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쪽팔림은 나의 힘
    : 3차 국민신문고 민원記
    국제노조에 떼인 퇴직금 받기 2년차②
        2020년 09월 28일 12:2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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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동인(動因)이 다를 텐데, 살펴보니 내겐 ‘쪽팔림-부끄러움’이다. 그런데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이런 감정을 해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 다시 말해, 나를 무시하는 듯 배려가 없는 말이나 행동을 접했을 때 (얼음처럼 굳어) 바로 반박하지 못할 때가 좀 많다. 그리고 곱씹으면서 나를 괴롭힌다. 마침내 (내 수준에서) 상대의 의도가 ‘반복해서’ 읽히면 그때 대응한다. 그러니 사건 발생과 대응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차가 있다.

    그러니 뭐가 됐든, 그 사건이 어떻게든 교정해야 하는 절대 과제가 되는 한 그에 따른 수고는 내가 감당해야 한다. IUF를 상대로 한 지금의 ‘체불 퇴직금 분쟁’ 또한 그와 비슷한 맥락이기에, 최초 IUF에 체불 퇴직금을 청구했던 2018년 10월 16일 이후 근 2년의 시간 동안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셈이다.

    2019년 9월과 10월, 노동부 진정 조사와 유선 문의 때 근로감독관은 자주 ‘집무규정’을 들어 “고소장을 제출하면, 수사 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 기소중지 및 지명통보 단계까지 갈 수 있지만, 진정단계에서는 (출석을) 강제하기 어렵다”라고 말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진정에 이어 형사고소를 더할 경우, 노무사는 형사법에 따라 더 이상 내 사건을 대리할 수 없게 된다.

    당시 무슨 이유로 ‘형사고소’를 주저했는지 모르겠으나 그건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왜냐하면, 같은 해 10월 28일자 근로감독관의 진정사건처리통보서에는 ‘(해외 거주) 피진정인의 출석 불응 등으로 법 위반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이 어렵다’고 했으므로, 그들에 대한 출석 수사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면, 형사고소를 한다 해도 (여전히 작동하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기소중지, 지명통보’를 끌어내기는 결코 수월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내게 우호적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근로감독관에게 뒤통수를 맞은 내 순진함이 부끄러웠다. 그 쪽팔림이 재촉한 다음 행보는 2019년 11월 6일의 통상 3차 국민신문고 민원이었다. 처리기관은 다시 고용노동부. [IUF(국제식품연맹) 임금체불에 대한 고용노동부 재진정/고소 사건의 원활한 조사/수사 협조 요청]이란 제목으로 ‘비윤리적이고 위법적인 IUF 대표자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 법치가 바로 설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1) ‘출석요구서’의 영어 견본 문서 작성 및 고지; 2) ‘출석요구서’ 발부 후 출석을 촉구할 수 있는 통역 지원; 3) 고용노동부 국제협력담당관실 등을 통해 사용자에 직접 연락, 혹은 해당 국가의 대한민국 대사관이 직접 방문 또는 연락해 출석을 촉구할 수 있는 지침/규정 등 마련이었다.

    노동부 진정 때, 위 내용 중 직접 협조한 건도 있고, 대개는 근로감독관에게 나서서 해달라고 재차 요청했던 것들이다. 허나 대한민국 공무원 사회는 ‘규정에 없는 것은’ 솔선수범하지 않는다. 말로만 듣던 것을 내 사건에서 직접 경험했다. 그래서 ‘규정’을 만들어달라고 또 다른 절차를 밟았다. ‘체불 퇴직금’을 받아내기 위해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 그 시스템의 관행을 ‘불평’하기보다 (내 수준의 다른) ‘해결’ 방법을 찾아 나선 이유다. 이 싸움을 위해 자발적 백수를 선택한 이상, 부족한 것이 있다면 메워야 하고 필요한 것은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3차 국민신문고 민원의 처리는 더뎠다. 근 한 달을 기다리다 신문고 사이트를 접속했다. 그런데 답변기한으로 된 날짜는 11월 26일 자정까지였다. 그런데 왜, 답이 없는 거지? 숨을 고르고 12월 6일 오후, 배정된 노동부 담당자에 전화를 걸었고, 그에게 들은 대답은, “(내 민원에) 답변을 내기 위해 궁금한 건 (내게 연락해) 문의”하겠다는 것이었다. 내가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미뤄졌을까, 속이 쓰렸다. 그럼에도 고소장 제출 시, 상대방 출석 조사가 이뤄지도록 방법을 강구하고 제도 보완을 해야 하는 것은 정부이니 일단은 기다리자, 그러다 ‘또’ 늦어지면 독촉하자고 나를 다잡았다.

    담당자와의 두 번째 통화는 12월 26일이다. (뭔가 바쁜 일에서 한숨 돌린 듯) 진지한 그의 물음에 (어쩌면 상관없어 보이는) 체불퇴직금 사건의 발생 배경을 추가로 설명하게 됐다. 처한 위치에 따라 내 태도가 ‘지시불이행과 명령불복종’으로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12년 넘게 조직이 추구한 가치를 믿고 헌신했던 그 조직의 다른 민낯을 드러내는 내 자의식에는 또 부끄러움이 있었지만. 내 얘기를 듣고 난 담당자는 중심을 잃지 않았다. 그는 ‘민원 사항’ 중 가능한 것과 한계지점 등을 이야기하며 답변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함을 알렸다. 그렇게 해를 넘겼다. 한 달여 시간이 지난 (2020년) 1월 21일, 유선으로 진행 경과를 문의했다. ‘선례가 없어 고민 중’이라고 대답하는 그에게서 (노동부 진정 때처럼 순진한 착각일 수도 있지만, 고뇌하는)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그런 상대의 태도가 주는 울림이, 답변의 내용보다 더 위로가 됐던 것이 사실이고.

    그 직후 의외의 곳에서 실마리가 잡혔다. 2월 4일, 내 뒤통수를 쳤(다고 생각하고 있)던 근로감독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소장 작성 관련 유의사항’을 문의하고, 그에게 ‘내 사건과 같은 경우, 처리를 위해 (4회 때 연재 예정인) 형사 문제 관련 국가 간 조약 활용 메커니즘이 있다면 도움이 되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그렇다’였다. 그의 답변을 인용해 2월 13일 5차 국민신문고 민원을 냈다. 내용은 1) 국제식품노동조합(IUF)의 퇴직금체불 사건 해결을 위한 관련 국가 간 조약 활용 방법 안내와 2) 동 사건 답변 준비 중인 고용노동부와의 공조 요청이었다. 조약을 다루는 것이 외교부라 처리기관을 그곳으로 해 제출했는데, 이 건은 법무부로 이관됐다. (자세한 관련 내용은 이후 연재에서 다룰 예정이다.)

    2월 21일 노동부 담당자에 전화를 걸어, 5차 신문고 민원을 통해 ‘조약 활용 방안 안내 및 공조 요청’을 했는데 연락 받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어디선가 ‘또’ 지체된 모양인지) 그는 알지 못했고, 되려 내게 법무부 담당자 정보를 알려줄 것을 요청했다. (마치 브로커가 된 나는) 법무부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고, 허락을 얻어 그의 이름과 연락처 등을 노동부 담당자에 이메일 송부하면서 5차 민원 내용을 첨부했다. 그 일로 2월 25일, 3차와 5차 신문고 민원이 병합되어 다부처 민원으로 지정됐다. (병합되었지만 답변은 이후 각각 등록됐고, 흐름과 맥락상 4회 때 연재할 글에서 같이 다루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병합 전) 3차 신문고 민원에 대한 답변을 내기 직전인 4월 초, 노동부 담당자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형사공조 관련 법’이 있어 ‘국내로 출석하지 않아도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가능한 방법이 열려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나를 어느 정도는 진정시키기 위함이었는지,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다독였다. 그 행간에는 큰 기대로 실망이 크게 되면 어떤 극단적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깔려 있었다. 그의 진정어린 배려에 울컥하고 말았다. 그렇게 사람 냄새를 맡았다.

    “국제노조에 떼인 퇴직금 받아내기 분투 2년차 기록을 시작하며”

    필자소개
    전 IUF 아태지역 한국사무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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