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 노인들만의 당대회가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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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23일 08: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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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의 거의 마지막 부분을 장식하는 주인공은 다름 아닌 강유이다. 강유는 여러 모로 특이한 인물이다. 무엇보다도 위나라에서 촉나라에 투항하였으면서도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올라 제갈공명의 뒤를 이어 다시 한 번 촉나라로 하여금 위나라와 대등한 전투를 벌이게 한다.

상대방의 진영에서 넘어 온 인물은 중용이 될 수도 있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한나라당의 이재오 의원이 아무리 원내대표직을 잘 수행하였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는 외부에서 투항해 온 인물이기에 한나라당의 주류는 그나마 대중적으로 매력적인 그를 대표경선에서 낙선시켰다. 그 여진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한나라당 주류의 태도는 결코 다수 대중을 흡입할 수 있는 태도는 아닐 것이다.

   
 
 

아마도 제갈공명의 안목과 촉나라의 유연한 태도가 그나마 촉나라를 버텨온 힘인지 모르겠다. 황제를 제외한 최고 권력자로 외부에서 투항한 인물을 중용한다는 것은 고래를 통틀어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제갈공명의 리더십은 강유라는 인물을 중용함으로 인해 자신의 사후까지 연장되었다.

강유는 공명만큼의 카리스마는 아니었지만, 사마씨에 의하여 장악되어 있던 압도적인 위나라의 공격을 수차례 격퇴한다. 특히 무능한 유비의 아들 덕분에 좌천되어 있던 강유는 촉나라가 완전히 패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촉의 복위를 위해 위나라의 장군 종회를 부추키면서 기회를 엿보다가 아깝게 죽고 만다.

목숨을 걸고 거짓 항복하여 기회를 엿보는 인물은 삼국지에서도 드물 뿐만 아니라 강유의 죽음은 삼국지의 대미를 장식하는 부분이다.

사실 강유의 등용과 활약, 그리고 죽음은 한 개인 내지 집단의 흥망성쇠가 편견 없는 세력과 인재의 결집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민의 대의와 명분에 이념적으로 순수한 집단이야 필요하겠지만, 이 사람들이 외부의 사람들을 광범위하게 포용하지 못한다면 그 대의와 명분은 현세에서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공명이 강유를 위나라 측 인사로써 적당히 대접하고 말았다면, 촉나라는 유지되기도 어려웠거니와 공명의 사후 바로 붕괴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 민주노동당의 성장의 비결은 그나마 강령이라는 대의와 노동계급 정당이라는 역사적 정당성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려고 했던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도 제갈공명의 편견없이 강유를 받아들이고 많은 인재를 심지어 적에게서도 충원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상인을 위한다는 비난이 있었지만, 상가임대차보호운동은 영세상인에게 크나큰 희망을 주었다.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은 안전을 바라는 학부모들과 우리농산물 사용을 바라는 농민의 염원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전농과의 정치적 연대도 일부 무리가 있었지만, 대승적인 관점에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총선 이후 진보정당의 상황은 인재의 충원과 다양한 세력의 포용보다는 실망과 이탈, 배제와 고립의 연속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걸고 민주노동당을 지원하였던 공무원 노조에 대한 정부의 초강경 탄압에 대해서 민주노동당의 역할에 대해서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던 실정이고, 어찌 보면 총선 이전에 다른 진영에 있었으나, 민주노동당의 선전에 자신의 기대와 희망을 걸었던 집단들은 환멸과 배신감을 느끼며 속속 이탈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민운동은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를 거두어 가고 있으며, 진보적 전문가 집단 또한 그 직전 상태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구호만 무성했지 실질적이고 현실가능한 대책도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편이라는 느낌조차 주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이익을 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의 비정규직 권리보장 활동이라는 것은 공허할 따름이다.

아마 민주노동당에서는 강유와 같은 인물은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들만의 리그에서 논의되고, 북핵문제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 대단히 상식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상식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북한 정부에 대해서는 단 0.1%의 비판도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지극히 충성스러운 강경론이 지배한다. 

뿐만 아니라 당내 유력 정파 ‘두목’들과 의원들은 이러한 교착상태에 대해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여 무소신과 무능, 무책임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고 있으며 오히려 일상업무에 전력하여야 할 스텝들이 나서서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는 상황이 보여주는 것은 더 이상 외부의 충원이나 세력의 확대는 한마디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강유는 조직연속성과 활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10년후에도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 단병호로 정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들도 삼김씨처럼 건강하도록 전당적 지원을 하여 80세까지 정치하도록 할 수 있도록 당헌, 당규를 개정하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상황은 진보진영으로서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노릇이다.

머리 하얀 노인들만 모여서 당대회를 치루는 일본공산당이 민주노동당의 목표가 아니라고 한다면 강유의 등장에 대해서 한번 곱씹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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