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정책위 자료 컨닝 좀 했습니다”
    2006년 10월 16일 01: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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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의 철이 돌아왔다. 평소 기사거리를 쫓아 정치인들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던 날들과는 비교가 안 된다. 기자실 주변으로는 늦게 온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자료 놓을 자리를 비집어야 할 만큼 국정감사 자료들이 산적해 있다.

‘국감 스타’를 꿈꾸며 국회의원들이 경쟁하듯 쏟아내는 자료들은 최대 현안인 북핵 관련 문제는 물론 평소 국회에서는 듣기 힘든 지자체의 문제 등 그 내용이 방대하다. 분량도 1~2장짜리 보도자료에서부터 100여쪽이 넘는 정책자료집까지 다양하다.

국감자료 열심히 챙기던 기자 "이면지로 쓰려고"

   
▲ 방대한 양의 국정감사 자료 중 대다수는 제목만 훑어보고 쓰레기통으로 직통한다.
 

이러다보니 일일이 내용을 훑어 볼 시간도 모자라 제목만 대충 보고 쓰레기통으로 직통하는 자료들이 태반이다. 상임위나 정당 관계 없이 국감 자료를 수집해가는 한 국회 기자 왈. “이면지로 쓰려고”.

방대한 국감 자료 중에는 <레디앙>의 ‘시각’에서 과감히 버려지는 자료들도 적지 않다. 특히 한나라당 자료들이 그러한데 거의 모든 부처, 기관에서 정권 공격용 ‘코드인사’ 주장이 나온다. 그리고 ‘기업 투자 확대를 위한 규제완화가 일자리대책’인 당의 정신 탓이지만 규제에 따른 기업 손실액 등 환경이나 노동을 도외시한 기업 이해 대변 자료들이 적지 않다.

그런 한나라당이 북핵에 대한 응징으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중단 등 우리 기업에도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요구를 하는 걸 보면, 경제보다는 안보가 우선 순위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북핵에 따른 위기감 조성 국감 자료들도 상당하다.

핵 투하 시나 방사능 노출 상황을 가정하고 군의 무기체계나 일반의 대피시설 및 대응 능력 부족에 대한 질타의 내용도 있다. 나아가 그 여파로 “내부 대피시설을 갖춘 강남 고급 아파트가 상종가”라는 대목에서는 어이가 없다.

어이없다 "내부 대피시설 갖춘 강남 고급아파트 상종가"

통계 수치들이 얼마나 주관적일 수 있는가를 새삼 확인하며 자료들을 훑다보면 ‘야당답게’ 쓸만한 자료들이 나오기도 한다. 국정감사 첫날 수십 개의 자료를 넘긴 끝에 제목부터 ‘괜찮은 놈’ 하나를 골랐다. 한나라당에서 보기 드문 ‘양극화’를 주제로 그것도 문화 양극화 현상을 지적한 문화관광부 국감 자료였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이를 부각하는 것을 열린우리당의 대선 전략이라고 단언하는 한나라당에서 ‘양극화’를 지적하다니. 누구 작품인지 자연 고개가 돌아간다. 역시. 소장파로 합리적 보수라 평가받는 박형준 의원실에서 내놓은 것이었다.

솔직히 ‘이름’에 비해 박형준 의원이 최근 내놓은 국감자료에 적잖이 실망했던 기자였다. 정부의 정책 광고 사전협의제로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의 광고가 줄었다는 -그렇다고 한겨레나 경향, 인터넷 진보언론 등의 광고 비율은 나와 있지도 않은- 자료나 인터넷 사이트들이 언론 기사를 도용해 저작권을 침해하는데 주로 조중동 기사라는 자료들이 그러했다.

비록 조중동 기사의 저작권 침해 관련 자료와 ‘문화 양극화’ 자료는 분량에서부터 현격한 차이가 있었지만 ‘기쁜 마음’으로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소득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의 월별 교양, 오락비 지출 격차가 8.6배에 달하고 영화, 출판, 문화시설 등에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지적이었다. 이와 함께 문화관광부 예산의 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그런데 새로운 내용이 없다. 소득별 교양·오락비 지출 비교는 통계청이 이미 올해 2/4분기 가계수지까지 발표한 마당에 지난해 4/4분기 내용을 기준으로 했고 영화, 출판 내용은 이미 몇 달 전 관련 기관과 협회의 조사결과를 토대로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내용이다. 인터넷 사이트들의 보수언론 기사 무단 도용을 비판하던 박 의원은 정작 자신의 국감 자료에서는 관련 자료들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었다.

민주노동당 자료보고 썼는데 자세히 못봐서 잘 몰라

   
▲ 국회 기자실 복도에 국정감사 자료가 길게 늘어서 있다.

그래도 예산에 대한 지적이 있지 않나, 다시 눈빛을 반짝여본다. 문화관광부 2007년도 예산안은 지난달 9월 29일 발표된 이후 아직 깊이 있는 비판이나 분석이 나오지 않은 ‘따끈따끈한’ 상태다. 조선일보에서 문화 예산이 전체 국가 예산에서 1% 이하로 줄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 정도였다. 비록 한 문단 정도의 짧은 내용이었지만 문화양극화 예산이 문화부 예산의 0.6%에 불과하고 문화복지비 예산도 12.4%나 감소했다는 지적이었다.

구체적인 데이터-전년도 예산안과 올해 예산안 같은-를 추가로 얻기 위해 의원실로 연락을 취했다. 의원실에서 해당 자료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정부 예산이 조금 늘었지만 대규모 문화 사업에만 치중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문화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예산은 상대적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문화양극화 예산’, ‘문화복지비’ 등의 내용을 묻는 기자에게 이 관계자는 “해당 자료를 찾아보고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날 연락을 받지 못하고 다음날 다시 연락을 취한 기자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설명인 즉,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실에서 작성한 문화관광부 예산 분석 자료를 보고 했는데 자세히 보지 못해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양극화 이야기를 하려니까 민주노동당 자료를 볼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그것도 2006년 예산안 분석 자료

하지만 민주노동당 정책위에 확인 결과 2007년 예산안에 대한 분석 자료는 발표된 바 없다. 결국 박 의원실에서 참고했다는 자료는 1년 전인 지난해 10월 민주노동당이 문화복지비 감소 등을 지적한 2006년 문광부 예산안을 분석한 자료인 셈이다.

박 의원실 국감자료마저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 넣으며 얼마 전 민주노동당의 한 의원실 보좌관이 민주노동당의 대선 의제를 고민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보수정당들이 ‘겉으로는’ 이미 진보정당의 의제들을 상당부분 잠식해오고 있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은 둘째 치고 회의 때마다 ‘서민’을 이야기하는 한나라당, 남의 논리로 어설프게 양극화를 지적하는 박형준 의원이 그 대표적 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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