마을주민들과 공동경작하는 2700평의 밭은 마을과 하나됨의 상징처럼 보였습니다.

    사실 이 아주 작은 교회당조차 기적이었습니다. 2002년 3월, 선교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이 산골로 들어왔을 때, 주민들은 큰 돌과 통나무로 차량 통행까지 막았습니다. 홍 목사님의 요청으로 열린 반상회에서 주민들은 장애인을 수용하거나 기도원을 세우지 말 것과 환경오염을 하지 않는다는 서류에 도장을 찍게 했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예수 믿으라고 말하지 말 것을 약속하라고 요구받았을 때, 그는 순간적으로 지혜를 얻어 동의하며, “그래. ‘말’로 하지 않고 예수의 복음과 사랑을 ‘삶과 행동’으로 전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목사’가 아닌 마을의 막내를 자처하며 주로 노인들인 주민들의 모터 펌프나 TV 등을 수리해주고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았습니다. 의구심과 비방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삼 년째 되는 해, 목사인 그는 마을의 정월대보름 거리제사에서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 제사에서 홍 목사님이 복음전파의 기회로 여기고 큰 소리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소출을 주셨다고 감사기도를 드렸을 때, 노인들이 “아멘”하고 화답했답니다.

    2008년 7월, 칠순잔치에서 술이 거나하게 취한 주인공 할아버지가 그에게 “우리 마을에서도 낮엔 일하고 밤엔 기도하고 찬송하는 교회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였습니다. 술김에 한 말이려니 했는데 그분이 도심리의 첫 번째 세례자가 되었답니다. 이렇게 도심리교회가 시작되어 기독교인 한 명 없던 마을에서 지금은 주민 40여명 가운데 절반이 교회에 나오고, 나머지 절반도 부활절과 추수감사절예배 때는 모두 교회에 모입니다.

    8년째 되던 해, 마을 대동회에서 홍 목사님은 만장일치로 반장으로 선출됩니다. 이제는 ‘동완이’에서 ‘홍반장’으로서 거리낌없이 마을 주민들을 방문하고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홍천군의 협력과 지원을 받아 도심리교회가 추진하는 ‘행복한 마을 만들기’ 사업을 잘 진행되고 있고, 수익금은 마을기금으로 쌓여 마을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해졌을까? 홍 목사님이 마을공동체와 교회공동체가 하나의 공동체라고 인식하며, 주민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목회자인 자기가 주도하려고 하지 않고 타자(주민)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사역한 까닭입니다. 홍 목사님이 얼마나 주민들과 친밀하게 교류하는지를 짧은 시간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옛 예배당에서 새로 지은 교회당으로 오가는 길에 만나는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토요일까지는 수염을 깍지않는 것도 주민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림=이근복

    6년 동안 준비하여 작년 11월에 완공한 새 교회당은 홍 목사님의 목회철학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800평 부지 내 작은 동산의 4m 지하에 아담하게 지은 40평 예배당은 천정과 벽이 나무로 되어 있고, 강단 뒤 커다란 창문이 숲을 가득 담고 있어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실내온도가 보통 18-23도를 유지하는 까닭에 여름과 겨울에 냉난방하지 않아도 될 수 있도록 친환경, 에너지 절약형 건축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님과 영적으로 연결되는 느낌이 들 수 있을 것이니, 영성이 풍성한 공간인 것입니다. 교인가정이 거주하며 교회를 돌보는 교회당 앞 2층집의 1층은 북카페를 구상한다는데, 방문하는 이들이 예배당에서 머물러 기도하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책을 읽으면, 천상의 평화를 누리고 생기를 얻을 것입니다.

    지난 10월 23일, 영등포산업선교회관에서 ‘고 조지송 목사를 회고하는 방담회’가 있었습니다. 2018년 1월에 별세하신 영등포산업선교회 1대 총무 조지송 목사님의 평전을 쓰고 있는데, 작가의 요청으로 조 목사님의 삶과 사역을 회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3대 총무였던 제가 사회를 보고 2대 총무이셨던 인명진 목사님과 민중신학자 김용복 박사님과 손은정 총무가 참여하였습니다. 그날 제가 들은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조 목사님의 선교사역이 오롯이 노동자편이어서 때때로 기업주 장로들, 또 그들의 영향을 받는 담임목회자들과 갈등이 불거졌지만, 총회(예장통합)의 지도자들이 조 목사님을 내치지 못한 것은, 그분의 진실성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답니다. 도심리교회가 마을공동체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굳건한 토대도 다름 아닌 홍 목사님의 진실성이라고 여겨집니다. 목회철학과 헌신을 넘어서 진실성이 통한 것이겠지요.

    도심리교회 10월 18일 주보에 실린 홍 목사님 글에 마음가짐과 삶의 태도가 잘 담겨 있습니다. 교회 강아지 ‘샬롬’에 대한 이야기인데, 챙겨주던 집사가 며칠 서울로 가는 바람에 샬롬은 혼자 교회를 지켜야 했습니다. 자기를 돌보는 손길이 없어서 크게 상심한 모습을 보고 사택에 있는 ‘둘로스’라는 강아지를 데리고 가서 함께 지내게 했습니다. 글은 이렇게 맺습니다.

    “서로 장난치며 좋아했습니다. 얼굴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짐승이나 사람이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보다 큰 고통은 없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보다 큰 행복은 없습니다. 서로 사랑합시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민낯으로 인하여 한국교회는 이제는 아예 끝났다고 절망하는 분들도 도심리교회에서는 새로운 전망을 품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필자소개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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