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불퇴직금과 어떤 실수
    국제노조에 떼인 퇴직금 받기 2년차③
        2020년 10월 08일 10:5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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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팔림은 나의 힘: 3차 국민신문고 민원記

    어떤 실수, 선명한 기억의 2014년 2월의 어느 날

    2014년 2월 10일은 당시 IUF 아태지역총장 직무대행과 함께 새로운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날이다. 회사의 대표가 바뀌었다고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는 경우는 없을 테니, 나에게도 (계속 일을 하고 있던) 다른 동료들에게도 이례적이었을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돈’이다.

    만40년을 일했던 IUF 아태지역총장이 퇴임하면서 그간의 출장 및 시간외 수당 등을 모두 청구해 수령했(다는 이야기를 당시 직무대행에게 들었)다. 시드니 소재의 아태지역본부 사무소를 자카르타로 이전 결정했지만, 그곳에서 일했던 동료는 재택근무로 고용을 유지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그 결정이 번복돼 만25년 경력의 동료가 구조조정(해고)됐고 그에 따른 연차 수당 등을 지급(했다고 또 들었)다. 그 무렵 ‘그’ 직무대행은 지역본부의 자금이 거덜 났다는 식으로 (내게 스카이프로) 토로했었다. 그러다가 호주의 한 가맹조직이 관리하고 있던 거액의 기금 통장을 발견해 아주 기뻐했고 연간 이자도 상당하다고 했었다. 허나, 그 두 명의 퇴직자가 수령한 일종의 ‘법정수당’에 보였던 그의 반응이 내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반년이 지난 뒤였다. (작년 글을 읽었던 이들은 눈치 챘겠지만) 개악된 포괄근로계약서 체결을 말하는 거다.

    [2019년 연재글 중 관련 링크 http://www.redian.org/archive/137666]

    그날 사무실에서 이메일로 (갱신된) 근로계약서를 받아본 뒤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시간외 수당 등 청구를 막는 것은 위법인데…’ (지금에서야 내 발등 찍은 ‘피식’ 오만한 미소의 대가를 치루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한국사무소 일방폐쇄와 해고’ 같은 일이 생길 거라 상상도 못했고, 급여 수준도 만족했었다. 또한 신설된 연말 보너스로 시간외 수당을 벌충하면 되겠다고 참으로, 사용자에겐 아주 충성스런 ‘근로자’의 마인드를 가진 채, 그 근로계약서에 서명했다.

    대학시절 노(동자)학(생)연대, 노동조합으로 사회생활까지 무려 25년을 그 언저리에 있었던 내가 이와 같은 주제 파악을 하고 있었으니 누구를 원망하기도 부끄럽다.

    (당하고 다시 본 개악됐던) 그 근로계약서엔, 그 직무대행 딴에는 (나처럼 법이 정한 것이래도) 추가 금품청구를 막기 위한 나름의 안전장치를 하려 함이었던지, 이전한 자카르타 소재 아태지역본부의 주소 대신 자문 ‘법률사무소’ 주소를 해당 계약서에 기재했다. 2018년 10월 16일 전국여성노조를 통해 ‘체불퇴직금 지급’을 요구하니, 근로계약서 상 해당 법률사무소를 언급하며 ‘준거법’이 인도네시아법이라고 주장했던 것을 보면, 그에겐 법률사무소의 이름과 주소만이, 내가 청구하는 퇴직금을 거부할 한 가닥 희망이었던 것 같다.

    IUF가 (한국법이 정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자신들은 계약서 상 모든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하는 근거가 어쨌든 내 손을 거쳐 갔다. 내 손으로 서명한 근로계약서가 있다는 변치 않는 ‘크나큰 실수’를 우선 직시하며, 그럼에도 ‘주장’이 아닌 명시적 ‘판정’으로 한국법 상 구제받을 길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그 첫 번째 소결을 얻은 것은, 작년 노동부 진정 사건 직전까지의 ‘주스위스한국대사관, 스위스 정부(경제부와 법무부),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 등’을 거치면서였다.

    [주스위스한국대사관 관련 링크 http://www.redian.org/archive/137988]
    [스위스 정부 관련 링크 http://www.redian.org/archive/138183]
    [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 관련 링크 http://www.redian.org/archive/138442]

    ‘증명’을 위한 첫 번째 노동부 진정이 ‘피진정인(IUF 사무총장과 아태지역총장)의 출석 불응’으로 더는 손 쓸 수 없게 끝나버렸다. 내가 만든 실수를 교정하는 것이 ‘몇 마디 말’이나 ‘적은 수고’로 끝날 수 있었다면 애당초 ‘한국사무소 폐쇄’나 ‘해고’같은 사달은 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노동부 진정 후기 관련 링크 http://www.redian.org/archive/138879]

    (여러 정황상) 지역총장 자신의 출신성분(!)이 노동조합 임원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불안함 너머의 진실을 보지 못한 채, (전임 지역총장의 은퇴로 2013년 경 그만둘 생각을 언급했던) 나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고 (2014년 당시 고사했던 급여 인상도 해주고, 역시 그 즈음 세계사무총장 후보로 거론됐던) 그가 던졌던 ‘너도 같이 제네바 가자’는 그 말을 진심으로 듣고, (당시엔 내 ‘능력의 한계’로 고사했다가, 이미 시간은 흘러, 그가 아닌 다른 사무총장 후보도 정해졌던 2016년 5월 한국에 왔던 그에게) 감히 ‘제네바 갈(은퇴할 한 고참 동료의 업무를 이어가고 싶은) 야망’을 드러낸 것이 (내 생각이지만) 그에게 반하는 ‘불경스런’ 일이 됐던 것 같다. 그는 그때 놀란 눈치를 보였지만, 그 고참 동료에게 내 뜻을 전하겠다고 했다. 2016년 10월, 그가 지역총장으로 정식 선출된 후 어느 날, (내가 하고 싶다고 했던) 그 동료의 일을 다른 동료가 하게 됐다는 (묻지도 않은) 소식을 알려왔다. 그 소식이 거짓임이 밝혀진 것은 다시 1년이 흐른 2017년 12월 24일 제네바에서였다. [개인 블로그 관련 링크: https://blog.naver.com/asrael73/221734086124]

    ‘소설’처럼 읽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소위 권력자가 품어내는 언행의 행간을 읽지 못했던 내 어리석음에 대한 진단이고, (일종의 역설이지만) 지금 내 앞에 펼쳐진, 앞으로도 펼쳐질 모든 ‘수고’를 마땅히 감당해야 한다는 처방전이기도 하다. 내겐 학생운동 끝내면서 (당시 내 학번대의 현장개념인 ‘공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까닭에, 우연히) 시작한 노동조합 상근자로 ‘먹고 살았던’ 일이, 그에겐 감히 넘지 못할 벽이었음을 내게 (지나서라도) 일깨워준 셈이니, 그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더 이상 화내고 싶지 않다. 다만, 그가 ‘의도’를 갖고 펼쳐놓았던 판에 내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실수’를 했으니, 그걸 만회하는데 온 힘을 다할 따름이다.

    필자소개
    전 IUF 아태지역 한국사무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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