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발전재단'이 뭔데 2천억원씩 달래나
    By tathata
        2006년 10월 19일 09: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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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억원 프로젝트. 노총 경총의 사이좋은 합의. 노동계의 상대적 무관심 속 발빠른 움직임. 노동부 밥그릇 뺏어올 거대한 민간 노사기구. ‘노사발전재단’ 이야기다.

    노경총은 노사정위원회에 지난달 ‘노사발전재단 설립 및 지원방안’에 관한 의제를 노사정위원회에 제안하고, 이를 집중 논의키로 했다.

    노경총은 “중층적인 사회적 대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중앙단위 노사대화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노사정위원회의) 3자 기구가 확실하게 뿌리내리지 못한 이유는 노사정 3자 대화의 근간이어야 할 노사 간 2자 대화가 취약해 노와 사가 정부를 사이에 두고 갈등과 대립으로 치달았던 것도 중요한 이유”라고 밝혔다.

    노사발전재단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노경총의 관련 자료에 따르면 재단은 △노사 공동의 고용 및 인적자원 개발 지원 사업(직업훈련) △취약계층 근로자에 대한 복지사업을 통한 노동복지 양극화 완화(근로복지) △노사 파트너십 형성을 위한 교육 및 연구사업(교육연구) 등의 사업을 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정길오 한국노총 대변인은 “노사의 자율적인 대화와 협력으로 노사상생의 패러다임을 모색하겠다”며,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직업훈련, 노사연구, 근로복지, 노동교육 사업을 노사가 공동협력을 통해 수행함으로써 자립적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경총이 민간노사기구로  정부가 수행하고 있는 업무를 대행하겠다는 말이다.

    노경총은 애초 임금과 근로조건 등에 대해서도 합의 및 협의기능을 갖추려 했으나, 이는 단계적 과제로 넘겨놓았다. 노사발전재단 설립을 위해 노경총은 종자돈(seed money)으로 정부에 2천억원을 요구하고 있다.

    노경총의 계획대로 재단이 설립될 경우, 정부가 주도하는 노동관련 업무는 재단으로 일부 이양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한국노총은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근로복지, 임금채권보장 등의 업무를 주관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사례를 들며, 근로복지와 고용보험 업무는 노사발전재단으로 넘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조원에 달하는 고용보험 기금을 재단이 관리하게 되면 재단은 엄청난 돈을 틀어쥔 거대한 민간노사기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재단을 성공시키기 위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의 행보도 바쁘다. 이 위원장은 “노사관계에 정부가 끼어들어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철학’을 피력하며 정부와 사용자단체의 고위 관계자들과 수시로 만나 재단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 지난 8월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한국노총을 방문, 이용득 위원장을 만나 "노사발전재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지난 3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직접 만나 설명했고,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이수영 경총 회장을 잇달아 만나 재단 설립에 합의했다. 김근태 열린우라당 의장도 지난 9월 "노사정위에서 합의가 되면 재정적, 입법적 지원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노사발전재단이 ‘표면상으로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노동계 안팎의 시각은 비판적이다. 민주노총이 배제된 채 진행되어 노동계의 대표성 자체를 담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민주노총은 공식적으로 재단참여 제안을 받은 적이 없다. 박영삼 한국노총 기획조정실장은 “노경총이 재단설립의 주체가 되고, 이후 민주노총과 대한상의에도 참여를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태현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민주노총을 뺀 채 진행되는 재단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며 “또 하나의 자리 만들기, 정부 돈 빼내가기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조직력과 내부 민주주의가 취약한 한국노총이 무리하게 재단을 설립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노사관계본부장은 “정부 주도의 노사관계에서 노사가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진전”이라면서도 “노총 상층단위에서만 진행되는 현재의 재단 설립 논의는 형식적일 수밖에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배 본부장은 “사업장 단위의 활동이 취약하고, 단위노조 또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한국노총이 재단을 만든다고 해서 문제가 쉽게 극복되지는 않을 것”이라며 “조합원들조차도 알지 못하는 재단은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용두사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지난 2004년 노경총과 정부가 맺은 ‘일자리 창출 사회협약’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된 사례를 예로 들었다. 제대로 된 재단 설립을 위해서는 노총 내 조합원들의 광범위한 의견수렴 등을 거친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노사발전재단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내부에 적지 않은 고민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천억이라는 적지 않은 기금문제는 물론 노동부의 업무를 일부 이관하는 것이 자칫 ‘기득권’을 빼앗길 수도 있는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노경총이 추진하는 사업에 돈을 지원할 경우 (민주노총과)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추후에 지역에서도 재단을 설립하겠다고 할 경우 그 때에도 지원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 일각에서 “한국노총이 로드맵 합의를 해준 이후 정부에게 너무 큰 요구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국노총은 노사발전재단의 모델을 유럽 각국의 사회협약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재단이 유럽의 모델과 등치시킬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유럽의 사회협약 모델이 노사정이 임금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하는 대신 고용안정과 강력한 고용보험, 실업수당을 받도록 합의한 것이라면, 재단은 사회협약의 실질적인 내용은 빠진 채 재단설립이라는 ‘껍데기’만 차용했다는 것이다.

    김연홍 금속연맹 정책국장은 “한국의 노사관계가 악화된 것은 직업훈련, 고용, 연구 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노동유연화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며 “고용안정 시스템 등 고용문제를 어떻게 하겠다는 청사진 없이 사업만 한다는 것이 노동자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노경총은 노사정위원회의 노사발전재단 논의를 빠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1월까지는 마무리하여 설립 시기를 최대한 앞당긴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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