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못 팔았어? 그럼 해병대 갔다와
        2006년 10월 18일 11:3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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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프트럭와 트레일러를 만드는 스카니아코리아의 판매사원 A씨는 지난 10일 오후 4시 36분 회사로부터 "극기훈련통보"라는 제목의 이메일 ‘입영통지서’를 받았다. 9월 한 달간 차를 팔지 못한 10명을 대상으로 12일부터 1박2일간 사설 해병대 위탁교육장에서 극기훈련을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에는 운동화와 세면도구 등을 지참하고 훈련을 위해 휴대폰 사용 및 흡연을 금지한다고 적혀있었다.

    12일 낮 12시 해병대 출신들이 운영하는 충남 태안 백사장 해수욕장 옆에 있는 안면도 해병대캠프장. A씨를 포함해 10명의 노동자는 아무도 원하지 않았지만 훈련장은 끌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입소하자마자 핸드폰과 지갑, 담배를 모두 빼앗겼다. 이들에게는 검은 색 해병대 훈련복과 해병대모자가 지급됐다.

       
     
    ▲ 10월 12~13일 충남 태안 안면도에 있는 해병대 캠프장에서 스카니아 노동자 10명이 해병대훈련을 받고 있다.
     

    해병대 출신 교관 4명이 훈련을 맡았다. 제식훈련과 피티(PT)체조를 시작으로 24시간 동안의 해병대훈련이 시작됐다. 13m 높이에서 앞과 뒤로 뛰어내리는 헬기레펠훈련,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뛰는 훈련, 보트타고 해상에 나가는 훈련까지 TV에서 보던 모든 훈련이 진행됐다.

    피티체조, 헬기레펠, 해상훈련, 행군에 선착순까지

    교관들은 마흔을 넘긴 노동자들에게 선착순으로 뛰어오기를 다섯 번이나 시켰다. 집단줄넘기를 2시간동안 시키는 등 훈련은 늦은 밤까지 계속됐다. 이날 밤 박병섭 마케팅담당이사와 강 모 영업부장이 초코파이를 사들고 훈련장을 찾아왔을 때 이들의 모욕감과 수치심은 극에 달했다. A씨는 "오십이 다 된 선배도 있었는데 이 나이에 내가 이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13일 새벽 6시 기상나팔과 함께 이틀 째 훈련이 시작됐다. 체조와 백사장 구보를 했고, 8Km 행군까지 진행됐다. 모든 훈련이 끝나고 소감을 적는 소원수리를 쓰고 나니 낮 12시였다. 강제훈련을 받은 노동자 중에 해병대 출신이 있어서 교관들에게 회사에서 어떻게 훈련을 의뢰했는지 물었더니 "부적응자이기 때문에 정신교육 확실히 시켜서 보내달라고 오더를 줬다"고 전했다.

    심지어 회사는 훈련받은 사진까지 사원들에게 보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거부하지 못하고 끌려갔어요. 안 갔으면 업무지시 불이행으로 처리됐을 겁니다. 이 나이에 선착순을 하는 내가 정말 한심하더라구요. 회사는 그걸 목적으로 했겠죠." A씨는 그 날의 수치심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12월까지 판매부진 노동자 해병대 강제훈련 계속

    더 충격적인 일은 회사가 강제 해병대훈련을 12월까지 계속 실시한다는 사실이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9월 캠페인을 시작하며 무실적자의 근절을 외쳤으나 이달도 10명의 무실적자가 나와 추석 직후 바로 하드 트레이닝이 있을 예정"이라며 "장기 무실적자는 적법한 절차에 의거 처리할 계획이고 캠페인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10월에도 판매실적이 없는 사원은 11월 해병대훈련에 강제 입소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병섭 마켓팅 담당이사는 "무실적자에 대해 강제적으로 실시한 건 사실"이라며 "12월까지는 계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비인간적인 처사가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문제가 된다면 검토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강제훈련에 참가한 노동자 10명 중에서 5명은 금속노조 스카니아코리아지회 조합원이었다. 훈련에 참가했던 한 노동자는 "해병대 훈련은 실질적으로 나를 비롯한 몇몇의 조합원들을 타깃으로 한 교육이었다"고 말했다.

    "전두환시대 삼청교육대도 아니고, 있을 수 없는 일"

    이 소식을 들은 금속연맹 법률원 조수진 변호사는 "TV 프로그램 긴급출동 SOS 24에 사연을 보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황당해했다. 그는 "전두환시대 삼청교육대도 아니고 어떻게 지금 시대에, 그것도 유럽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판매실적이 저조하다고 원하지 않는 노동자를 신체구금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기업인 스카니아코리아(대표이사 이상원)은 경남 사천에서 트럭, 트레일러, 버스 등을 조립하고 판매하는 회사로 생산, 정비, 판매노동자 240여명이 일하고 있다. 이 중 현재 30여명의 노동자가 금속노조 스카니아코리아지회 조합원으로 가입해있다.

    노동자들은 지난 해 9월 12일 노조를 만들고 전체의 절반인 120여명이 노조에 가입했으나 회사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았다. 회사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안 마저도 일방적으로 거부하면서 노사관계를 극단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 논현동 본사에서 20차 교섭을 했으나 형식적으로 교섭에만 나올 뿐이다.

    지난 해 9월 26일 이상원 대표이사가 사천공장을 방문한 후 20여명이 노조를 집단탈퇴했고, 이 중 12명이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다"며 12월 1일 노조에 다시 가입했다. 그러나 18일 대표이사가 다시 사천공장을 방문해 부서장과 회의를 한 후 19∼20일 20여명이 또 노조를 탈퇴했다.

    회사는 노조 간부들에게 권고사직을 종용하고, 이를 거부하자 부당한 인사발령을 내기도 했다. 경기 포천에서 일하는 사람을 경남 사천으로 인사발령을 내는가 하면 몸이 불편한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여성조합원을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으로 발령내기도 했다. 군포에서 일하는 조합원을 아산으로 발령 내 2시간 넘게 출근하게 만들기도 했다.

    스카니아코리아 박태영 지회장은 "근무연수가 가장 오래된 승진대상 조합원을 승진에서 제외시키고 일방적인 인사발령을 밥먹듯이 하고 있다"며 "스카니아는 부당노동행위 제조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 연봉을 알리지 마라 그럼 짤린다"

    회사는 지난 6월 직원들과 연봉계약을 하면서 "연봉을 타인이나 동료에게 알리지 마라. 알려지면 퇴사의 사유가 된다"는 영문 내용에 전부가 서명하도록 했다. "기술이 떨어지는 사람이 똑같이 일하는 데 왜 나는 월급 적냐고 항의할 수 기 때문"이라는 게 회사 얘기다.

    그러나 회사의 목적은 노동조합의 임금협상 요구를 막고 법적으로 지급해야 할 각종 수당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박태영 지회장은 "회사는 연장근로수당 1년치를 취합해서 그걸 여름휴가로 대체한다고 얘기하고 있다"며 "임금산출 근거를 공개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있어 임금협상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연맹 법률원장인 김기덕 변호사는 "서명을 했더라도 연봉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시킨다면 부당해고에 해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카니아의 한 조합원은 "스웨덴은 나의 안티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노동자 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 기업인 스카니아가 한국 노동자에게는 노동자 탄압 회사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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