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 한-민 공조 제2막이 올랐다?
        2006년 10월 20일 03: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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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북핵 사태를 계기로 또한번 ‘한민공조’의 발걸음을 내딛는 게 아닌가 하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20일 민주당은 “햇볕정책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고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번민 끝의 결정을 환영한다”며 반겼다.

    당초 대북강경론 일변도의 한나라당과 햇볕정책을 옹호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적자를 자부하는 민주당의 대북 해법은 좁혀질 수 없는 이념적 괴리가 상당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하지만 최근 한나라당이 햇볕정책 옹호하는 해프닝을 벌이고, 민주당이 강경입장으로 선회하는 일련의 과정은 ‘북핵’의 정치적 파장이 매우 복잡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

    한나라당은 지난 9일 북 핵실험 직후부터 국제공조를 강조하며 대북 강경 제재론을 견지해왔다. 대권 주자들은 물론 당내 소장파들도 금강산, 개성공단 사업 중단과 PSI 참여 등 국제 공조를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일부 국방위원들 사이에서 ‘전쟁 불사’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잠시 한나라당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을 구분하며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비치기도 했다. 국내정치적 필요가 핵문제를 보는 관점보다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보여준 대목이다.

    10.25 재보선과 관련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호남지역 유세가 있던 17일 김성조 당 전략기획본부장이 김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성과를 치켜세웠고 강재섭 대표 역시 호남 유세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이 햇볕정책까지 망쳤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여당과 보수언론들은 ‘호남 표심을 위한 술수’라는 비난했다.

    강재섭 대표는 결국 19일 “그런 취지로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적극적인 해명에 나섰다. 강 대표는 “햇볕정책이든 뭐든, 어떤 이름이건 간에 포용정책을 해오면서 채찍 없이 사탕과 당근만 준 것이 오늘날 북 핵무기를 불러왔고 (나는) 계속 그 톤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도적인 전략이었든지, 실수였든지 결국 한나라당은 햇볕정책 반대로 분명히 돌아섰고 호남 민심잡기는 잠시 유보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바로 이날 민주당이 대북제재 강경론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민주당은 19일 긴급의원간담회를 통해 “유엔 회원국으로 유엔 결의안에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당론을 발표했다.

    이상열 대변인은 “미국과 엇박자를 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사업, PSI 확대 참여는 미국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결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한화갑 대표가 지난 10일 청와대 5당 대표회담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은 유지해야 한다”고 발언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입장이다.

       
     ▲ 민주당 김효석 원내대표
     

    김효석 원내대표도 20일 CBS 라디오 <뉴스레이다>에 출연 “이제 햇볕정책이 절대 불변의 진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상황에 따라서는 햇볕정책도 수정할 부분은 수정해 나가야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은 햇볕정책을 제대로 승계하지 못했다”면서 “햇볕정책은 국제사회, 특히 미국과의 공조 하에 추진할 때 생명력을 갖는데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은 너무 민족공조, 자주 개념만을 강조하다보니까 국제사회의 공조를 소홀히 했다”고 지적했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민주당의 기류 변화에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20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어제 민주당이 대북제재 입장을 표했다”며 “그간 햇볕정책의 적통정당으로 자부해왔던 민주당이 북핵 사태에 대한 고뇌와 번민의 끝에 이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유기준 대변인은 <레디앙>과 통화에서 “민주당이 햇볕 정책을 정면 부인하는 대북제재 찬성을 결정하는 것은 힘들었을 것”이라면서도 “국민여론이 그런 쪽이고 북핵 문제를 공당으로서 방치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다.

    유 대변인은 “기본적으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북핵 문제를 보는 시각-정부의 애매모호한 태도 등-이 비슷하기 때문에 정책 공조를 통해 국민들의 불안을 불식시키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더불어 유 대변인은 “한나라당은 민주당과 공조든, 정책연합이든 계기가 많을수록 좋지 않겠냐”고 “(북핵공조도) 한 계기로 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열 대변인은 이에 대해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등 경협을 지속하기 위해 정부가 미국을 충분히 설득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나라당과 차이가 있다”면서도 “물론 설득이 안돼서 제재로 간다면 미국의 결정에 동참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또 “당론을 모으는 과정에서 일부 ‘한민공조’ 제기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그로 인해 득표에 지장이 있다 하더라도 북핵 위기 상황에서 국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한화갑 대표가 한나라당 의원모임 강연으로 불거진 한민공조 논란을 진화하기 위해 직접 기자회견까지 했던 때에 비하면 담담한 분위기다.

    한나라당의 한 대권주자 캠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쟁 불사를 말하는 극우와 민족공조만 외치는 극좌를 제외한 중도세력들의 접근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는 게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이 관계자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연대를 속단하기는 이르고 연대를 한다손 치더라도 정책의 차이점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정책 방향과 뜻들이 상당히 접근해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따로 공조를 하지 않더라도 현상에 대한 각자의 평가에서 (한민공조가)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것”이라며 “결론적으로 집권 연대, 연합도 가능하지 않겠냐”는 기대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날 한나라당의 대권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10.25 재보선 유세와 관련 호남 지역을 방문, “형제가 싸워도 강도가 칼을 들고 집에 들어오면 힘을 모아 싸우는 법인데 북한 핵위기를 맞아 우리는 오히려 국론이 더 갈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단합해야 할 정치권이 대립하는 모습을 보고 국민이 불안해하는 만큼 이런 위기 때는 하나가 돼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핵에 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견 일치가 두드러진 상황에서 호남으로 간 한나라당 대권주자의 발언은 단순히 국론 분열에 대한 우려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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