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
    [에정칼럼] 예술가이자 행동가, 활동가인 사람들
        2020년 11월 03일 09:4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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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은 언제나 예술가의 시대를 반영해왔고, 또 그 시대를 움직인 예술가들이 많은 사람의 기억과 마음에 오래오래 남았다. 예술이 움직인 그 마음들이 시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왔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예술은 그 시대의 문제를 날카롭게 관통하고, 문제를 예술가들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감각적으로 풀어낸다.

    뿐만 아니라 예술의 영역은 미술관을 넘어서 거리와 자연공간으로까지 다양한 형태로 뻗어나오고 있다. 최근 기후위기 대응 시위는 다양한 퍼포먼스들로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전 세계적으로 열린 기후 스트라이크에 이어 한국에서도 9월 21일 기후위기비상행동에 시민 5,000여명이 참가해, ‘뜨거워진 지구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뜻하는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또한 올해에는 코로나시대의 비대면 온라인 집회 형태로 시민들이 기증한 약 3,000여 켤레 신발로 참가자를 대체하는 행진 퍼포먼스를 꾸미기도 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행동하고, 보여주는 형식의 시위와 운동은 대중들에게 짧은 시간 동안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필자는 연구의 방식으로 기후위기 대응 운동을 하고 있지만, 이런 시위와 집회, 예술 활동을 보면서 신선한 자극과 희망을 얻는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법, 제도, 정책보다도 이런 행동과 예술이 더 강력한 방법일 때가 많다.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을 소개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와 위기뿐만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찾기를 바라면서 필자가 최근에 알게 된 기후 예술가이자 활동가를 소개하고자 한다.

    공간에 대한 몰입을 통한 반성을 제공하는 예술가
    –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엘리아슨은 덴마크-아이슬란드 예술가로, 자연의 빛, 물, 기온에서 감명을 받은 조각과 대규모의 설치 예술로 유명하다. 엘리아슨의 작품은 대체로 기후위기로 변해가는 지구의 모습을 고요하지만 강렬한 장면으로 대중에게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엘리아슨은 자신의 예술 활동을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기보다 사회에 책임감을 갖는 것으로 여기고, 대중들에게 몰입력 있는 공간의 변화를 제공하며 기후변화에 대한 반성을 일깨워준다. ‘그린리버(1998~2001)’라는 작품을 통해 LA, 스톡홀름, 도쿄 등 도심지에 흐르는 강물에 밝은 녹색 염료를 부어 도심 지역의 난기류를 보여주기도 하고, ‘뉴욕 이스트 리버(2008)’에서는 4개의 큰 폭포를 설치하고, ‘기상 프로젝트(2003)’에서는 실내에 거대 인공 태양을 설치하는 등 공간을 변화시키고 활용하여 대중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엘리아슨은 2019년 유엔 기후행동정상회의에서 자신의 2014년 작품인 ‘아이스 워치’에 대한 설명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한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아이스 워치는 덴마크-아이슬란드의 예술가와 지질학자 팀이 녹고 있는 빙하 12블럭을 파리 기후변화 회의에 운반하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과학적 연구와 일부 다큐멘터리에서만 접하던 기후위기의 일면을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경험을 가질 수 있었다.

    기후변화는 모든 사람의 문제이며 모두가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술가
    – 존 아콤프라(John Akomfrah)

    존 아콤프라는 런던 남부의 석탄 발전소에서 자란 가나계 흑인 예술가이다. 그는 1989년 엑손의 기름 유출과 알래스카 생태계에 미치는 재앙적인 영향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한 여행에서 기후변화와 환경에 대한 개인적 전환점을 맞았다고 한다. 기름누출 사건에 대한 경험이 이누이트 공동체의 생계 파괴와 최악의 식민 착취를 보여주는 노골적인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아콤프라는 예술가로서의 책임감과 의무를 가지고 환경파괴 및 기후변화와 인간 공동체 간의 관계, 영향에 대한 작품을 계속한다.

    그의 유명한 작품인 ‘퍼플(2017)’은 10개국에 걸쳐 촬영된 기후변화의 증거와 인간 공동체를 6개의 영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압도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작품이다. ‘보라색’이 의미하는 것은 빨간색과 파란색의 중간인, 미묘하고도 비자연적인 것을 나타낸다. 아콤프라는 퍼플에 대한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는 북반구의 백인들 혹은 전문가만이 논의할 수 있고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누구든 참여하고 대화하며 표현할 수 있는 문제라고 답한다.

    영상은 기후변화와 식민주의로 인해 파괴되거나 노골적인 장면들을 보여준다. 아콤프라는 6개의 영상 작업을 모자이크 사진에 비유하며 다양한 이야기의 점들이 섬세하게 엮여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퍼플’은 인류세에 대한 반응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각 영상마다 다른 기후변화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은 그 모든 장면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극적인 경험을 제공한다.

    예술을 통해 새로운 대안과 영감을 제시하는 예술가
    – 아그네스 데네스(Agnes Denes), 메리 매팅리(Mary Mattingly)

    아그네스 데네스는 올해 89세로 환경 예술의 첫 개척자 중 한 명이다. 그녀의 작품 ‘휘트필드-대립(1982)’은 맨해튼 아래의 2에이커의 땅을 개간하여 밀밭을 파종한다. 작물이 자라면서 도시와 맞물려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거기서 생산한 천 파운드 이상의 곡물은 “세계 기아 종식을 위한 국제 아트 쇼”를 통해 전세계 28개 도시를 순회하기도 했다. 관객들이 직접 씨앗을 채취하고 심는 것까지 완벽한 참여 예술이었다.

    또한 데네스는 ‘나무 산-서부 필란드에 살아있는 시간 캡슐(1992-96)’이라는 작품을 통해 자갈 구덩이 위에 125피트 높이의 인공산을 만들어 대중이 참여하여 11,000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인공산은 황금 비율로 파생 나선형을 기반으로 나무를 심어 상공에서 볼 때 마치 지문과 같은 형상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1996년 핀란드 정부에 의해 헌납되었고, 이후 400년 동안 법적으로 보호된다.

    또 다른 여성 개념 예술가인 메리 매팅리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색다른 방안을 제시한다. 매팅리의 작품은 사진, 조각, 설치, 공연 등으로 광범위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2016년 뉴욕 수면에 설치된 바지선인 ‘스왈레’이다. 매팅리는 바지선 위에 정원을 조성하고 지역사회를 조성하여 그들이 직접 농산물을 재배하고 나누는 방식으로 이웃들의 지역 생태계를 연결시켰다. 매팅리의 ‘스왈레’는 뉴욕시 법에서 금지된 공공 땅에서 수확하는 행위를 바지선을 통해 수면위에 설치함으로써 교묘하게 피한다. 매팅리의 이러한 시도는 법제도적으로 제한되어 있던 지역 공동체의 가능성을 열어준데서 의미가 있다. 그는 공공의 것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 공동체의 연결과 의지가 필요하다는 의사를 작품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기후위기 예술가이자 행동가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는 기후위기의 시대를 기록하고, 경고하고, 대안을 제시해가며 싸우고 있다. 비록 기후위기가 당장에 눈앞에 거대한 파도가 되어 들이닥쳤지만, 모두 함께 겪는 문제이고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임을 잊지 말고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에정칼럼> 연재 링크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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