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렘브란트 반 레인이라고?
    아주 특별한 미술관 이야기
    [그림책] 『안나의 신비한 미술관 모험』(비외른 소르틀란 / 주니어김영사)
        2020년 10월 13일 03: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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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에 간 안나

    미술관에서 일하는 헤럴드 삼촌이 그림을 좋아하는 안나를 미술관에 데려 왔습니다. 하지만 헤럴드 삼촌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안나만 돌봐줄 수는 없었습니다. 헤럴드 삼촌은 자신이 일하는 동안 안나가 지켜야 할 것들을 알려 주었습니다.

    첫째, 삼촌이 일하는 동안 얌전히 있을 것 / 둘째, 이것저것 너무 물어보지 말 것
    셋째, 아무거나 함부로 만지지 말 것 / 넷째, 힘들다고 떼쓰지 말 것
    다섯째, 혼자 화장실에 가 버리지 말 것 / 여섯째, 사탕이나 음료수 사달라고 조르지 말 것
    일곱째, 안에서 뛰어다니지 말 것 / 여덟째, 집에 가고 싶다고 떼쓰지 말 것

    저는 이 부분을 읽다가 열을 확 받았습니다! 도대체 이럴 거면 헤럴드 삼촌은 왜 안나를 미술관에 데려온 걸까요? 저라면 이런 삼촌하고는 말도 안 할 겁니다. 아직도 이런 분들이 많을까요? 설마 저도 누군가에게는 헤럴드 삼촌처럼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어른일까요?

    하지만 착한 안나는 삼촌이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곧 삼촌은 사람들에게 미술관의 그림을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헤럴드 삼촌의 설명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안나는 조금씩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안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생리적인 현상을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요!

    그때 어떤 할아버지가 안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이 어딘지 아세요?”

    안나가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하하하! 화장실이 어디냐고? 그런 건 나한테 물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단다. 나 렘브란트 반 레인은 화장실에 안 간 지 아마 삼백 년도 넘었을 테니까.”

    렘브란트 반 레인이라고?

    세상에 미술관과 그림에 관한 책은 참 많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미술관과 미술에 관한 책 가운데 이 그림책 『안나의 신비한 미술관 모험』은 아주 특별하고 재미있는 책으로 오래도록 사랑받을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주인공 안나가 도슨트인 삼촌과 한 약속을 어기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약속을 지키는 이야기보다 약속을 어기는 이야기가 더 흥미롭습니다. 둘째, 화장실이 급한 주인공이 미술관에서 화장실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미술관처럼 거대한 건물에서 화장실을 찾는 일은 어린이에게는 거의 미로에서 출구를 찾는 모험일 것입니다. 셋째, 신기하고 놀랍게도 그림 속의 인물들이 말을 합니다. 결국 이 그림책은 주인공 안나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서 그림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판타지입니다. 넷째, 렘브란트, 뭉크, 피카소, 세잔 등 미술사 속에 나오는 화가와 모델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본다는 점에서 역사 드라마이며 시간 여행입니다. 다섯째, 주인공 안나는 판타지 속에서 모델이 되어보기도 하고 화가가 되어보기도 합니다. 이런 점에서는 삶의 체험 현장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여섯째, 무엇보다 주인공 안나는 렘브란트 반 레인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미술과 화가에 대해 1도 모르는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진짜 판타지라는 점이 그림책 『안나의 신비한 미술관 모험』의 가장 중요한 매력입니다.

    그림책 『안나의 신비한 미술관 모험』은 미술도 모르고 화가도 모르는데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미술책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림 속의 사람이 자신이 렘브란트고 화장실에 안 간 지 삼백 년도 넘었다는데, 우리의 주인공 안나는 겨우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왜 웃고 계세요?”

    안나는 렘브란트가 누군지, 화장실에 안 간 지 몇 백 년이 되었는지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안나에게는 화장실이 어디인지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화장실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자기를 보고 왜 웃냐고 렘브란트한테 따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안나의 신비한 미술관 모험』은 안나가 화장실을 찾는 드라마라는 사실이 아주 절박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림책입니다.

    큐레이터, 도슨트 그리고 현대 미술

    큐레이터는 학예사 또는 전시기획자를 뜻하는 영어입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수집하거나 전시를 기획하는 전문가입니다. 사실 일반인이 큐레이터를 직접 만나는 일은 드뭅니다. 그래서 큐레이터를 박물관의 숨은 꽃 또는 미술관의 숨은 꽃이라고 부릅니다. 그에 비해 관람객을 만나서 직접 전시와 작품에 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 도슨트입니다. 그래서 도슨트는 박물관의 얼굴 또는 미술관의 얼굴이라고 하지요. 도슨트는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일정한 교육을 이수하면 누구든 도슨트로서 일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큐레이터든 도슨트든 교수든, 전문가들만이 그림을 보고 이해하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든 그림을 자유롭게 보고 즐기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그림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모든 예술이 자유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모든 감상도 자유에서 비롯됩니다. 자유로운 예술이 자유로운 전시와 자유로운 감상을 통해 완성되는 것입니다.

    특히 현대 미술은 다양하고 난해한 표현 방식 때문에 더 더욱 관람객에게 어렵고 다가가기 힘든 예술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안나의 신비한 미술관 모험』은 화장실에 가고 싶은 어린이도 현대 미술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미술관에서 화장실을 찾느라 그림 속의 주인공에게 화장실이 어딘지 아냐고 묻는 것만으로 진짜 감상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미술의 즐거움은 지식이나 가식이 아니라 그림과 모델과 화가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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