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폭 판치는 학교영화에 신선한 바람
    By tathata
        2006년 10월 21일 09: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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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학교는 더 이상 학생들이 머물기를 원치 않는 곳이다. 학교의 모습을 다룬 많은 영화들이 있지만, 영화 속 학생들은 학생이길 거부하고 학교를 뛰쳐나가고자 한다. 원조교제를 하려고 교실을 나거나(<다세포 소녀>) 공부에는 관심 없고 조직폭력배가 되려고 안달복달하고(<신라의 달밤>) 심지어 조폭두목이 학교에 들어와 학생들을 조폭화시킨다.(<두사부일체>).

    대학보다는 조직의 보스에게 더 큰 호감을 느끼는 것이 현재 영화 속 학생들의 모습이고, 학교 전체가 힘의 논리로 작동하는 조폭조직처럼 그려진다. 또한 TV에선 연일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학교에서는 잠을 자는 심각한! 공교육 위기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학교를 다룬 독립영화들도 학생들의 일상생활과 진정한 교육을 보여주지 못하고, 학교 재단의 비리와 싸우는 모습이나, 그들이 학교에 갖는 불만을 주로 보여준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의 사랑과 갈등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최근 정말 참교육이 실현되는 학교와 학생 그리고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여준 영화가 탄생했다. 비록 국내의 학교는 아니지만, 한국어로 수업하는 학교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10월20일 폐막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다큐멘터리에게 주는 운파펀드를 수상한 김명준 감독의 <우리 학교>가 그 작품이다.

    김명준 감독은 송일곤 감독의 <꽃섬>을 촬영한 촬영감독 출신이다. 그는 2002년 9월 일본 ‘홋가이도’의 조선학교를 알게 되었는데, 당시 그는 <스케이트>와 <生> 등의 단편영화로 널리 알려진 故 조은령 감독의 남편이자, 그녀가 찍으려는 조선학교에 관한 <프론티어>라는 작품의 촬영감독이었다.

    불행하게도 조은령 감독은 영화를 완성하지 못하고 2003년 4월1일 돌연 죽음을 맞았다. 그녀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었고, 몇몇 영화인들이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는 작은 영화제를 열었다. 그 영화제를 통해 나는 그녀가 <프론티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쩌면 완성되지 못할 뻔한 이 작품을 김명준 감독은 하늘로 올려 보내지 않고, 고스란히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그녀에게 받쳤다.

    그녀가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그녀가 재일 조선학교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를 되새기면서 만든 작품은 <‘하나’를 위하여>(2003년, 90분, DV6mm)이다. 여기서 시작된 재일 조선학교에 대한 관심은 깊이를 더해서 이어졌다. 김명준 감독은 일본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홋가이도의 조선학교의 촬영에 매진했으며, 3년이 지나서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것이다.

    재일 조선학교는 그동안 우리에게 조총련에서 북한식 교육을 하는 학교 정도로 인식되었다. 한국의 보수우파들에게는 당연히 그곳이 공산당 교육을 하는 빨갱이들의 학교라고 인식되었고, 그곳에서 교육받는 사람들 역시 북한과 연관된 좌익계열의 사람들이라는 선전이 통용되었다. 하지만 보수우파가 아니라고 자임하는 나 역시 민족교육을 하는 조선학교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었다.

    단순히 주체사상을 교육하는 북한의 학교이며, 어떻게 일본에서 그것이 허락되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민족학교가 일본의 ‘조선적’ 동포들이 1세대, 2세대 그리고 3세대를 거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거의 유일하며 수단이며, 필연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은 잘 알지 못했다. 또한 그들의 교육방식이 어떠하며 재일 동포들이 그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 <우리학교>의 한 장면
     

    <우리학교>는 그곳에서 모두에게 “우리학교”라고 불리우는 재일 조선학교인 “홋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 관한 다큐멘터리이다. 영화 속에서 “우리학교”가 어떻게 설립되었으며, 일본 보수사회의 협박과 불이익을 극복하기 위해 투쟁하면서 자리잡아온 과정들이 설명된다.

    한국으로 보면 초중고등학교가 모두 함께 있는 학교의 교육과정과 학생들이 어떤 교육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있으며, 선생님들이 어떤 관점으로 교육을 실행하고 있는지를 3년이 넘는 촬영기간을 통해 상세하게 보여준다. 이 안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김명준 감독은 그들의 가족과 같은 존재로 비쳐진다.

    그것은 그가 단순히 영화를 찍기 위해 일정한 기간만을 허락받고 찍고 돌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홋가이도 학교의 교육과정은 물론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학생과 선생님들의 삶을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처럼 생활과 영화가 함께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12년 동안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교육을 받아온 학생들이 있고, 이제 막 일본학교에서 민족학교로 전학 온 어린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한국말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이 나온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 이외에 선생님의 체벌이나, 교육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 이른바 왕따와 같은 문제들은 이 학교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조선학교 학생들은 학교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청춘들이 없다. 처음에는 감독이 의도적으로 조선학교를 미화하거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그런 장면들만 편집했다는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학생들의 정겨운 모습과 특히 두 번이나 등장하는 졸업식 장면에서 모두들 슬퍼하면서 학교에 대한 애정을 피력하는 것을 보면 그런 의구심은 어느새 사라진다.

    오히려 조선학교 학생들과 선생님들의 인간적인 매력과 그런 교육을 가능하도록 이끌어내는 그들의 열정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을 느껴지며, 진정한 교육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영화는 그런 교육의 과정과 학교생활에 초점을 맞추면서 진행된다. 욘사마를 동경하고, 한국의 유행가를 따라 부르면서도 자신의 "조선“이 조국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어른들과 학생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일본사회에서의 불이익(직접적으로는 살해협박과 대학입학의 불이익 등)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학부모와 학생이 그런 불이익을 충분히 감수할 것을 각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생님들 역시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기꺼이 교육에 동참하고 있고, 나이가 들고 자식이 생기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떠나야 하는 고통을 감내한다. 그럼에도 졸업생들 중 다수는 일본 내의 조선대학교를 졸업해 조선학교에 선생님으로 와서 자신이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되돌리는 것이 꿈이다.

    이런 교육과 학교에 대한 애정이 살아 숨 쉴 수 있는 것은 물론 일본 내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민족의식의 발로이며, 그 안에서 똘똘 뭉쳐 생활하는 학교의 환경이 큰 요인이겠지만, 그와 더불어 입시위주의 교육과 자본주의 경쟁위주의 교육에서 크게 빗겨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한국의 초, 중, 고등학교는 더 이상 공부를 하는 곳도,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을 위한 공간도, 자아실현의 꿈을 실현하는 곳도 아니다. 이 모든 것은 입시위주의 자본주의 교육 때문이다. 한국 학교에서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꿈은 사라진지 오래이며, 신분상승은 좋은 대학에서 저절로 이루어진다.

    좋은 선생님보다 좋은 학군이 먼저고 그 학군에 있는 학교가 좋은 학교이다. 홋가이도의 유일한 민족학교이며 불과 160여명이 다니고 있는 “우리학교”에서는 한국의 학교가 갖지 못한 가장 중요한 덕목들을 갖고 있고, 학생들은 학교의 이념을 스스로 따르고 수행한다. 스스로 “조선어”를 배우기 위해 일본어 사용을 자제하고, 일부러 기숙사에 들어와서 생활하며, 선생님들은 자신의 사생활을 일정부분 포기하고 학생들과의 생활에 사명을 거는 것이다.

       
     
     

    <우리학교>에는 감동적인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동포 학생들이 가장 많이 우는 장면은 일본학교와의 축구시합에서 졌을 때이다. 그들은 한국학교처럼 축구선수들이 아니지만, 역시 축구의 위력은 대단한가보다. 재일 동포학생들은 학교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축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재일 동포들이 일본사회에서 자부심과 용기를 갖게 하기 위해 이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점점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조선학교는 일본팀을 이기지 못한다. 역부족인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헌신적으로 투혼을 불사르는 그들의 모습은 한국대표팀의 투혼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동포 학생들이 가장 즐거워하는 장면은 만경봉호를 타고 그들의 조국 북한에서 촬영된 모습이다. 이 장면은 학생들이 직접 찍었다. 한국 국적인 김명준 감독은 그들과 함께 북한을 가지 못했을 때, 분단을 가장 가까이서 느꼈다고 고백하면서 만경봉호에서 감독의 이름을 부르는 학생들을 길게 보여준다. 조국에 방문한 재일동포학생들은 북한 동포들과 흥겹게 어울리면서 자본주의 사회인 일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표정과 인정을 가슴깊이 담아온다. 또한 일본에서 보는 태양의 모습과도 다르다고 신기해하고 기뻐한다.

    조국의 기억을 맘껏 담고 북녘 동포와의 작별을 슬퍼하면서 일본으로 돌아온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만경봉호의 입항을 반대하는 일본 우익들의 시위이다. 아마 지금의 정국이라면 동포 학생들의 후배들은 그들의 조국으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할 것이다.

    <우리학교>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이다. 우리에게 학교란 어떠해야 하는지. 진정한 교육은 무엇인지. 남북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떠나 과연 한국의 교육이 어느 정도까지 망가져 가고 있는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또한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분단의 현실이 어느 정도 계속될 것인지, 과연 통일될 수 있는 희망이나 있는 것인지, 그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교육의 내용과 형식만 보아도 너무나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교육현실 바깥의 학생들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학교 바깥에서 그들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학교 밖과 안의 커다란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학교에 적응하고 있는지가 드러나지 않은 점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지금의 북한처럼 학교 안에서 고립적인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게 만든다.

    영화의 말미에 김명준 감독은 빨리 영화를 만들어 “우리학교”의 학생 선생님들과 함께 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3년이 넘는 시간동안 ‘홋가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에서 생활한 그는 그들과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만든 이 한편의 다큐멘터리는 분단의 현실이 낳은 이질적이지만 너무도 부러운 교육현장을 보여준다. 그간 한국영화들이 보여주지 못했던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진정한 학교와 학생과 선생님들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한국영화에선 학교도 학생도 선생님도 모두 조폭의 얼굴로 그려진다. 그런 현실이 슬플 뿐이다.

    <우리학교>는 10월27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인디다큐페스티발의 개막작으로 상영된다. 이후 전국적인 상영운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관객들과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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