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한 나라의 탄소중립과 그린뉴딜
    [에정칼럼] 2050년보다 2030년이 훨씬 더 중요
        2020년 11월 06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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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권 국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악당’ 중 악당이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전개된 친 그린뉴딜-반 트럼프 조합에 주목한 이유다. 최종 선거 결과가 조 바이든과 민주당의 승리로 확정될 경우, 기후위기 공동대응에 청신호가 켜질 것이다.

    취임 첫날 파리협정에 복귀하겠다는 바이든의 발표는 자칫 ‘기후클럽’으로 전락할 신기후체제에서 분명 호재로 작용할 것이다. 비록, 버니 샌더스만큼은 아닐 수도 있지만, 다양한 사회세력들의 지원과 대중적 지지가 바탕이 되어 새로운 기후 리더십을 기대하게 된다. 과거 버락 오바마의 선거 공약보다 진전된 내용을 약속한 것도 사실이다.

    전 세계가 주시한 미국 대선 결과는 우리에게도 큰 과제를 던진다.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2050년 탄소중립’을 발표했다. 늦었지만 다행이다. 이로써 중국, 인도, 미국, 일본, 남아공, 독일, 러시아, 인도네시아, 호주과 함께 세계 10대 석탄발전국가에 속하는 한국은 탄소중립을 선언한 나라가 됐다. 그러나 먼 길을 돌아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다. 그마저도 이상하고 수상하다.

    ‘2050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이 1년 동안 활동하고서 올해 2월 환경부에 제출한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검토안)’은 2050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목표를 복수안으로 제시했지만, 여기에 탄소중립은 없었다. 2017년 대비 75% 감축(1안), 69% 감축(2안), 61% 감축(3안), 50% 감축(4안), 40% 감축(5안) 중에서 1안에 대해 “탄소중립을 향한 저탄소 전환 최대 추진안”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2050년 탄소중립은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와 진전방안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단서 조항을 달아 사실상 유예했다.

    2021년 예산 국회 시정연설. 박스 안은 ‘탄소중립’ 목표 설정 국가

    지난 7월 발표된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은 그린뉴딜을 통해 탄소중립을 지향한다는 장식적 표현만 담겼다. 탄소중립을 살린 건 ‘기후위기 비상행동’ 등의 사회운동과 국민 여론이었고, 이들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국회의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안’(9월)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국회 결의와 대통령 선언의 의미를 ‘2050년’과 ‘탄소중립’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

    2050년보다 2030년이 훨씬 더 중요하다. 2050년 탄소중립을 고려하지 않았던 국가 에너지-기후 계획과 목표를 다 바꿔야 한다. 특히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상향 조정해서 유엔에 제출해야 한다. 당분간 2050이란 숫자는 잊자. 앞으로 5년, 10년을 잘 넘기면, 보수적인 2050년 종점을 1.5도 탄소예산에 맞춰 앞당길 수 있게 된다.

    탄소중립(carbon neutral)이나 순배출 제로(net zero) 개념도 실배출 제로(real zero)로 수정해야 불확실하고 불안전한 기술에 의존하지 않을 기회가 생긴다. 얼마 남지 않은 생존 밑천을 올인해 판세를 뒤집으려는 극도로 위험한 도박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25년, 2030년 온실가스 목표가 없는 그린뉴딜도 문제지만, 성장주의와 기술주의와 결별하는 그린뉴딜로 전환하지 않고서는 탄소감축은 무화될 것이다. 이미 그런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올해 국감 국면에서 정부와 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탄소중립의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단, 국내외에서 이미 계획되어 있거나 추진하고 있는 화석연료 개발과 투자들은 계속 진행한다는 전제에서. 가능한 마지막 탄소 분자까지 배출하고야 말겠다는 금단 현상을 노골적으로 내보였다. ‘2050년 탄소중립’과 ‘바르게 살자’ 구호의 차이가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진전성이 의심되는 그들에게 정의로운 전환은 또 하나의 이해불 혹은 관심 없음의 영역이다.

    전 세계 대형 에너지 유틸리티 일부는 탈탄소화, 탈집중화, 시스템 통합을 선언하고 경영 방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 에너지 전환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유틸리티의 설비 비중에서 재생에너지 포트폴리오가 낮은 수준이다. 이는 전력시스템의 관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유틸리티의 탄소고착 및 좌초자산화의 위험을 예고한다.

    그럼에도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2020)의 평가처럼, 100% 재생에너지 목표를 설정한 (지방)정부가 증가하고 있으며,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지역) 유틸리티의 역할이 재무적, 기술적 측면에서 소극적인 태도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바뀌고 있다. 특히 오스테드(Ørsted), 에넬(Enel), 에니(Eni) 등은 정으로운 전환 이니셔티브(The Business Pledge for Just Trnasitoin)에 참여하거나 정의로운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정의로운 전환 개념을 사회적 대화와 계획 수립, 전환 기금과 플랫폼 실행, 취약 노동자와 지역사회 지원 등으로 그 의미와 범위를 제한하고 있지만, 화석연료를 생산․소비하지 않고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생에너지 생산과 소비가 노동, 환경, 사회 기준을 포괄하는 정의로운 전환을 충족해야 한다는 합의점을 구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제라도 정의로운 전환 관점에서 그린뉴딜을 재정립해야 한다.

    신기후체제 출범과 함께 유럽와 미국 등에서 그린뉴딜 2.0을 펼치거나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Mastini et al., 2021). 2000년 중후반 잠시 유행했던 그린뉴딜이 1.0 버전이라면, 최근 한국의 경우 그린뉴딜 1.5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들이 글로벌 그린뉴딜 2.0로, 나아가 더 급진화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화석연료확산금지조약(Fossil Fuel Non-Proliferation Treaty; FF-NPT)을 들 수 있다.

    지난 10월, 캐나다 밴쿠버는 세계 최초로 화석연료확산금지조약을 승인한 지방정부가 됐다. 이 조약은 현재 개인, 단체, 기업, 정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자발적 이니셔티브 성격을 갖지만, 핵확산금지조약(NPT)처럼 국제조약의 효력을 지향한다. 기존 기후변화 국제협상이 석유,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를 직접 규제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파리협정을 보완 혹은 강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화석연료 채굴과 생산 자체를 체계적으로 제한하고 관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그린뉴딜 입법과제로 밝힌 그린뉴딜기본법, 기후변화대응법, 에너지 전환 및 분권법, 미래모빌리티법, 녹색산업 육성법, 공정한 전환 지원법 등에 주목해야 한다. 이상한 건 무엇인지, 수상한 건 없는지 따져보자. 무엇보다 2030년 온실가스감축 목표와 방안을 똑바로 만들자.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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