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별노조 또는 민주노조운동과 단절
        2006년 10월 17일 05: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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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조운동은 개발독재와 반동노조의 대립물이다. 그것은 자유주의적 민주화가 전진한 후방에서 발생하여, 성장한 자본주의의 울타리 안에서 발전하였다. 무엇보다도 민주노조운동은 진보정당과 산업노조 이전의 과도 운동이다.

    세계 최저 수준의 노동조합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 그리고 노동소득 집중도와의 연관성은 한국 노동운동의 현 단계가 한편으로는 상인자본에, 한편으로는 비숙련 직인에 대항하던 장인길드(craft guild) 정도에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계급형성에 실패하였다는 측면에서 민주노조운동은 계급연대 이전의 계급선도 운동이다.

    1.
    산업노조가 아무 것도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노조화는 지금 노동운동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고, 산업노조에게 무엇을 하게 할 것인가가 노동운동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현재 상황으로 봐서는 ‘김빠진 산업교섭’과 ‘박 터지는 기업교섭’이 고착화될 수도 있는데,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기업교섭을 최소로 억제해야 한다.

    관료화나 비민주화의 가능성을 들어 산업노조로의 집중에 반대하는 것은 섣부르다. 언젠가는 관료화될 것이 분명하지만, 현 시점에서 노동운동의 문제는 무정부성에 있지, 과도한 집중성에 있지 않다. ‘기업노조에 좋은 계급분절’에서 ‘기업노조에 나쁠 수도 있는 계급연대’로 이행하기 위한 반편향이 필요하다.

    2.
    산업노조화라는 조직적 반편향은 운동 의제에서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산업노조는 가급적 하급단체의 현안에 눈감고, 사회임금, 연대임금, 경제산업정책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기업노조의 임금인상이 미조직노동자의 부러움과 모범으로 기능한 것은 오랜 과거의 일이다. 하층노동자와 미조직노동자의 질시를 무마하고, 계급적 단결의 필요성을 고무하기 위해, 산업노조는 사회임금과 연대임금 쟁취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하층노동자와의 연대를 ‘서면으로 대체’하는 관행을 깨고, ‘납품가 후려치기(Cost Reduction)’ 같은 불공정거래를 근절하는 데도 앞장서야 한다.

    어느 나라 산업노조든 경제산업정책을 놓고 투쟁을 벌인다. 대기업 노조원들이 산업노조화에 찬성 투표한 것도 경제산업정책을 내놓고 고용을 보장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막상 산업노조 활동에 접어들면 그런 것을 까먹기 일쑤일 것이다. 기업현안과 산업정책 중 어느 것을 우선하는 것이 애초 목적이었는지를 냉정하고 일관되게 되뇌어야 한다.

       
    ▲ 1968년 5월의 파리 – 천만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나섰다

    3.
    산업노조화는 민주노조운동의 계승보다는 단절에 무게가 두어져야 하고, 사업전형을 일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수공업적 조직화와 전투적 쟁의에 대부분의 자원을 소비하고, 교육이나 정책은 으레 등한시하는 작풍으로는 시대에 맞서기는커녕 구닥다리 재야운동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투쟁조끼 만들 돈이면 전조합원에게 재미 있는 교육용 DVD를 돌릴 수 있고, 대규모 행사 한 번 할 돈이면 정부기구에 맞먹는 정책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다. 집회에 동원되는 연인원의 절반 정도만 참여해도 산업노조의 선전 캠페인으로 전국 거리를 뒤덮을 수 있다.

    4.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왜곡된 분열구조 – 같은 산업노조를 분할하는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한국노총이 지금도 나쁜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노동조합의 통합은 도덕률 따위와는 무관한 문제다.

    양 노총을 통합하자는 제안이 한 나라에 하나의 총연맹이 있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은 아니다. 양 노총의 통합 시도는 실제로는 세 개쯤으로 나누어질 총연맹들 사이에서 교섭 통합력을 행사할 강력한 흐름을 만들기 위한 것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양 노총의 통합은 한국노총 조합원의 90%인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민주노총 조합원의 80%인 대기업 노동자들의 연대다.

    80년대에 수도권의 활동가들은 나름의 분석에 따라 영남권의 중화학공업으로 대거 이동했고, 그 결과물이 민주노조운동이다. 지난 20년 사이 노동시장 내 최대 집단이 중화학공업 남성 정규직에서 판매서비스업 여성 비정규직으로 바뀌었는데, 한국 특유의 군사문화와 남성 중심성을 가진 민주노조운동은 이렇다 할 대처를 못하고 있다. 마치 1970년대의 섬유노동자들처럼 외롭고 배고픈 이들이 있다. 노동운동이 갈 곳은 자명하다.

    노동운동의 주력 역시 성장산업으로서의 중화학공업에 의존하는 데에서 사회연대 기제로서의 공공사회서비스를 주도하는 데로 이동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성장 과실의 분점자에서 새 사회 생산자로의 헤게모니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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