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 가는 건 '정파' 아닌 '정당'이다"
    2006년 10월 20일 07:14 오전

Print Friendly

민주노동당이 이달 31일 4박5일간의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한다. 민주노동당의 이번 방북은 당초 북한 조선사회민주당의 초청에 따른 것이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추진되고 있는 시점이라 단순한 정당교류의 차원을 넘어선다.

더구나 남북간 공식 대화채널이 중단된 지 오래이고, 지난 9일 핵실험 이후 여야 정치권에서 금강산과 개성공단을 방문하거나 방문할 계획을 밝히고 있지만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민주노동당을 초청한 쪽은 조선사회민주당이지만 실무협상을 통해 북한의 권력 2위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의 면담도 이미 기정사실화돼 있고 지난해 방북의 경험을 비추어볼 때 조선노동당을 비롯해 북한 권력층 관계자들과 만날 기회도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쪽의 소수정당과 북쪽의 이른바 ‘위성정당’ 사이의 평범한 만남이라고 폄하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은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조선사회민주당은 북에서 정당교류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는 정당”이라며 “북의 특수성을 이해해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 2005년 민주노동당 대표단 방북당시 기자회견 (사진 = 연합뉴스)
 

지난해 8월 첫 번째 방북단에 포함돼 평양을 방문했던 신장식 전 대표 비서실장은 “조선사민당을 위성정당으로 보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라며 “조선사민당은 북의 정당교류 채널이라고 봐야 하고 지난해 행사에도 조선노동당 관계자들이 많이 참여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하기에 따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할 수도 있고, 그저 평범한 정당교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지난해 방북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정당교류’라는 의미도 빛이 바랬다. 민주노동당이 이번 방북을 통해 핵위기 타개의 매개자 역할을 하거나 적어도 단초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성과도, 의미도 없는 방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준비 정도는 매우 빈약하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당론조차도 정하지 못한 채 ‘유감’과 우려의 입장을 전달한다는 정도다. ‘입장’뿐 아니라 ‘해법’도 찾아야 하지만 그런 ‘큰 그림’은 준비돼 있지 않다. 자칫 당내 ‘분란’으로 인해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방북해 당원은 물론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방북단에 포함된 노회찬 의원은 “가서 뭘 할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당의 공식 입장이 뭔지, 그리고 2차 핵실험을 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할지, 2차 핵실험에 대해 어떻게 얘기할지도 정해지지 않고 아무런 논의도 없다”며 당의 준비정도에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홍승하 최고위원도 “방북과 관련해 당론이 정해지지 않았다”며 “방북 이전에 당론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방석수 민주노동당 기획조정실장은 “지난 9일 긴급대책회의에서 정리한 당의 입장과 의견을 가감없이 전달하고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대한 당의 의지와 어떤 경우에도 심각한 상황이 초래돼선 안 된다는 반전평화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방 실장은 "해법은 고민하고 있다. 각계 의견을 충분히 듣고 내부적으로 정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북측에 전할 메시지와 관련해 민주노동당은 현재 각계의 목소리를 청취하고 있다. 19일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와의 면담을 시작으로 20일 이종석 통일부 장관과 만나고, 한명숙 국무총리, 임채정 국회의장, 여야 4당 대표, 북한 전문가들과 연쇄접촉을 통해 북측에 전할 메시지를 가다듬는다는 계획이다.

방북단에 포함된 권영길 의원단 대표의 역할도 주목받고 있다. 재외공관 국정감사를 위해 미주를 방문중인 권 대표는 미국 조야의 주요인사들과 만남을 추진하고 있다. 북핵문제가 남북문제가 아닌 국제문제라는 점에서 권 대표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해졌다.

당 밖의 북한문제 전문가들도 민주노동당의 이번 방북에 의미를 두고 있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정치학)는 “북이 대화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며 “민주노동당이 핵실험과 추가행동에 대한 남쪽의 여론을 잘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북측과 만나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재확인해야 하고 북이 군사적 대응을 하는 것이 체제의 안전보장에 역효과만 크고, 감당할 수 없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노동당의 상황은 알지만 북핵을 정당화하는 발언을 해서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김연철 고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정치학)도 “면담대상이 조선사민당 대표단에 한정된다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면 이유야 어찌 됐든 북이 비핵화 합의를 파기한 부분에 대해 유감을 표시해야 한다”며 “북이 추가적인 긴장 조성보다 6자회담에 나와서 북의 입장을 보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이번 방북의 의미를 축소하거나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민주노동당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거나 “2중대 정당을 만나서 뭐 하겠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자신에게 던져진 소중한 기회를 활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평론만 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력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며 “지금은 정파를 떠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당직자도 “국제사회의 눈이 지금 한반도로 쏠려 있다”며 “민주노동당이 ‘정당’의 이름으로 방북을 하는 만큼 평등파든 자주파든 책임감을 갖고 보다 생산적인 토론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평양에 가는 것은 ‘정파’가 아니라 ‘정당’이다.

필자소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