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안 사촌교회
산촌의 옹달샘 같은 교회
[그림 한국교회] 네 기둥의 교회종탑
    2020년 10월 05일 1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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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같이 일하는 직원이 찍어온 사촌교회 사진을 받아들었을 때, 참 수수하고 소박한 교회당에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면서 나태주 시인의 시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시절인 2010년 9월 16일, 대전목회자 인문학아카데미에서 시집 “풀꽃과 놀다”를 읽고 나태주 시인을 초청하여 모임을 가졌습니다. 나 시인은 당시 공주문화원 원장이었는데, 사촌형님인 이근배 시인(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께서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소박하고 진솔하게 시와 삶에 대하여 강연하셨습니다.나 시인의 가장 유명한 시는 “풀꽃”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요즘처럼 척박한 시대에는 시 “사랑에 답함”을 품고 살아야하겠지요.

예쁘지 않은 것을 /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나 시인은 2019년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자기소개부터 남달랐다고 합니다. 시를 “사랑하고 아끼고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예쁜 마음을 정성스럽게 써 내려 간 연애편지”라고 하더니, 시인은 “그런 시를 써서 세상에 봉사하고 헌신하는 서비스맨”이라 했습니다. 또 자신을 일러 “바로 그게 일흔 넘어 용도폐기된 한 인간이 여전히 세상에 남아있는 이유”라며 넉넉히 웃었는데. 이런 마음이 담겨서인지 시는 참 담백합니다.

이름이 ‘사촌’이라 친근한 사촌교회(김동일 목사)는 123년간 경남 함안군 군북면 사촌리에 뿌리내린 구원과 생명의 옹달샘입니다. 1897년 3월, 호주장로교 선교사 손안로(Andrew Adamson) 선교사의 전도활동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손안로 선교사의 전도방법은 순회전도로써, 부산 초량은 물론 동래, 울산, 마산, 창원, 통영 그리고 거제도 등 경남 일원을 순방하였고, 한국인 전도사들을 택하여 약품과 책자를 배부하고 이를 전도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부산 양산교회, 마산 문창교회, 창원 월백교회, 의령 상정리교회 등과 함안 사촌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손 선교사가 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 집안의 조동규씨에게 전도할 때, 그는 예수를 믿으면 조선이 독립할 수 있는지를 되물었고, 선교사는 “조선 사람 1백만 명만 믿으면 자동으로 독립할 것이요.”라고 답하자, 그는 기독신앙의 가치를 확신하고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사랑의 교리에 감화되고 독립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된 조동규, 조용관 형제는 교회를 짓도록 논 600평을 헌납하고 기와를 직접 사서 덮는 열의를 보였습니다. 이 형제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열정으로 산골에 복음이 빠르게 전파되었습니다. 특히 그 당시 이곳에서 근방의 광산에 2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상주한 것도 외딴 이곳에 교회를 설립한 큰 이유였다고 합니다.

1908년 손안로 선교사는 지역의 기독교인들과 함께 신앙을 바탕으로 한 민족교육을 위해 창신중·고등학교를 설립해 초대교장을 맡았습니다. 이 창신학교는 3·1독립만세운동 주도하고 신사참배와 성경교육 금지 등에 저항하다 폐교를 맞는 비운도 겪게 되지만, 복음전파와 개화사상 고취, 교육과 독립운동의 요람이 되었습니다.

조동규씨의 맏아들 조용석씨는 서울 경신중학을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과에 입학, 3학년 때 1919년 2월 2·8 독립선언서를 동경한인 YMCA회관에서 선언하고 위원들을 조국에 파송하는 등 3·1독립만세운동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사촌교회 출신으로 주목할 분은 이태준 순국열사입니다. 근면성실함을 인정받아 선교사를 통해 1907년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하고 재학시절 안창호 선생의 감화를 받아 항일독립운동에 뜻을 세웁니다. 제2회 졸업생으로 의사가 된 후 105인 사건에 연루되자 중국 남경으로 망명하여 기독회의원에서 일하다가, 1914년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몽골로 건너가 ‘동의의국(同義醫局)’이라는 병원을 개원합니다. 몽골에서 근대적 의술로 전염병을 퇴치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고, 몽골의 마지막 국왕의 주치의가 되어 1919년 7월 몽골 최고훈장을 받았으며 지금도 몽골에서는 신의(神醫)로 불린다고 합니다. 그의 병원은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독립운동 거점기지로 독립운동가들에게 숙식과 편의를 제공하였으며, 영사관 노릇을 했고,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는 등 비밀 항일활동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상해임시정부의 군의관으로 활약했으며, 한인사회당과 의열단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면서 의열단에 폭탄제조기술자 헝가리인 마쟈르를 김원봉 단장에게 소개하여 그의 도움으로 제조한 폭탄들로 의열단은 여러 파괴공작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1921년 레닌정부가 상해임시정부에 지원하기로 한 금괴 일부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일본군에 피살되어 38살 젊은 나이에 순국합니다. 2001년 몽골 울란바토르에 ‘이태준기념공원’이 조성되었으며, 1990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의 사촌교회(담임목사 김동일)는 서부 경남지역의 복음의 단초를 제공했던 만큼 많은 교역자가 거쳐 갔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김 목사님은 그림을 배우지 않았지만 자연을 그림으로 옮겨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고자 2018년 4월 부산에서 ‘자연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림=이근복

이번에 교회를 그릴 때 두드러진 것은 높은 네 기둥의 교회종탑이었습니다. 고산준령을 병풍삼아 서 있는 작고 소박한 사촌교회에 굴곡진 교회역사를 대변하는 보물이 매달려 있습니다. 1943년 일제가 대동아전쟁 때 탄환제작용으로 종을 압류하려고 할 때, 성도들은 이 종을 지키기 위해 교회 마루 밑을 파고 덮어 가까스로 보존하였다고 합니다.

박노해 시인의 수수하지만 치열한 여정을 담은 사진 글을 읽으며, 사촌교회가 123년을 넘어 구원과 사랑,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복음여정을 더욱 치열하게 감당하길 기도합니다.

나일강 동쪽에 펼쳐진 광대한 누비아 사막 / 피라미드는 찬란한 신비를 품고 묵언 중이고
낙타 떼는 불타는 사막을 가로질러 간다.
인생의 어느 고비 길이 사막 같다고 /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은 막막하여라.
그러나 막막함이 사라지고 나면 숨막힘인 것을, 삶은 그 막막함을 가꿔나가는 여정인 것을.

– 『박노해 사진 에세이 03, 길』(느린걸음 2020. 9. 1), 105쪽 “막막한 사막”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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