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맨날 더러운 것만 연구하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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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23일 10:4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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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금요일엔 경북 상주에 들러 양계를 하시는 분을 만나고 왔다. 양계를 하며 나오는 닭똥으로 거름을 자급해 작물 농사를 하는 분이다. 개념적으로는 유축복합영농이라 한다.

    친환경농산물 중 제일 상급인 유기재배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거름으로 공장식 축분을 쓸 수 없어 직접 유기축산 거름을 만들기로 작정하고 양계를 시작했다 한다. 시판하는 유기재배용 거름도 있지만 그 가격이 만만치 않아 엄두를 내지 못했다. 조금 싼 중국산 거름도 있는데 남의 거름을 돈 주고 사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현재 이분처럼 유기재배 농가 중 직접 거름을 제조해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웰빙식 소비자 중심으로 유기농산물 수요가 늘자 많은 유기재배 농가에서는 거름을 돈 주고 사다 쓰고 있다. 농산물 재배하기도 바쁜데 거름까지 만들어 쓸 여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분이 있다니 그 얘길 듣고 시간을 내서 찾아간 것이다.

    그분 집은 빨간 벽돌로 지은 양옥이었다. 보통 농가 집에 비해선 깔끔한 편이었다. 문에 들어서 마당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섰는데 문간 바로 옆으로 사슴 우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냄새가 전혀 없다. 주인장이 현관문을 열고 나오시기에 인사를 드리고 왜 냄새가 없는가를 물어보았다.

       
    ▲  사슴농장
     

    그랬더니 사슴 울로 인도한다. 울 앞에는 큼지막한 고무다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걸 보며 하는 말씀이, “이게 비밀의 열쇠입니다. 바로 먹이에 비밀이 있지요.”

    뚜껑 하나하나씩 열어 보여주는데 모두 향긋한 냄새가 나는 발효음식들이었다. 원재료들은 제각각이었다. 어떤 것은 호밀대를 썰어 만든 것, 어떤 것은 곶감 만들 때 버려지는 감껍질, 어떤 것은 콩깍지, 어떤 것은 볏짚, 또 어떤 것은 일반 잡풀들이었다.

    공통으로 들어가는 발효재료는 쌀겨였다. 근처 정미소에 가서 무농약 재배로 생산한 쌀의 속껍질, 곧 쌀겨, 등겨를 싸게 사다가 섞어서 발효시켜 만든 것이다.

    “똥은 얼마만큼 한번씩 치우나요?”
    “정기적이지는 않고요, 거름이 필요할 때만 수거해놓는데, 아마 일년에 두 세번 정도일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깨끗합니까?”

    “발효음식을 먹이니까, 똥이 깨끗해서 오래 놔두어도 바닥에서 그냥 흙이 되는 거에요. 저기 보세요, 그냥 흙이잖아요.”

    이번엔 양계장엘 가보았다. 양계장은 사슴우리에 비해서는 약간 냄새가 난다. 아무래도 초식과 잡식의 차이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정도면 거의 냄새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유기양계 둘째라 하면 서러워할 유명한 어느 양계장보다도 냄새가 훨씬 덜하다.

    먹이는 사슴농장에서 본 것과 비슷한데, 몇 가지 동물성이 추가되고 게껍질이나 굴껍질 등 인산칼슘 재료를 가루로 빻아 이 또한 발효시켜 먹인다.

    “한번은 우리 양계장 때문에 파리가 자기 집까지 날아온다고 옆 마을 사람이 왔어요. 그래서 양계장엘 데리고 갔지요. 현장을 보여주며 이런 데서 무슨 파리가 있겠습니까? 했더니 아무 소리 못하고 가는 겁니다.”
    “닭고기 맛은 어떻습니까?”
    “마리에 1만5천원 받는데 없어서 못 팔아요. 도매든 소매든 무조건 그 가격을 받지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거름 중에 제일 안전하고 좋은 것은 소똥이다. 초식동물의 똥이기 때문이다. 반면 제일 위험한 것은 돼지똥과 닭똥이다. 잡식동물의 똥이기 때문이다. 위험한 것은 단백질 영양가가 높아 좋지 않은 가스가 발생하고 나쁜 세균들이 증식할 수 있어서다. 그렇다고 소똥이 좋은 것은 영양가가 낮아서만은 아니다. 원재료에 풀이 많아서다.

    풀이 많아야 흙을 좋게 만들어준다. 풀의 섬유질을 미생물이 분해하면서 접착제 성분을 만드는데 이것이 흙을 뭉쳐주어 이른바 살아있는 흙이라 불리는 떼알구조의 흙으로 만들어준다. 더불어 풀의 섬유질은 배속을 통과하며 배속에 좋은 유산균을 많이 증식시켜주고 이런 균들이 함께 배설되어 흙 속에 들어가면 흙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이런 풀들을 동물이나 사람이 먹기 전부터 발효를 시켜 좋은 미생물을 많이 증식시킨 다음 먹이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장을 좋게 해주고 좋은 똥을 싸게 해주며 그래서 흙도 좋게 만들어준다.

    요즘 축분은 대부분 공장식 축산에서 나오는 것들로 항생제의 오염과 중금속 오염이 심각하다. 소똥에선 아연이 많이 나오고 돼지에선 구리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젖소는 유방의 건강관리가 관건인데 그것을 예방하는 약에 아연이 많이 들어간다.

    반면 돼지는 약물에 구리가 많이 들어간다. 항생제는 나쁜 세균만이 아니라 좋은 미생물까지 죽여 항생제로 오염된 똥에는 유익한 미생물이 거의 없다. 그런 것을 땅에다 넣으면 당연히 땅이 오염되는 것이다. 유익한 미생물이 많아야 흙이 살고 식물도 살고 온갖 생명이 산다.

       
    ▲ 지렁이가 만든 떼알의 흙
     

    두 달 전쯤인가 강원도 원주에 갔다가 오랜만에 지렁이 박사로 통하는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그 교수님은 농학이 아닌 생물학 교수님이신데도 지렁이 연구도 할 겸 원주 근교에서 직접 농사도 짓고 계신다. 지렁이의 토양 개량 효과에 대해선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교수님은 더 나아가 지렁이로 가축 중금속 사용을 줄여나가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 했다.

    “돼지똥에 구리가 많은데요, 지렁이를 풀어 그것을 먹게 하면 돈분에서 구리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렁이가 구리에 중독되지 않을까요?”“그 지렁이를 다시 돼지에게 먹이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구리를 돼지에게 먹일 필요가 없지요. 일종의 순환식입니다.”

    지렁이가 흙을 좋게 만들어주는 것은 지렁이 몸속에 좋은 미생물이 많이 서식하기 때문이다. 지렁이 똥이 떼알구조의 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지렁이는 유기물이면 뭐든 못 먹는 게 없다. 종이도 먹는다. 그리고 똥으로 좋은 흙을 내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지렁이만 배속에 좋은 미생물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요즘은 파리, 구더기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왜 당신은 맨날 더러운 것만 연구하냐고 합니다.”
    “구더기가 끼면 나쁜 세균도 많다는 것 아닌가요?”
    “그렇기는 하지만, 그러나 구더기도 지렁이처럼 분해 능력이 뛰어납니다. 구더기도 배속에 좋은 미생물을 많이 갖고 있지요. 구더기가 발생하는 곳은 더러운 곳이지만 구더기가 그걸 분해하고 나면 깨끗한 것이 됩니다. 그런 구더기를 이용해 오염된 축분을 정화할 방법을 연구하는 겁니다.”

    올 여름에 내가 속한 전국귀농운동본부 도시농업위원회에서 일본 도시농업 연수를 다녀왔다. 일본 농가를 돌며 재미있는 퇴비통을 발견했는데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 편리하게 쓸 수 있도록 했다. 밑은 뚫려서 흙 위로 거름 재료를 쌓을 수 있다. 지렁이를 흙 밑으로 유도하게끔 하고 침출수를 배출할 수 있는 구조다. 위로는 밀폐식 뚜껑을 달아 놓았다. 통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진다. 나중에 거름 재료가 다 찼을 때 통을 빼기 쉽게 한 것이다.

    이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돌아와서는 당장 밑이 금이 간 고무대야를 이용해 농장에다 만들어 놓았다. 우선 빗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밑을 돋운다. 그리고 톱을 갖고 고무대야 밑판을 잘라낸다. 대야를 거꾸로 엎어놓은 다음 쥐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흙을 고무 다라쪽으로 돋우며 발로 다진다. 고무 대야 속에다 마른 풀을 어느 정도 깐 다음 남은 음식물을 붓고 그 위에다 다시 마른 풀을 좀 두텁게 깐다. 뚜껑을 닫고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무거운 돌을 얹어놓았다.

    그렇게 서너 번 음식물을 부었더니 어느새 구더기가 끼는데 아주 징그럽다. 처음 농사지을 때 어설프게 거름을 만들다 우글거리는 구더기를 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에 비하면 요즘은 양반이 다 되었다. 하지만 구더기가 끼면 발효보다는 부패쪽으로 가기 때문에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

    구더기가 좋아하는 수분을 없애려고 마른 풀을 가득 담아주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쯤 열어보았더니 마른풀은 온데간데없고 다시 구더기가 바글바글하다. 또 마른 풀을 잔뜩 넣어주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그러기를 다섯 번은 했다. 그쯤에서야 구더기가 덜하다.

    그때 지렁이 박사님 말씀이 떠올랐다. 구더기의 분해 능력이 대단하다는 걸 실감한 것이다.
    지난 토요일 꽉 찬 음식물 거름통을 개봉해보았다. 다시 2차 발효를 시키기 위해서다. 생각대로 구더기들이 풀과 음식물을 잘 섞어놓았다. 풀과 음식물 비율이 수분을 적당히 조절해주어 구더기도 그 이상 번식하지는 않았다. 산에서 참나무 마른 낙엽을 거둬서 다시 음식물과 섞어주었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봄이 되면 아주 잘 익은 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남은 구더기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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