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미 합작영화 ‘전쟁으로 한걸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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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18일 02: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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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성 교수(동국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판 편집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북한의 핵문제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한다. 객관적 현실과 안보 담론 형태로. 그리고 그 담론은 안보 관료조직이 “사건을 해석하는 독점권을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규정하고 전개”시켜 나가는 대로 구성된다.

    또 안보 관료조직은 “안보담론이라는 ‘대량설득무기’를 사회 전체에 확산시킴으로써 사회를 군사화하고, 모든 사건을 안보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 이들은 담론화된 안보 ‘문제’를 자신들의 동맹군인 ‘죽음의 상인, 안보 전문가, 보수 언론’을 통해 대중적으로 확산시킴으로써 일반 시민들을 자신들의 담론체계의 노예로 만든다.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것이다.

    이제 일반 시민들은 안보 동맹군이 던져주는 정보와 사고체계, 논리구조에 익숙해진다. 평화 담론은 사라지거나 주변화 또는 왜소화된다.

    박순성 교수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0월호에 발표한 ‘군사주의의 함정에 빠진 한반도’라는 제목의 글에서 북핵 문제의 담론 분석을 통해 대결과 갈등의 주체이며 배후에 있는,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과 북한의 지도부의 생존 전략이라는 ‘권력투쟁’의 단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박 교수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질서는 9·11테러 이후 미국의 네오콘이 자신들의 안보담론에 따라, 세계최고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여 건설한 대테러 전쟁의 질서”이며 이러한 질서는 “안보관료, 죽음의 상인, 안보전문가, 보수언론이 공유하는 안보담론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안보담론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에서 “안보와 관련된 핵심 쟁점은 ‘위협의 실재 여부’가 아니라 ‘위협의 해석 방식’이다.” 따라서 “자연히 ‘담론투쟁’뿐만 아니라, 위협을 해석하는 주체와 권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언제나 문제가 된다.” 그리고 현재 진형형인 북핵 위기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북핵 위기가 시작된 1990년대 초반 이후 한반도의 안보 위협은 미국의 행정부, 안보전문가, 언론에 의해 규정”됐으며 “남한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미국이 제시한 안보 위협의 해석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해석’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미국은 ‘금지선’을 수도 없이 긋고, 지우고, 다시 그었”으며 “‘벼랑끝 전술’이 작동하는 ‘겁쟁이 게임’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설정한 ‘관용의 한계’를 북한이 넘으면 다시 새로운 한계를 제시”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미국은 안보 위협이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해석하여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보여”준 것이다.

    박 교수는 북한 외무성이 지난 10월 3일 핵실험 계획을 발표하면서 ‘절대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 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이라고 밝힌 것은 북한 스스로가 설정한 ‘금지선’이며 이는 “역설적으로 안보 위협 해석을 독점하려는 미국의 주도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현 시점에서 북한 지도부의 안보담론에 따르면, 금융제재는 저강도 전쟁을, 압력의 가중은 전쟁선포를 의미”하며 “한반도는 지금보다 더 위험하고 더 폭력적인 ‘물리적 대응조치’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군사전략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과 미국의 지도부에게, 그들의 군사주의를 맹목적으로 뒤따르는 우리 사회 내부의 안보집단에게, 우리는 그들이 전쟁을 함께 만들어내는 공범들이라고 말해야” 하며 “이제야말로 우리는 안보를 주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시민적 권리를 되찾아 와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미국과 북한은 진정한 협상으로 전쟁기계를 멈추어라!”고 외친다.

    다음은 박순성 교수 원고 전문

       
     ▲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군사주의의 함정에 빠진 한반도

    북한의 핵실험은 2002년 10월부터 시작된 2차 북핵 위기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다. 분명 2006년 10월 9일 이후의 한반도 상황은 북한의 핵실험 이전 상황과 같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진정으로 우리는 북한의 핵실험 이후 ‘다른 세상’을 살기 시작했는가.

    사건의 의미는 우리에게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이는 안보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안보 관료조직은 사건을 해석하는 독점권을 확보함으로써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규정하고 전개시키려 한다.

    군부와 안보전문가들이 사태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무기체계나 군사전략에 대한 기술적 전문성은 오히려 부차적 요소이다. 그들은 안보담론이라는 ‘대량설득무기’를 사회 전체에 확산시킴으로써 사회를 군사화 하고, 모든 사건을 안보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

    군부와 안보전문가들은 현대사회의 대중들을 대량설득무기로 포획하는 과정에서 대중매체와 보수언론인을 자신들의 핵심 수단과 동업자로 활용한다. 일반 사회구성원들은 자신들이 확보한 무기체계, 실제로는 안보관료조직이 대중매체를 통해 유포한 안보담론의 노예가 되고 만다. 안보집단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서도 무기체계가 사고방식과 행위 양태를 규정하기에 이른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질서는 9·11테러 이후 미국의 네오콘이 자신들의 안보담론에 따라, 세계최고의 군사력을 기반으로 하여 건설한 대테러전쟁의 질서이다. 9·11테러는 원인도 조건도 없는, 인과관계의 틀을 벗어난 절대적 악에 의한 파괴행위로 규정되었다.

    9·11 이후의 세계질서는 안보관료, 죽음의 상인, 안보전문가, 보수언론이 공유하는 안보담론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더구나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조한 자들은 그들의 세계를 영원히 지속시키려 한다. 대테러전쟁은 ‘영구전쟁’이다.

    모든 것들이 안보담론의 대상이 되어 버린 사회에서, 안보와 관련된 핵심 쟁점은 ‘위협의 실재 여부’가 아니라 ‘위협의 해석 방식’이다. 자연히 ‘담론투쟁’뿐만 아니라, 위협을 해석하는 주체와 권위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언제나 문제가 된다.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핵 위기에서도 사태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지 않다.

    북핵 위기가 시작된 1990년대 초반 이후 한반도의 안보 위협은 미국의 행정부, 안보전문가, 언론에 의해 규정되었다. 남한 사회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미국이 제시한 안보 위협의 해석을 거부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은 ‘금지선’을 수도 없이 긋고, 지우고, 다시 그었다. ‘벼랑끝 전술’이 작동하는 ‘겁쟁이 게임’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설정한 ‘관용의 한계’를 북한이 넘으면 다시 새로운 한계를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미국은 안보 위협이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해석하여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보여주었다.

    북한은 핵실험 계획을 발표(10월 3일)하면서, 이번에는 자신들의 금지선을 스스로 제시하였다. ‘절대로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핵무기를 통한 위협과 핵 이전을 철저히 불허할 것’이라는 북한 외무성의 성명은, 역설적으로 안보 위협 해석을 독점하려는 미국의 주도권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의 국방장관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핵기술을 확산한다면,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게 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미 금지선에 대한 미묘한 해석의 변화가 엿보였다. 핵기술의 이전이 새로운 관용의 한계, 실질적인 안보 위협으로 설정되었다.

    비록 북한의 핵실험이 우리에게 낯선 세상의 문을 여는 사건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분명 핵실험 이전과 이후는 같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북핵 위기의 본질이 분명하게 드러났으며, 우리는 더 이상 문제의 본질을 회피할 수 없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미국이 이러한 관계를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북한에 대해 압박정책을 포함한 악의적 무시정책을 펼 때, 북한에게 다른 대안은 없었다.

    2005년 여름에 시작된 4차 6자회담에서 합의된 9·19 공동성명의 핵심은 여전히 핵무기 개발 포기와 체제보장이었다. 북한은 미사일 시험발사에 이은 핵실험을 통해 9·19 합의의 핵심 고리가 미국의 금융제재에 의해 끊어졌음을 세계에 보여준 것이다.

    현 시점에서 북한 지도부의 안보담론에 따르면, 금융제재는 저강도전쟁을, 압력의 가중은 전쟁선포를 의미한다. 한반도는 지금보다 더 위험하고 더 폭력적인 ‘물리적 대응조치’의 위협 아래 놓이게 되었다.

    북한의 선군사상과 미국의 군사주의가 대응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한반도가 전쟁의 위험에 한 걸음 더 다가갔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군사전략적 사고방식에 완전히 매몰된 북한과 미국의 지도부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힘겨루기는 전쟁의 톱니바퀴를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유엔 헌장 7장 41조에 근거한 경제제재와 외교관계 단절은 ‘무력에 의한 시위, 봉쇄 및 다른 작전’으로 가는 길목의 이정표일 뿐이다. 7장 41조 다음에는 무력행동을 정당화 하는 42장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유엔이 현실정치의 산물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되돌아보면 한반도에서 전쟁기계는 이미 작동하고 있었다. 북한의 핵실험은 우리가 거부하고 싶은 사실을 현실에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었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핵 위기의 진실을 밝혀내고, 한반도 전쟁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여야 한다. 진실을 거부하고 냉정한 현실 분석을 회피할 때, 전쟁은 다시 우리 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제야말로 우리는 안보를 주도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시민적 권리를 되찾아 와야 한다. 군사전략적 사고에 사로잡혀 있는 북한과 미국의 지도부에게, 그들의 군사주의를 맹목적으로 뒤따르는 우리 사회 내부의 안보집단에게, 우리는 그들이 전쟁을 함께 만들어내는 공범들이라고 말해야 한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1953년 7월 정전협정 이후 단속적으로 고조되어 온 전쟁 위기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힘없고 가난한 민중들의 삶을 끊임없이 고통에 빠뜨리고 억압해 왔다. 전쟁기계의 톱니바퀴 소리가 더 거칠어지기 전에, 우리는 외쳐야 한다. 북한과 미국은 진정한 협상으로 전쟁기계를 멈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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