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로비스트를 꿈꾸는가?
        2006년 10월 24일 02: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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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비를 합법화하는 로비스트법의 입법 추진이 본격화될 모양이다. 정부여당이 지난 16대 국회 때부터 추진해온 로비법이 이제야 본격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 민주당 이승희 의원이 의원입법안을 발의한 데 힘입은 듯 하다.

    로비에 관련된 법에도 로비의 정의, 로비스트의 등록, 합법적 로비의 규정, 불법 로비에 대한 제재 등을 다룸에 있어 여러 모양새가 있을 수 있겠는데, 요즈음 추진되는 입법안은 규제보다는 허용 쪽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다. 또 로비법의 전제 조건이랄 수 있는 정당 및 정치자금의 개혁, 경제 투명성과 부패 방지의 제고가 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우려스럽다.

       
     ▲ 로비스트 vs 브로코 공청회
     

    로비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드는 논거는 부패 방지, 국민청원권 보장, 전문성 제고 등이다. 이런 견해는 반부패 운동의 일환으로 로비법을 추진하고 있는 몇몇 시민단체의 취지와 대동소이하다.

    로비가 매우 엄격하게 이루어질 경우 부패 방지에 꽤 기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로비가 가장 발전해 있다는 미국에서조차도 그런 꿈은 실현되지 못했다. 미국 상하원에 등록된 로비스트는 3만 5천 명인데, 실제로 암약하는 로비스트는 워싱턴에만 1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오렌지가 태평양을 건너 ‘낑깡’이 되는 현실을 볼 때, 한국의 로비가 워싱턴보다 훨씬 음성적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며칠 전, 전경련 관계자는 “로비 합법화를 통해 기업부담은 물론 사회적 비용도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 때의 ‘기업부담 축소’는 지하 정치자금보다는 합법 로비자금이 더 적으리라는 노골적 계산이고, 로비 때문에 으레 재벌 총수가 처벌받곤 하던 ‘부담’을 없애겠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국민청원에는 굉장히 다양한 방식이 있다. 하필이면 로비법이란 말인가? 로비와 같은 청원 제도가 부족한 것이 문제인가, 부자와 빈자의 청원이 공정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인가? 부자들은 로비 뿐 아니라 온갖 수단을 동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로비는커녕 민원서류도 작성하지 못하는 것이 한국 정치의 문제다.

    국회의원 보좌진의 85%가 로비법에 긍정적 의견을 가진 반면, 국민의 77%가 그것에 부정적이라는 설문조사 결과(한국사회여론연구소, 2006년 8월)는 이 법의 실제 쓰임이 어떠할지를 잘 보여 준다. 한국 정치 현실에서 로비의 양성화는 국회의원과 관료들에게는, 로비스트를 사지도 못하면서 귀찮게만 구는 ‘악성 민원인’과 ‘데모꾼들’로부터 해방될 권리, 로비스트라는 그럴싸한 호칭으로 변신한 브로커와 거래하고도 쇠고랑 차지 않을 천혜의 조건을 의미한다.

       
    ▲ 담배회사 로비스트를 그린영화 포스터
     

    로비법의 입법 취지 중 가장 위험한 것은 ‘전문성’론이다. 우리는 토크빌에게 그처럼 감명을 주었던 미국의 민주주의가 지금 시대에 가장 낙후된 민주주의로 지탄받게 되는 과정을 살펴 보아야 한다. 왕성한 국회 활동과 엄청난 판례들과 질과 양에서 압도적인 관료조직의 미국이 자국민의 기본권조차 보장하지 못하는 정치 후진국으로 전락한 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확대가 전문가와 파워엘리트 네트워크의 고착화로 기울었기 때문은 아닐까?

    선입관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로비법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법제도학이나 정치공학을 공부하고, 시민단체와 관공서의 전문가로 일한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고 이들은 자본주의 운용과 부르주아민주주의의 최대화라는 대명제를 위해 정치의 효율화와 합리화를 주장한다.

    이들의 가장 큰 착각은 정치를 합리적이고 효율적으로 잘 짜여진 틀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아니 주로, 대중의 비합리적이고 비효율적인 참여를 통해 역사적 합리성과 효율성에 도달하는 과정이 정치의 본연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로비는 그다지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다. 파티복을 입고 샴페인 잔을 든 선남선녀들이 삼삼오오 둘러 서서 밀담을 나누는 모습, 또는 워싱턴 공원 벤치나 뒷골목의 카페에서 서류와 돈봉투가 오가는 할리우드 영화 장면이 로비의 실상에서 그다지 멀지 않을 듯 싶다.

    그렇지 않고서는 베트남전 희생자보다 7배나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총기사고로 죽고, 평균수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서 총기협회의 위세가 그토록 막강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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