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
    '6411' 버스의 첫 승객들은 누구일까
    전태일 50주기···“미조직 여성노동자들의 목소리 어떻게 죽어가나”
        2020년 11월 10일 08: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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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10일부터 사흘간 ‘전태일 50주기 국제포럼’이 열린다. 국내외 노동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태일 이후 50년, 함께 고민하는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노동의 현주소와 대안을 논의한다.

    국제포럼 첫날인 10일 오후 노회찬재단 주관으로 ‘전태일에서 노회찬까지-노동존중사회와 정치’라는 주제로 토론이 진행됐다. 특히 저임금의 조직되지 않은 여성노동자에 대한 분석은 전태일 열사와 노회찬 전 의원을 관통하는 주제였다.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에서 하루 14시간 이상 장시간노동에 시달리던 어린 여성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준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6411번 새벽 버스에 몸을 싣는 여성 청소노동자를 정치가 외면하는 ‘투명인간’이라고 규정하며 진보정당이 이들을 대변해야 한다고 설파한 노회찬 전 의원의 연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준다.

    이처럼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 노동자, 그 중에서도 더 약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전태일 열사와 노회찬 전 의원의 관심은 이날 포럼에서 다뤄질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신희주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가 발제한 ‘6411 버스 첫 승객 분석을 통한 청소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연구’엔 고령의 청소노동자에서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열악한 처우의 청소원이라는 업종 내에서마저 성별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여성일수록, 고령일수록 초단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신희주 교수는 “6411 새벽 첫차를 타는 승객들은 대부분 60대 이상의 여성 청소노동자들로 6411번 버스를 포함해 서울에서만 첫차 탑승객이 매일 최소 2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들은 주로 구로구와 영등포구에서 거주하며 강남구와 서초구로 출근하며 평균 2시간 이상을 임금으로 책정되지 않는 출퇴근 시간에 쏟고 있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6411번 새벽 첫차를 타는 청소노동자들의 평균 오전 3시 20분에 일어나 1시간 후 출근 버스를 타고 5시 44분에 도착한다. 퇴근 후 집에 귀가하면 오후 3시 40분이다. 신 교수는 “노회찬 전 의원이 말했던 대로 이들은 대부분 9시 뉴스를 보기도 전에 잠드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청소노동자 규모는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2017년 전체 취업자수의 3.5%를 차지한다. 한국 표준직업분류의 소분류 150여개 직업집단 중 6번째로 큰 규모다. 청소노동자 10명 중 7명 이상이 비정규직이고 2011년부터 6년간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가 10% 가량 늘었다고, 신규 일자리에 한해 시간제, 간접고용, 계약직 등의 비정규직은 전체의 95.2%를 차지했다. 청소노동의 일자리의 질이 시간이 갈수록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조건의 청소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 고령화됐을 뿐 아니라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그 안에서도 성별격차가 존재한다.

    신 교수는 “전체 노동자들 평균 연령이 45세인 반면 청소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평균 연령은 61.1세”라며 “청소업 내에서도 고령으로 갈수록, 남성에 비해 여성 노동자들의 시간당 임금과 월 평균 수입이 낮아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연령 집단 간 임금격차는 줄어들고 있지만, 성별 간 임금격차는 줄지 않아 청소업 내부에서도 구조적 성별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령의 여성노동자가 집중된 청소노동자의 월 평균 임금은 107만원이다. 신 교수는 “65세 이상의 청소원들 중 43%가 혼자 거주하고 있으며 혼자 거주하고 있는데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며, 청소노동의 저임금 문제가 노인 빈곤 증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짚었다.

    턱없이 낮은 임금에도 임금 인상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최저임금 미만의 일자리 비율이 2017년 69%에서 2020년 87%로 크게 높아졌다. 시간제 고용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신 교수는 “2015년에서 2019년까지 민간부분에서 대폭 감소했지만, 공공근로 일자리 등으로 인해 공공영역에선 대폭 증가했다. 공공영역 일자리들은 월 20~30만원의 초단시간 일자리”라며 “최근 청소업의 일자리가 대폭 증가한 것은 이러한 저임금 일자리의 대량 양산으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노회찬 전 의원이 2010년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얘기했을 때와 현재는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선 (시간제 일자리 양산 등) 고용조건이 더 악화됐다”며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가시적 성과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수정 서울시의원은 2부 토론에서 해당 분석 결과를 언급하며 “노동과 노동 사이의 시간이 값어치 없이 버려지고 있는지, 조직화되지 못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죽어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며 “서울시가 이 안에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할지 많은 숙제를 던져줬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에 앞서 이날 오전 한국노총 주관 포럼은 ‘코로나19와 여성노동의 현황과 과제’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코로나19의 여성노동 위기현황과 정책과제 ▲노동조합의 여성연대 전략 등에 대해 다뤘다.

    한편 내일인 11일엔 ‘전태일의 삶과 노동의 미래’라는 주제로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첫 번째 세션을 주관하고, 오후 두 번째 세션은 민주노총 주관의 ‘포스트 코로나 시기의 한국사회 개혁을 위한 민주노총 대토론회’가 진행된다.

    특히 마지막 날 아름다운청년전태일50주기범국민행사위원회 주관 포럼은 ‘변화하는 자본주의와 노동의 미래’와 ‘글로벌 공급 사슬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나눠 토론한다. 첫 번째 세션엔 사스키아 사센 콜롬비아대학교 사회학과 석좌교수가 특별강연을, 김금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이 노동운동사의 관점에서 본 한국노동운동의 미래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이날 오후엔 ‘글로벌 공급 사슬 밑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에드워드 웹스터 남아공 비트바테르스란트대 명예교수가 ‘인간적이고 문명화된 글로벌 공급 사슬은 가능한가’를 주제로 기조강연을 한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말레이시아 노동운동가들도 토론자로 참석해 ‘아시아 한국투자자들의 민낯을 돌아본다’를 주제로 한국 자본의 문제를 지적한다.

    국제포럼은 전태일 50주기 문화제 홈페이지와 유튜브 전태일티비를 통해 온라인으로 생중계된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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