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이념' 아니라 '관리 능력'이 문제다
    2006년 10월 19일 07:1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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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실험 이후 국내 정치지형이 복잡하게 변하고 있다. 북핵사태는 정계개편은 물론 내년 대선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폭과 강도다. 북핵을 둘러싼 입장 차이가 범여권 정계개편의 뇌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이 문제가 내년 대선의 기본 구도를 규정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핵 사태가 일종의 외생 변수로서 국내 정치에 영향을 주고 있다면, 국내 정치 지형의 변화는 다시 북핵 사태의 전개방향을 규정하는 핵심 변수 가운데 하나로 작용하게 된다. 북핵이건 대선이건 결국 정치의 문제이고, 둘은 서로 규정하고 규정받는, 분리불가능한 복합체의 한 요소를 구성한다.

북 핵실험 이후 국내 정치지형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과거의 냉전구도로 회귀한 듯 보인다. 이 같은 ‘강성’ 기류를 선도하는 것은 각 당의 대권주자들이다.

특히 눈에 띄는 사람은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다. 김 의장은 북핵 이슈에서 여당의 맨 왼쪽 끝에 위치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포용정책 수정 기류에 가장 먼저 반발한 것도 김 의장이다.

최대 민감 사안인 PSI 참여 확대 문제와 관련해선, ‘절대불가론’을 선도하며 연일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또 여당 일부 의원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20일 개성공단 방문을 강행키로 했다. "당 의장의 발언과 행보치고는 너무 센 것 아니냐"는 우려가 당 내에서 나온다.

   
  ▲ 좌로부터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  이명박 전 서울시장,  김대중 전대통령
 

김 의장측은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그의 한 측근은 "앞으로 사태 전개에 따라서는 여론이 일시에 경화되고 김 의장의 주장이 소수로 매도당하는 시기가 올 수도 있다"면서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서 소신을 접을 권리가 김 의장에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평화는 김 의장이 정치를 하는 본질적 이유"라고 했다.

김 의장 뿐만 아니다. 정동영 전 의장도 ‘햇볕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고, 천정배 전 법무장관도 "문제는 햇볕정책이 아니라 현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이라고 가세한 상태다. 이들 행보의 공통점은 여당 내 ‘DJ노선’의 강화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햇볕정책은, 적어도 여당 내에서는, 지배적 담론의 위상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반대편에선 한나라당 대권 주자들의 우경화가 두드러진다.

박근혜 전 대표는 "정부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실패다. 대북경협과 대북지원의 전면 중단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대북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전시 작통권 문제를 포함한 한미 연합방위체제 개편 논의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태도다. 한나라당 내 개혁적 성향을 대표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손학규 전 지사는 "북한이 핵 개발을 철회하지 않으면 어떤 경제협조도 안 된다"고 말했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기는 했으나 여전히 적지 않은 당내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이회창 전 총재도 "차기 정권은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초강경론을 내보였다.

여야 대권주자들의 ‘강대강’ 대치는, 물론 이들의 정치노선상의 차이를 반영하지만, 그 이면에는 대선을 앞둔 ‘게임의 법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효석 민주당 원내대표는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대선 후보들이 지지세력을 끌어모으기 위한 지렛대로 북핵 문제를 악용하고 있다"며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최근 여당 내 모 주자측 대선캠프의 한 관계자는 "정계개편은 일단 나중의 일"이라며 "지금은 정계개편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세력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당의 전통적 지지세력을 묶어내기 위해선 ‘선명한’ 입장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당내 세력 기반이 가장 취약한 손학규 전 지사가 가장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이유를 이런 맥락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현재의 정치지형을 ‘민족공조 vs 한미동맹’의 이분법적 구도로 보이게 만든다. 일각에선 이런 구도가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통일문제가 주요 구도로 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북한의 연착륙을 관리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왔으나 이제 북한의 급속한 붕괴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김윤철 진보정치연구소 연구기획실장도 "의제면에서는 ‘평화/반평화’의 구도가 가시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점쳤다.

그러나 이런 구도가 되더라도 유권자의 선택기준은 좀 더 복합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국민들은 북핵 문제를 ‘이념적 이슈’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어떤 이념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위기를 타개할 것이냐’는 것이라는 얘기다.

북 핵실험 이후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이 가파르게 치솟고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이 속락하는 현상을 이런 맥락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김윤철 실장은 "북핵은 ‘평화’라는 이념적 가치가 중심이 되는 이슈가 아니라 후보자의 ‘능력’이 강조되는 이슈"라며 "이명박 전 시장의 지지율 상승은 북핵 문제를 풀어갈 ‘능력’과 ‘해법’을 사람들이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북핵 문제는 정계개편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부에선 김근태 의장의 최근 행보를 이와 결부시켜 보기도 한다. 김 의장이 노 대통령과의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 내 친노직계를 대변하는 ‘참여정치실천연구회’ 김형주 회장은 "우리당 내부에 DJ와 뜻을 같이하는 세력이 DJ의 최근 북핵 관련 발언을 정계개편의 근거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노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 수정 시사 발언이 정계개편 과정에서 노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구실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북핵 문제가 범여권 정계개편의 뇌관이 될 경우 1차 폭발 시기는 우리 정부의 PSI 참여 확대 여부가 결정되는 이달 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병두 의원은 "정부가 PSI 문제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게 되면 우리당은 굉장히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철 실장도 "PSI 참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결정되는 시점에서 북핵 이슈가 정계개편의 뇌관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렇다고 대북정책의 노선 차이가 그에 맞는 세력재편을 직접적으로 불러올 가능성은 많지 않아 보인다. 대북제재 문제와 관련해 범여권 내 입장차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민주당은 19일 ‘미국과의 공조’를 강조하는 내용의 대북제재 당론을 내놓은 상태다. 김윤철 실장은 "’평화/반평화’가 의제 수준의 구도가 될 가능성은 크지만 이것이 곧장 세력재편으로 이어질지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북핵이라는 특수 국면에서 김 전 대통령이 정계개편의 핵심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윤철 실장은 "최근 김 전 대통령이 발언하면 여당의 입장이 정리되는 듯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근태 의장의 한 측근도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균형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한 축"이라고 했다. 최성 열린우리당 의원도 최근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대부분 의원들이 김 전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다"며 "김 전 대통령이 정계개편의 결정적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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