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성공과 어둠의 역사···각양각색 평가들
    정의당 “모든 죽음 슬프지만 마냥 애도만 할 수 없다”
        2020년 10월 26일 02: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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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급성심근경색으로 6여년 간 투병 끝에 25일 별세한 가운데,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고인의 업적을 평가하면서도 정경유착, 편법승계, 무노조 경영, 노조 탄압 등 초일류기업의 어두운 면을 함께 조명하고 있다. 이는 고인의 별세로 경영 전면에 나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남겨진 숙제이기도 하다.

    민주, 일부 지도부와 당의 상반된 공식 입장
    “파란만장 영욕의 삶…부정적 유산 청산할 과제”
    김태년 “국민적 자부심과 글로벌 DNA 심어줘, 후대 귀감”

    정치권은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에 일제히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정당마다 추모 메시지의 내용은 다소 엇갈린다.

    민주당은 이날 허영 대변인 명의의 서면 브리핑을 통해 “이 회장은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기업인으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던 영욕의 삶이었다”며 “삼성은 초일류 기업을 표방했지만, 이를 위한 과정은 때때로 초법적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영권 세습을 위한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내부거래, 정경유착과 무노조 경영 등 그가 남긴 부정적 유산들은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할 시대적 과제”라며 “이재용 부회장이 지난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들께 약속했던 ‘새로운 삼성’이 조속히 실현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원내 정당 중 가장 늦게 공식 논평을 냈다. 추모 메시지의 내용을 두고 당내에서도 고민이 깊었다는 것으로 보여준다.

    일부 당 지도부는 이건희 회장의 “부정적 유산”에 초점을 맞춘 당의 공식 논평과는 결이 다른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고인이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강화하고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등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페이스북 글이 논란되자, 이를 진화하기 위한 발언으로도 해석된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바로 다음 날인 27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세계 역사에 기록될 반도체 성공 신화를 창조한 혁신기업가의 타계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고 이건희 회장은 국내 1등이 세계 1위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국민적 자부심과 글로벌 DNA를 심어줬다. 1993년 프랑크프루트에서 신경영을 선언하며 삼성을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겠다고 한 이건희 회장의 기업가 정신이 거둔 업적”이라며 “고 이건희 회장이 평생 실천하려고 했던 혁신과 기업가 정신은 후대 기업인의 귀감은 물론 우리 경제의 성장과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고 찬사했다.

    노조탄압, 직업병, 정경유착 언급도 안한 국민의힘
    “이건희, 국민 자부심 높였던 선각자”

    국민의힘은 이건희 회장의 업적을 평가하는 데 중점을 뒀다. 그가 생전 기업을 경영한 당시 저질렀던 노조탄압, 직업병 문제, 편법승계 등의 문제에 대해선 함구했다.

    배준영 국민의힘 대변인은 25일 구두논평을 내고 “고인은 반도체, 휴대전화 등의 첨단 분야에서 삼성이 세계1위의 글로벌 기업이 되는 기틀을 마련했다. 국민의 자부심을 높였던 선각자였다”고 평가했다.

    배 대변인은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세계 초일류 기업을 위한 뼈를 깎는 노력, ‘마누라, 자식 빼놓고 모두 바꿔라’라는 혁신의 마인드는 분야를 막론하고 귀감이 됐고, 미래를 선도할 인재에 대한 애정과 철학은 지금도 인재육성의 교본이 됐다”며 “고인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혁신과 노력을 통해 다가올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 “누군가의 피눈물로 쌓은 무덤이 오늘날 삼성의 역사”
    이건희 회장 업적 나열 대신 삼성에서 사망한 노동자 이름 호명

    이건희 회장의 조문을 가지 않기로 한 정의당은 일관되게 삼성의 어두운 면에 무게를 뒀다. 특히 양당이 고인의 업적을 나열하는 데에 무게를 실었다면, 정의당은 삼성의 노조탄압과 직업병 문제로 사망한 고 최종범씨와 고 염호석 씨, 고 황유미 씨 등을 호명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26일 대표단회의에서 “잊어서는 안 될 비극과 누군가의 피눈물로 쌓은 무덤이 바로 오늘날 삼성이 세워진 역사”라며 “모든 죽음은 슬프지만 마냥 애도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삼성의 역사는 우리 산업의 발전을 선도한 역사이지만 정경유착의 잘못된 역사이기도 하다”며 “고 노회찬 의원도 의원직 박탈이라는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삼성 일가의 재산상속과 그 과정에서 있었던 편법, 불법은 여전히 정확히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조합의 권리를 억압하고, 노동자의 작업환경 문제를 은폐했던 역사 역시 청산해야 한다”며 “잊어서는 안 될 비극과 누군가의 피눈물로 쌓은 무덤이 바로 오늘날 삼성이 세워진 역사다. 고 황유미씨 등 반도체 공장 노동자, 불법적인 무노조 경영 원칙에 희생된 고 최종범, 고 염호석 등 노동자들의 죽음, 그리고 기술을 빼앗기고 탈취를 강요당한 중소기업의 억울함이 잊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죽음은 슬프지만 마냥 애도만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이건희 회장의 사망이 단순히 망자에 대한 조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이배 “이건희 차명자금, 밝혀진 규모만 4.5조원…국세청, 재조사해야”

    각 정당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삼성 문제를 끈질기게 다뤄온 전·현직 의원들은 이건희 회장 이후에 집중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차명계좌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 부정 문제 등을 폭로한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26일 오전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인터뷰에서 10조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 이건희 회장의 상속세 문제와 관련해 “지켜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더 이상 꼼수, 편법은 안 될 것”이라며 “(총수일가가) 지배력을 유지하면서 세금을 내는 방법을 찾을 텐데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하겠지만 세금 앞에 장사 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지켜야 되는 법인 만큼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유가족분들도 당연히 그에 따른 정당한 세금은 낼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이 가지고 있는 삼성전자 주식을 상당수 팔게 되면 경영권과 지배력을 상실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에 대해선 “현행법 상 계열사의 주식을 3% 이상 갖지 못하도록 돼있는데, 이미 삼성은 그걸 훌쩍 넘어서 있기 때문에 26조 이상을 처분해야 한다. 지금까지 이것을 유지하도록 해줬던 것 자체가 특혜”라며 “만약 삼성을 계속 봐주게 되면 다른 보험업자, 기업들도 똑같이 하게 되고 경제 질서가 엉망이 된다. 이 문제는 이번에 정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속세 문제를 다루기 전에 이건희 회장의 차명자금을 비롯한 전 재산의 규모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채이배 전 의원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2008년 삼성특검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건의 회장은) 1199개의 차명계좌가 있다고 하고, 당시 밝혀낸 차명자금은 4.5조 원이었다”며 “그 중 2.3조 원이 삼성생명 주식이었고 이를 제외한 2.2조 원이 현금 예금 무기명채권으로 가지고 있었을 거다. 12년 전에 나온 금액이기 때문에 여기에 더 금액이 붙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채 전 의원은 “특검의 자료만 가지고 말씀을 드렸는데 당시 특검이 다 밝혀냈다고 확신을 할 수 없다”며 “상속세 납부과정에서 국세청이 다시 이건희 회장에 대한 재산을 제대로 조사를 해서 상속세에 탈세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 오늘 시작
    박용진 “이재용과 삼성은 완전 별개…기업인 죄 처벌 않으면 나라 망해”
    채이배 “이건희 별세,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영향줘선 안 돼”

    이재용 부회장의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이 26일 재개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법정엔 출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용진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은 완전 별개”라며 “개인이 저지른 범죄를 확인하고도 처벌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삼성이라는 기업을 동원해서 사적 이익을 취했던 이재용 부회장의 범죄 혐의로 벌써 몇 명이 처벌을 당했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미 8명이 형사처벌을 받았고, 10명이 또 기소됐다. 이들 모두 유능한 세계적 인재들”이라며 “그런 사람들을 희생해가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상황이 맞나. 그런 일을 바로 잡겠다고 수사하고 재판하는 과정 자체를 불만 삼는다면 나라의 질서가 뭐가 되겠나”라고 반문했다.

    채이배 의원은 이건희 회장의 사망이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영향을 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채 의원은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과 이건희 회장의 별세는) 별개 사건”이라며 “다만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과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비판 여론이 이건희 회장이 큰 상속세 납부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판에는 영향을 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노동자 희생, 이건희 죽음 정리될 수 없어…이재용의 몫”

    민주노총도 논평을 내고 “이건희 회장은 2세 승계 후 반도체, 휴대폰 사업의 진출과 성공으로 삼성그룹을 자산총액 1위의 기업그룹으로 일구어 ‘한국 산업의 양적 성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며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만든 삼성의 성장은 정경유착과 특혜로 점철된 역사이기도 하다. 그는 수많은 반도체 산업 노동자의 죽음을 은폐했고 무노조 전략과 노조파괴를 일삼으며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과 죽음 위에 오늘의 삼성을 세웠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무노조 경영의 포기를 선언했지만 아직도 진행되는 노조파괴와 개입을 중단하고 삼성그룹에 제대로 된 노사관계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고 삼성의 노조파괴 과정에서 희생당하고 차별당한 당사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라”며 “반도체 사업장에서 벌어진 산업재해와 그 과정에서 유명을 달리한 분들에게도 마음을 담아 사죄하고 다시는 이런 끔찍한 일이 되풀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건희 회장의 죽음으로 위의 사안들이 정리될 수 없다. 남겨진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의 몫”이라며 “이제 남겨진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남겨진 그림자와 과를 청산하고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 정상적인 기업집단으로 국민들에게 기억되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경실련도 “고인이 이끌었던 삼성그룹의 성장은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재벌중심 경제구조를 고착화 하고 정경유착, 무노조 경영, 노동자 인권 탄압의 그늘도 남겼다”며 “삼성그룹은 고인의 유산을 성찰해 그룹의 후계과정에서 빚어진 과오에 대한 반성과 책임 있는 자세 그리고 투명한 상속으로 한국경제와 사계경제의 발전에 기여하는 기업으로 새롭게 거듭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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