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라인 차별과 혐오 표현
    기업과 대학 책임 물어야
    악성댓글, 사이버불링으로 인한 대학생 사망 사건, 책임과 대책 촉구
        2020년 11월 02일 06:0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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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커뮤니티 내 차별과 혐오 표현으로 대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커뮤니티 사이트 기업과 대학의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서울여대 학생 A씨의 유족들은 A씨에게 악성댓글을 단 이들을 모욕 혐의로 고소했다. 우울증을 앓던 A씨는 게시판에 자신의 심경을 털어놓은 후 온갖 혐오 댓글에 시달렸다.

    고인이 된 피해 학생이 악성댓글에 시달린 곳은 국내 최대 대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다. 전국 약 400개 대학 450만명 이상의 대학생이 이용하고 있고, 학교 인증 후 해당 학교의 게시판을 익명으로 이용할 수 있는데, 최근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증가하면서 대학 내 공론장으로서 온라인 커뮤니티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청년단체들은 커뮤니티 내 난무하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에브리타임과 대학이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금이라도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A씨의 유족은 2일 악성댓글을 방치한 에브리타임을 고발한다고 밝혔다.

    유니브페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청년참여연대 등 25개 청년·인권·시민사회단체는 이날 오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악성댓글, 사이버불링이 기업의 무책임한 방치와 대학 당국의 외면이 계속되는 사이 한 사람의 인생을 앗아가 버렸다”며 “에브리타임과 대학은 학내 사이버불링(온라인 상 괴롭힘)과 악성 댓글에 대한 대안적 조치를 강구하라”고 밝혔다.

    유가족은 이날 호소문을 통해 “익명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의 탈을 쓰고 악마 같은 짓을 하도록 방치한 에브리타임 업체를 고발한다”며 “우리 아이가 에브리타임 악플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지경이 되도록 에브리타임 업체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학교 역시 학내 구성원들로 이뤄진 사이트임에도 아이를 보호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일은 한 가정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 사건”이라며 “더 이상 에브리타임으로 인해 악플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없도록 시민들이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사진=유니브페미

    에브리타임 내엔 해당 사건 이전부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상으로 혐오와 차별 글들이 난무해왔다. 실제로 대학생 단체들은 지난 6월 8일 에브리타임을 상대로 혐오게시물 관련 정보공개청구를 청구했고, 이에 앞서 36개 대학생 페미니즘 단체 등도 지난 4월 n번방 2차가해 및 여성혐오게시물에 대한 제재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고 에브리타임 측에 요구한 바 있다.

    에브리타임 측은 현재까지도 실효성 있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신고 누적을 통한 자동삭제 시스템’이 있지만 에브리타임 측이 신고에 대한 사실관계를 전혀 확인하지 않고 있어 오히려 사이버불링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피해자의 게시물이 신고 누적으로 삭제되거나 계정 이용이 중지되는 식이다.

    노서영 유니브페미 대표는 “에브리타임은 디지털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를 방치했고,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낙인을 확산시켰다. 6월 유니브페미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혐오표현 대응을 위한 F5(새로고침) 프로젝트팀에서 이용자들이 직접 만든 이용규칙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전화번호나 응답이 가능한 메일 주소 등 소통 창구가 전혀 없는 에브리타임 측은 묵묵부답이었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수업의 증가로 대학의 공론장이 온라인으로 옮겨간 상황이라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앞으로 사이버불링 사건은 더 많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대학당국은 물론, 혐오 게시물 등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할 기관들은 어디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노 대표는 “(이번 에브리타임 사망 사건 뒤엔) 정신질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만연한 혐오가 있었고, 자동삭제시스템에 의존하며 수년째 책임을 회피해온 플랫폼 에브리타임이 있었으며, 사기업 어플리케이션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는 데 실패해온 대학 당국과 인권센터가 있었다. 온라인에서의 문제라서 추적이 어렵고 학생들 간에 벌어진 사건이라서 사소하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경찰도 있었고, 더 이상 온라인은 오프라인의 대안이 아니라 오프라인과 구분되지 않는 우리의 일상 공간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입법부와 사법부가 있었다. 이 중 단 한 곳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누구든 온라인 공간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었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면 강의가 진행되고 있는 올해는 학내 유일한 온라인 공론장인 에브리타임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높다. 그런 만큼 지금 당장 플랫폼과 대학, 그리고 우리 사회에 모든 구성원의 자유와 평등을 해치는 사이버불링과 혐오표현에 반대한다는 단호한 선언이 필요하다”며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표현을 그저 방치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로 오독되는 사회를 멈추고, 사이버불링과 혐오표현을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대학생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일인 만큼 대학당국의 책임성을 더 크게 요구될 수밖에 없다.

    이연주 청년참여연대 활동가는 “에브리타임은 대학내 공론의 장을 사이버 상에 옮겨놓은 것일 뿐이다. 사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해서 인권침해 문제 해결의 책임이 기업에만 전가되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학생 기본권과 인권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다. 학생 인권은 오프라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권피해 실태를 파악하고 제도적 해결 방안을 고안해 구성원들이 대학인권센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촉구했다.

    서울여대 재학생인 고은 씨는 “이 죽음을 개인이 정신적 괴로움을 호소하다 에브리타임에서 사이버불링을 당해 비극적 선택을 한 사건으로 기억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더 이상 대학 사회가 차별과 혐오에 무뎌지고 이를 조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 이 문제는 개인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고, 우리 사회가 소수자를 어떻게 포용하느냐와 연결되어 있다”며, 실명제 도입 등과 같은 한시적 대책을 넘어 차별과 혐오에 관한 근본적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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