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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형사사법공조법,
    법조문과 현실의 간극에서
    국제노조에 떼인 퇴직금 받기 2년⑤
        2020년 10월 23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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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노조에 떼인 퇴직금 받기 2년 ④ “4차 국민신문고 민원과 ‘IUF가 다국적기업인가?’”

    노동조합은 쪽수다. 노사 교섭에서 단결된 쪽수가 미치는 영향력은 작지 않다. 교착상태인 교섭에서 단체행동이 예견되거나 실행될 때, (사용자가 다른 ‘의도’를 가진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국면은 전환된다. 교착됐던 교섭은 어느 정도 물살을 타고 상호 타협 가능한 곳에 정박하게 된다. (기업별 노조라면) 사업장이 운영되고 있다는 전제는 필요하지만.

    사업장 내 쪽수와 사업장 운영, 내게는 둘 다 ‘해당 무’다. 2018년 7월 1일부로 내가 가입한 전국여성노조는, (맞다면) 2000년부터 IUF의 회원조직이다. 노조는 내 체불퇴직금 문제 해결에 애를 많이 썼다. IUF에 5차례 공문을 보냈고, 사무총장과의 대화도 시도했다. 또 노동부 진정을 낼 때 자문노무사를 소개해 도와줬다. 하지만 IUF 사무총장은 노조 위원장의 대화 요청에 답이 없었고, 근로감독관의 진정 사건 조사에 필요한 피진정인 출석요구에도 불응했다.

    ‘체불퇴직금’ 싸움을 시작하면서 나는 “비사법적 분쟁해결” 노력을 경주해왔다. 그 노력이란, 대개 경험 안에서 가용 가능한 것들을 홀로 또는 함께 검토와 논의로 방향을 정한 뒤, 실행할 때 다시 도움과 협력을 구하는 식이었다. (다시 한 번 그동안의 연대와 응원에 감사드린다.) 그럼에도 연고 하나 없는 군산으로 이주한 후 내 일상의 모습은 ‘나홀로’다. 때론 나를 독려할 ‘펌프’를 찾기도 해야 한다.

    위 인용구는 작년 10월, 집 근처 도서관에서 빌린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주웠다. 소설 속 주인공의 아내가 어느 날 사라진다. 주인공은 ‘백수’로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오직 아내를 찾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재구조화한다. 내게 사라진 것은 ‘퇴직금’이니 그것을 찾아 나선 (역시 백수인) 나를 오버랩 시켰다. 갑자기 뚱딴지같은 소설 얘기냐고? 쪽수도 없고 사업장도 없는 이가 퇴직금을 받아내겠다고 달려드는 사례가 많지는 않았을 테니, 나로서는 어떻게든 버티고 나아갈 연료가 필요했다. 그런 와중에 『기사단장 죽이기』는 내 싸움에 다른 힘을 부여해줬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다.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레디앙 연재 2편[http://www.redian.org/archive/146916] 3차 국민신문고 민원記에서 민원의 결과는 쓰지 않았다. 이유는 (2편에 썼지만, 2020년) 2월 25일 3차(처리기관: 고용노동부)와 5차(처리기관: 법무부) 국민신문고 민원이 병합되어 다부처 민원으로 지정됐기 때문이었다. 시간 흐름상 이번에 담았다.

    퇴직금 청구 민사 시효 3년, 노동관계법 위반 관련 형사 시효 5년. 현재로선 내가 쓸 수 있는 “사법적 분쟁해결”의 카드다. 무작정 사용에 의의를 두는 것이 아니라 IUF를 압박해 퇴직금을 내놓게 하는 유효수로 만들려면 좀 더 확실한 것이 있어야 했다. 그게 간절했다. 민사는 국내 판결의 외국에서의 집행 강제라는 실효성 문제가, 형사는 법 위반 관련 수사와 처벌 가능성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국제 송사 중인 한 지인과의 통화에서 ‘국가 간 조약’이란 힌트를 얻었고, 그 단어를 검색해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공화국 간의 형사사법공조조약]을 찾았다. 직감적으로 이걸 ‘열쇠’로 쓸 수 있겠다 싶었다. (2019년 11월 6일에 신청했던 3차 국민신문고 민원 처리가 계류 중이던 올해) 2월 13일, 5차 국민신문고 민원(처리기관: 외교부)을 냈다. 요청사항은 ‘1) IUF의 퇴직금체불 사건 해결을 위한 국가 간 조약 활용 방법 안내와 2) 동 사건의 답변 준비 중인 고용노동부와의 공조’였다.

    외교부로 냈던 5차 국민신문고 민원 신청의 법무부 이송을 고지한 화면

    (며칠 뒤 알았지만) 5차 민원은 신청 당일 외교부에서 법무부로 이송됐다. 잘 몰라서 단순히 ‘형사문제’라 그런가? 했다. 어쨌든 2월 21일 이 사실을 3차 민원 고용노동부 담당자에게 고지하고 5차 민원 법무부 담당자와 연결시키는 거간꾼 노릇을 했다. 그렇게 2월 25일 (공조 요청이 받아들여져) 다부처 민원으로 지정됐(지만 답변은 각각 등록됐)고, 그 이틀 뒤인 2월 27일 법무부로부터 먼저 받은 답변을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국제형사사법공조법]에 따라 1) 수사관(내 경우 근로감독관이자 특별사법경찰관)이 검사에 신청해 2) 해당국 사법기관에서 해당 피고소인에 대한 일부 수사가 가능하다. 빙고! 며칠 뒤 법무부 검찰국 국제형사사법부에 다시 전화 문의했다. 조약 체결 없이도 ‘상호주의’ 따라 공조 요청이 가능하다는 긍정적 답변 외에 ‘형사공조’로 가기 위한 그 ‘절차’의 만만치 않음이 각인됐다. 그럼에도 기대하고 싶었다. 제네바에서, 자카르타에서 ‘법정퇴직금’ 체불에 대한 피고소인(IUF)에 대한 수사가 되기만 한다면 굉장한 압박이 될 테니까.

    5차 국민신문고 답변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3차 민원은 답변이 없었다. 3월 27일 통화한 고용노동부 담당자는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이 [형사소송법]과 공히 적용될 것이지만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해보지 않는 이상 그림은 안 그려질 테니 내 건을 시범 삼아 돌려보자’고 말했다. 잠깐의 포즈. 담당자는 여전한 ‘한계’와 ‘형식적 절차 안내’를 담은 답변을 내겠다며 다시 통화하자고 했다. 4월 1일 (마지막 통화로) 담당자는 (2편에서 썼지만) ‘너무 큰 기대로 실망할 경우 내가 어떤 극단적 선택이라도 할까’하는 우려와 함께 법조문과 만만치 않은 현실의 간극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한계지점을 염두 했음을 내게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마침내 4월 20일 오후8시 24분 11초, 3차 민원의 답변이 등록됐다.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5차 답변에서 알려준)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을 인용하면서도, 최초 3차 민원의 다른 요청사항도 잊지 않았다. 법리상 다퉈야 하는 팁을 넌지시 주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5차 민원의 답변이 가진 건조한 ‘법 안내’를 넘어 민원인으로 하여금 법과 현실의 ‘간극’을 직시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형사)고소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공조요청이 필요하다’는 판단 및 해당국에 요청하는 절차의 까다로움도 분명히 했다. 특별사법경찰관(근로감독관)을 시작으로 검사, 법무부장관, 외교부장관까지 ‘공조 필요’가 납득되어야 해당국에 공조 요청서가 송부된다.

    이렇게 법조문의 행간을 짚어준 뒤 (어렵사리) 국경을 넘는다 해도 해당국이 ‘공조 요청’을 수락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썼다. (그럼에도) 형사 고소를 제기한다면 담당 사법경찰관과 검사가 ‘공조 요청이 필요하다고 인정해야 할’ 실무적인 첫 관문임을 재차 강조했다. ‘범죄와 관련한 사실관계와 범죄사실이 명확히 밝혀지도록 관련 증거의 제출 및 최대한의 소명’이 첫 관문을 넘기 위한 기본 중의 당연한 기본을 한 번 더 짚어줬다. 어찌 보면 민원인을 ‘좌절’시키려는 답변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그렇게 읽고 싶지 않다. 오히려 ‘염려’를 담아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과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으려면 각오 단단히 하고 덤벼야’로 읽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법], 내 손에 쥐어진 또 다른 돌멩이가 그물에 걸리지 않도록 ‘뱀 같은 지혜’를 구하며 움직일 것이다. ‘조약’이라는 단어에서 시작해 일선의 근로감독관도 알지 못했던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을 찾아낸 것과 (내 진정 사건 때는 없었던) “외국인 민원인(사용자, 근로자)에게 발송할 수 있도록 출석요구서를 영어본으로도 만들어 근로감독관이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라는 답변을 받은 것은 어쨌든 움직임의 결과다. 내 앞에 놓인 것이 산 넘어 산이래도 쉬지 않고 가다보면 만나게 될 정상의 탁 트인 시야가 선물처럼 주어질 때까지 가볼 생각이다. 그 순간을 그리며 좌절하지 않고 한걸음씩 앞으로!

    필자소개
    전 IUF 아태지역 한국사무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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