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찰과 혁신 통해 이념과 노선 현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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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23일 06: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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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한 진보정당임을 자임하는 민주노동당은 아직도 대중들에게 ‘희망’의 이름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민주노동당은 ‘우리 시대의 진보’를 대표하고 있는가. 평가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최근 북의 핵실험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내부 논쟁은, 당 밖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논쟁이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현재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레디앙>은 최근 민주노동당 내부의 북핵 논쟁을 계기로 ‘진보정당은 과연 진보를 대표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의 쓴소리를 들어보기로 했다.

    장상환 교수의 글을 시작으로 우석훈(성공회대), 이필렬(한국방송대), 김연철(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이광일(성공회대), 정영태(인하대), 박상훈(후마니타스 주간), 조돈문(가톨릭대), 조희연(성공회대), 김용복(경남대), 손호철(서강대) 교수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이번 시리즈는 <레디앙>과 성공회대 조현연 교수가 중심이 돼 기획하고, 필진을 구성했다. <편집자 주>

    얼마 전에 감행된 북한의 핵실험을 계기로 한국 사회가 크게 요동치고 있다. 북한 핵실험을 둘러싸고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것이 이미 깊어진 민주노동당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까 우려된다.

    논쟁을 생산적인 지형으로 바꿔내기 위해, 그동안 진보정치를 북돋워온 학계의 고민을 모아 보고자 한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쓴 소리가 될 것이지만 이것이 당 혁신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감한 혁신에 따른 성찰과 전망이 있는 실천만이 당과 진보에 대한 대중적 지지를 확산시킬 수 있는 것이다.

    17대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와 실망

    신자유주의 세계화 광풍 속에서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가중되는 동안에 줄곧 그러했지만, 북한 핵실험을 전후해서도 노무현 정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등 보수 정치세력은 무능하게 허둥대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기성 ‘보수정치’는 위기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가중시킴으로써 평범한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분노만을 불러일으켰다.  

       
    ▲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모습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약진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정치적 표현이었으며, 기성 정당과는 다른 색깔을 지닌 새로운 진보정당에 대한 기대가 결집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17대 총선 직후 짧은 감동의 시간을 지낸 뒤 2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 민주노동당은 어떠한가. 과연 지지자와 국민의 기대를 충족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왔는가. 이에 대한 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5~7%대에 고착되어 있는 당 지지율과 무기력에 빠진 당원들의 삶은 민주노동당의 현주소를 잘 말해주고 있다.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정치 실천이 국민들과 당원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얻지 못한 것이다. 기성 정당들이 내용 없는 정쟁만을 일삼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적극적 수용에 따라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파탄시켜 왔음에도 이러한 결과가 나오게 된 데는 무엇보다도 민주노동당의 책임이 크다.

    노골적인 적자생존 질서를 구축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약화, 해체시키는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직면하여 사람들은 ‘생존의 공포와 소외’에 대한 두려움에 떤다. 대다수 사람들은 연대를 통한 모든 국민의 존엄성 보장이라는 미래의 희망을 이룰 열정을 품기보다는 적자생존의 강퍅한 삶이라는 현재에 순응한다.

    이에 하층 계급인데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정치의식을 가지는 ‘존재와 의식의 괴리’ 상황이 끊임없이 연출되고 시민사회의 보수화가 급격하게 진전된다. 기층계급의 의식 보수화에는 성장과 함께 분배를 강조하겠다는 공약으로 집권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실망도 작용했다.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힘이 아직 미약하고 양극화 해소를 위한 눈에 띄는 실천을 보여주지 못함으로써 대중들에게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배세력에 의한 노동의 배제와 운동의 위기가 가속화되면서 진보에 대한 신뢰의 형성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분배의 개선 등 국민의 관심이 큰 경제, 삶의 현실에 대한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실천하는데 큰 한계를 보인 것이 지지도 하락의 주요 원인이다. 지난 9월초 경향신문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386 출신 각계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사회의 진보와 보수의 기준은 ‘성장과 분배에 대한 인식’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65%로 압도적이었다.

    남북관계를 꼽은 사람은 13%에 그쳤다. 그런데도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사회·경제구조의 진보적 개혁보다 민족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당이란 인상을 주었다. 특히 자주파가 최고위원회 등에서 다수를 차지하면서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2004년말에 집중했던 국가보안법 폐지투쟁도 열린우리당과의 명확한 차별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지지를 올릴 수 있는 진보적 의제는 아니었다.

    북한 핵실험 파동과 민주노동당의 태도

    민주노동당이 자신의 진보적 색깔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지 못하고 지지율이 낮은 수준에 정체된 상황에서, 북한 핵실험은 위기이면서 기회가 될 수 있는 도전으로 등장했다. 지난 10월 15일 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에서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한 특별 결의문> 파동과 그 이후 당의 혼란스런 상황은 기회보다는 위기의 측면을 증폭시키고 있다.

    중앙위원회 이후 많은 의견그룹과 당의 여러 단위들이 의견과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합의할 수 있는 의견은, 평화라는 기치 아래 전쟁은 공멸이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위기의 일차적인 원인이며, 대북 제재정책은 위기를 심화시키고 평화를 파탄내기 때문에 저지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갈등과 대립의 핵심은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민주노동당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대중들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던져야 할 것인가이다. 북한은 핵실험이 비핵화를 목표로 한 것이고 체제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자위수단이라고 말한다. 비록 상황의 논리는 인정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그것은 한 측면만을 본 것이다. 체제의 유지와 보전이 군사적 힘만 가지고 가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컨대 구소련은 수천기의 핵무기 등 엄청난 군비를 갖추고서도 붕괴되었다. 미국이 유도하는 군사적 경쟁에 말려들어 경제문제가 악화되어 결국 패배한 것이다. 반면 쿠바는 군사적 힘이 압도적으로 열세임에도 버티고 있다. 쿠바 역시 미국의 군사적 위협, 경제적 봉쇄와 사회주의권의 몰락에 따라 상당한 경제난을 겪었고, 체제위협도 계속되었지만 핵을 개발하지 않고도 국가 안보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세계 비동맹 국가들로부터도 비판과 고립을 면하기 어렵다. 쿠바에 본부를 둔 비동맹운동(NAM) 조정사무국은 지난 13일 북한의 핵실험 중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118개 비동맹 회원국들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지하고 있으며, 평화로운 수단을 통한 외교와 대화로 해결책을 찾을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가 포기할 수 없는 진보의 가치이자 해결 과제라면, 현재 국면에 대한 대응이든, 향후 전망에 따른 대응이든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봉쇄정책이 북한 핵개발의 주요 원인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당연히 미국의 대북정책 기조와 내용에 대해 비판하고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은 미국의 적대적 정책에 대해 지나치고, 위험한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고, 한국 국민들을 볼모로 한 모험적 행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무리한 대응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서는 난국을 타개할 여론의 결집을 기대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던져야 할 평화 프로세스의 메시지가 국내외적으로 진정성을 인정받고 조정자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기 위해, 대화와 평화의 분위기를 복원시켜 최소한 2005년 9월 19일의 공동성명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일본과 대만 등 주변국의 핵 도미노를 막고 군사적 긴장의 고조를 예방하기 위해서, 북한 핵실험에 대한 비판은 불가피한 통과 의례라고 생각된다.

    물론 지난 20일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에서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유감 표명’이라는 입장을 발표하기는 했다. 그러나 ‘정치란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신속한 대응을 놓침으로써 진보정당다운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 문제가 왜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논쟁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지 상식과 합리의 차원에서는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비판이 일각에서 말하는 반북주의도 아니며, 또 북한체제붕괴론에 대한 옹호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패권적 일방주의에 대한 찬성일 수 없으며, 수구세력들의 주장에 일정한 근거를 준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주파 일각에서 북한 핵실험을 자위적인 것으로 용인한다는 견해를 펴는 것은 당 강령에 어긋나고 다수 국민의 불안을 외면하는 것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현실적인 진보대안 제시로 위기를 극복하자

    새로운 미래를 ‘지금/여기서’ 구상하고 실천해야 하는 진보에게 미래란 불확정적이며, 때문에 진보의 스펙트럼은 다양할 것이고 충돌의 소지를 안고 있을지 모른다. 새로운 세상의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민주노동당에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성찰과 혁신이다. 진지한 성찰과 혁신 없이는 대중적 지지와 참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당의 존립조차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성찰과 혁신을 하는 데서 민주노동당은 무엇보다도 먼저 한국을 어떤 사회로 바꿔나갈지, 즉 좋은 사회란 어떤 사회이며, 그 사회를 누가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실현가능한 대안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미국의 패권주의가 유포한 ‘대안 없음’의 논리를 어떻게 ‘대안 있는’ 미래로 바꿔낼 것인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가치에 맞게 국가와 시장을 어떻게 재조직화할 것인가, 사회적 차별을 철폐하고 형평성을 어떻게 확보해낼 것인가, 사회영역에 대한 자본의 지배를 막아내면서 국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낼 것인가 등을 의제로 설정하고 진보적 해답을 제시하는 기회와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선진복지국가의 경험을 세부적으로 연구하고 한국사회의 현실에 맞도록 적용하는 것을 실마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 핵문제의 해결을 포함하여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질서를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낼 것인가에 대해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요컨대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지지자의 요구를 수렴하여 권위 있는 해석을 내리고 대안적인 프로그램의 창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단계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체성에 가장 적합하고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정책을 실천해야 한다. 예컨대 재분배를 강화하는 정책을 법률안 형태로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재분배 강화가 성장에도 기여한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공감을 얻도록 해야 한다.

    민주노동당의 대표 공약인 부유세를 입법 수준까지 보완, 발전시켜 나가야 하지만 부유세만으로는 복지개정 수요를 충당할 수 없다. 빈곤층을 위한 사회복지세의 도입도 필요하지만 중산층을 위한 사회복지 재정은 세금보다는 사회보장기여금으로 조달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OECD국가의 2000년 현재 조세부담률(조세/GDP)은 28.0%, 국민부담률(조세+사회보장기여금/GDP)은 37.5%로 GDP 대비 사회보장기여금 비중이 9.5%에 이르는데 한국은 조세부담률 22.0%, 국민부담률 26.4%로 사회보장기여금 비중이 4.4%에 불과했다.

    한국 국민들은 노후와 질병 등 장래 위험에 대해 불안감이 커서 생명보험에 많이 가입한다. 지난 10월 8일 생명보험협회 발표에 따르면 2006년 5월 현재 생명보험 가입률이 89.2%로 나타났다. 가구당 보험료 지출액은 월 평균 36만8천원, 연 평균 441만원으로 가구 소득의 12.2%에 해당한다. 2004년 생명보험 보험료 납입액은 60조원으로 GDP의 8~9%에 달했다.

    그런데 보험금 지급은 40조원에 그쳐 가입자들은 모집인 보수와 보험회사 운영비 등 비효율적인 낭비에 따른 부담을 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주도하여 이러한 사적 보험의 상당 부분을 공적 사회보장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효율성을 높이고 부담을 줄이는 성과를 낼 수 있고, 미래가 불안한 국민들의 큰 호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성찰과 혁신’ 통해 낡은 정파 대결구도 벗어나자

    정당의 정치적 위기는 왜 일어나는가. 무엇보다도 변화하는 상황에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시각과 이론은 대체로 과거의 사실에 기초해 있는데 객관적 상황은 계속 변화한다. 즉 시각과 이론이 과거에 묶여 새로운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슬기롭게 대응하지 못하면 그것의 누적적 효과 속에서 위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여기에 지속적인 성찰과 혁신의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의 자기 성찰과 혁신은 그저 당위적 말에 그치거나 현재와 같은 낡은 정파 대결 구도 속에서는 요원한 꿈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상식과 합리성’을 지키며 대중적 실천 속에서 각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받는, ‘자유롭고 생산적인 경쟁’ 구도를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진보진영 내부에 이른바 민족해방 계열과 민중민주 계열노선 간의 갈등이 존재해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며, 민주노동당에도 이 정파구도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양한 부문과 활동가그룹이 참여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내에 이념과 노선에 기초한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민주노동당 내부의 이념논쟁과 노선투쟁이 현실적 근거를 떠나 이데올로기적으로 극단화되어 당의 정체성 위기나 신뢰성 위기로까지 비화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당의 정체성을 지키고 대중적 신뢰성을 확산하기 위해서는 양대 노선 모두 자기 성찰과 혁신을 통해 과거의 유산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의견그룹으로서 자기 재정립의 길로 나서야 한다. 그것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각 정파의 노선과 노선 대립 양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의미 있는 해석과 설명을 해낼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하고 시대에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낡은 노선을 고집하면서 서로를 배제하거나 정세적 필요에 의해 서로 절충하고 타협하는 행태가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주파 일각에서 한국을 미국 제국주의의 식민지로 보는 것은 오늘날 한국이 고도로 발전한 독점자본주의 사회이고 미국과의 관계도 기본적으로 주권국가이면서 군사적 측면에서 비대칭적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따져봐야 할 것이다.

    또한 강령을 둘러싼 해석 논쟁을 하면서 일각에서 ‘상황에 따라 가변적인 해석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강령을 탄력적으로 해석한다면 강령의 존재 의의는 크게 약화될 것이다. 강령의 성격상 그 해석은 엄격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며, 그래야만 강령을 둘러싼 불필요한 논란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정파들의 혁신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성찰과 전망과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이념이나 정책이 비판과 대안의 무기로서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힘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대중의 삶의 문제를 얼마나 정확하게 분석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느냐, 그럼으로써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나 지지를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는가 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역사적, 사회적 현실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사상이나 이론이 지배의 논리에 대항하여 새로운 비전을 창출해낼 수는 없다. 변혁적 사고를 포기한 ‘실용주의’ 노선과 마찬가지로, ‘무오류의 신화’로 무장한 과거의 진보노선 역시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당 지도부는 무거운 책임감 느껴야

    역사의 교훈이 말해주듯이 진보정당이라는 이름만으로 진보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당세가 확장되고 당이 하나의 권력으로 되어갈수록, 불가피한 현실을 이유로 하거나 정파적 이해에 따라, 민주노동당의 기본 정신과 사회의 양식에 어긋나는 일탈적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이념과 노선의 현대화라는 성찰과 혁신의 과제를 소홀히 하지 않고, 엄격하고 신속한 자기 교정의 기능이 지속적으로 작동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  최고위원회 – 의원단 연석회의

    이와 관련하여 당의 지도적 인사들은 사회운동 단체와 정당이 다르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사회단체라면 국민의 지지를 얻는가와 관계없이 구성원의 뜻에 따라 이념적 순수성을 추구하고 주장을 펼 수 있다.

    그러나 사회운동단체와는 달리 정당은 국민의 지지를 먹고 사는 조직이다.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정당에 대해 책임을 묻게 된다. 지지자들과 국민의 요구와 괴리되는 모습을 보이게 되면 그 정당은 지지도가 내려가고 결국에는 소멸하게 된다. 지도부가 당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원 여론조사나 지지자 여론조사를 자주 실시하고 조사결과의 의미를 중시해야 한다.

    그리고 선출 공직자의 권한과 책임성을 애매하게 함으로써 당력을 약화시키는 당직, 공직 분리제도를 조속히 폐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견을 해소하는 기반으로서 당 강령과 그동안 선거에서 당이 국민들에게 제시한 공약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당의 지도부 인사들은 무거운 책임감으로 맡은 일에 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권력이란 일을 이루는 힘을 가지지만 그만큼 책임도 크고 위험한 것이다. 전두환 군부 정권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자신의 일파를 위해서 권력을 남용하면 가차없는 역사적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당의 정체성과 괴리된 활동으로 당을 혼란에 빠뜨리고 지지도 하락의 위기를 초래한 지도부 인사는 누구라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것은 상식이고 정치인으로서 기본적 자세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

    북한 핵실험 이후 민주노동당은 어려운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문제에 잘 대처하는 정치적 역량을 보여줄 때 답보와 하락을 계속해온 지지율은 상승할 것이다. 만약 자중지란 속에서 계속 우왕좌왕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상당기간 동안 회복하기 힘든 정치적 난관에 빠질 수 있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태도를 포함해 17대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의 실천에 대한 주변의 따가운 질책의 핵심은 무엇일까? ‘민주 평등 해방의 새 세상’의 꿈을 일궈나가야 할 민주노동당이 추구해야 할 기본 가치와 정책은 어떤 것일까?

    앞으로 10여 차례 진행될 우리의 기획 연재물이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어느 정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이 기획연재가 민주노동당과 진보를 껴안고 가고자 하는 많은 분들께 작지만 소중한 성찰과 모색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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