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 건너 바다 건너, 당황한 경찰 폭력을 넘어
    2006년 10월 24일 08:2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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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길도 헤치고 물길도 헤엄치고 가시밭길 돌무덤 바위산을 뚫고서…”

23일 제주도의 농민과 노동자들은 이 노동가의 가사를 온 몸을 보여줬다. 1만명이 넘는 경찰병력이 철통같이 지켜준 한미FTA 협상장을 향해 골프장을 가로질러 달려갔고, 3시간을 넘게 바닷물을 건너 헤엄쳐갔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한국 민중들의 의지를 아름다운 제주 산하에 온종일 울려퍼졌다.

아침 8시 30분. 노동자와 농민들은 애초 10시에 이동한다는 계획을 바꿔 8시 30분 협상장을 향해 출발했다. 노동자들은 중문단지 진출입로인 예래 입구로 갔고, 농민들은 협상장이 있는 중문 골프장으로 향했다.

경찰들은 당황했다. 뒤늦게 수십 대의 경찰버스가 달려왔다. 경찰은 예래 입구에서 협상장을 향해 가려던 노동자들을 막았지만 골프장을 건너 달려간 농민들을 막지는 못했다. 150명이 농민들은 하얏트호텔 앞까지 달려갔고, 내쳐 협상이 열리는 신라호텔 10m 앞까지 협상단과 경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아침 10시 20분. 협상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던 1천5백명의 원정투쟁단은 농민들이 협상장 앞에 갇혀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곧바로 ‘진격 투쟁’을 시작했다. 협상장을 가로막고 있던 경찰들은 몽둥이 하나 들지 않은 시위대에 방패와 곤봉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경찰 무자비한 폭력 30여명 부상

정당한 집회를 하겠다고 걸어가던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평화시위를 약속한 시위대에게 경찰은 가차없이 폭력을 퍼부었다. 경찰들이 내리친 몽둥이와 방패에 머리가 깨지고 어깨가 찢어지고 손목이 깨졌다. 그러나 노동자와 농민들은 물러설 수 없었다.

노동자 농민들은 맨 손으로 경찰에 맞섰다. 이 과정에서 현대자동차 박찬국 조합원과 두산중공업 박정일 조직부장이 경찰의 방패에 맞아 병원으로 실려갔다. 분노한 조합원들은 웃옷을 벗고 경찰폭력에 격렬히 저항했다.

시위대의 저항이 격렬해지자 경찰들은 협상장 앞에 갇혀있던 농민들을 풀어주겠다고 연락했다. 30여명의 노동자 농민들이 이 자리에서 경찰의 폭력에 크고 작은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아야 했다.

낮 12시. 협상장 진입투쟁에 성공한 150여명의 농민들이 마침내 집회를 하고 있는 장소로 걸어 나왔다. 1천5백명의 원정투쟁단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서 북과 꽹과리를 치면서 들어오는 대표단을 환영했다. “이번에도 못막으면 우리경제 다 망한다. 4차협상 막아내자”라고 씌여진 현수막을 들고 협상장 진입투쟁을 성공한 농민들이 당당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하얏트호텔 뒤쪽 바다에서 배 30척이 떴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집회장은 다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협상장 투쟁을 벌인 전농 이상정 충북도연맹 사무처장은 “우리는 협상장 바로 앞에서 협상장에 있는 놈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구호를 외쳤다”며 “만명이 철통같이 막아도 우리의 투쟁의지를 꺾을 수 없다”고 말했다.

농민 노동자 1만5천명 범국민대회

오후 3시 10분. 컨벤션센터를 향해 제주농민 1만 5천여명이 조랑말을 앞세우고 들어왔다. 중문 삼거리에서 집회를 마친 농민들은 소복과 상복을 메고 한미FTA 상여를 메고 걸어왔다. 한미FTA 때문에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린 늙은 농민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노란 깃발을 휘날리며 걸어왔다. 30분이 지나도록 깃발의 입장은 계속됐다.

3시 40분 한미FTA 저지 범국민대회가 시작됐다. 전국민중연대 정광훈 상임의장은 “한미FTA는 우리가 식민지 노예가 될 것이냐의 아니냐의 기로에 서 있다”며 “오늘 제주에서 마피아들의 음모를 확실히 부셔 농사만 지어도 노동만 해도 행복한 사회에서 맛나게 살아보자”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현애자 국회의원은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21일 제주에 내려와 한미FTA 4차 협상은 전 국민에게 재앙을 몰고 오는 협상이기 때문에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외쳤다”고 말하자 제주도민들이 뜨거운 박수로 환영했다.

“제2의 IMF 한미FTA 중단하라”는 대형 천이 집회 참가자들의 머리 위로 올려졌고, 평화를 상징하는 수천 개의 풍선이 날아갔으며 대형 애드벌룬이 하늘을 향했다.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은 중문단지를 넘어 협상이 열리는 하얏트호텔을 향해 힘차게 걸어나갔다.

   
해상 시위를 벌이고 있는 원정투쟁단 (사진=참세상)
 

다리 위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협상장을 향한 ‘진격투쟁’

4시 30분 행진이 시작됐다. “우리는 신라호텔과 햐얏트호텔을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진할 것”이라는 사회자의 절규는 허풍이 아니었다. 협상장을 향해 행진하는 3천여명의 시위대를 중무장한 경찰과 바리케이트가 막아섰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협상장으로 향하는 다리 위와 다리 아래로 흩어져 싸우기 시작했다.

4시 49분 한 농민이 바다로 뛰어들었다. 헤엄쳐 바다를 건넌 그는 밧줄을 바위에 감았다. 이어 농민들이 줄지어 바다로 몸을 던졌다. 수영을 못하는 농민들은 양쪽을 연결한 3개의 밧줄을 잡고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경찰들은 협상장 앞으로 집결하기 시작했다. 경찰들은 퍼시픽랜드 해안에 병력을 긴급하게 배치했다.

5시 정각. 1023부대가 바다로 뛰어든 농민들을 잡기 위해 투입됐고 사상 초유의 해상시위 사건을 취재하기 위한 MBC 헬기가 비행을 시작했다. 경찰들은 바다를 건넌 시위대를 막아섰지만 40여명의 시위대는 바다를 통해 협상장인 하얏트호텔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바다로 뛰어든 농민들

3천여명의 노동자 농민들은 북과 꽹과리를 두드리며 선봉대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노란 깃발을 든 시위대와 민주노동당 깃발을 든 당원들은 호텔을 향해 헤엄을 쳤다. 바닷바람에 서 있기만 해도 추운 날씨인데 시위대는 온 몸이 떨리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김덕중(55) 농민도 온 몸을 던져 해상시위를 했고, 하얏트 호텔 입구까지 헤엄쳐 한국 농민의 의지를 온 몸으로 보여줬다.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기원주 농민은 “서 잇는 우리가 부끄럽소. 할 말이 없소”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시위는 3시간 동안 계속됐다.
연행자를 풀어주지 않으면 해산하지 않겠다는 원정투쟁단의 투쟁열기에 경찰은 40여명의 해상시위대와 연행했던 8명의 시위대를 모두 풀어줬다. 횃불시위를 벌이던 농민과 노동자들은 이들의 석방 소식에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밤늦도록 횃불을 밝힌 노동자와 농민들은 “11월 노동자 농민 총궐기투쟁으로 한미FTA 협상을 반드시 막아내자”며 마음 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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