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사회 먹거리 수급체제' 소중한 대안이다
    By tathata
        2006년 10월 16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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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농산물 수출국들은 WTO 협상에서 자국 농업과 농민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농산물의 상품성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유럽이나 아시아의 농산물 수입 국가들이 주장하는 ‘농업과 먹거리가 갖는 다원적 기능’을 부정해 왔고, 우리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국가들이 자국 내에서는 이중적인 기준을 갖고서 어떻게 자국의 소농과 환경, 소비자의 건강과 지역사회를 지켜나가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실제로 이들 국가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이중적인 정책 – 수출농업의 극대화 한편으로는 로컬푸드(지역산 먹거리)의 증진과 직거래 활성화를 통한 소농의 보호 – 을 펴나가면서 적극적으로 농업과 먹거리가 갖는 다원적 기능을 극대화해나가고 있다.

    지난 10월 8일부터 11일까지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미국과 캐나다의 ‘지역사회 먹거리 보장'(community food security)을 위한 연합단체가 공동으로 개최한 ‘경계를 가로지르며-먹거리 보장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연차회의가 개최되었다.

    미국에서는 ‘지역사회 먹거리보장 연합(CFSC)’이라는 연합단체가, 그리고 캐나다에서는 ‘캐나다 먹거리 보장 Food Secure Canada(FSC)’이라는 연합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하였는데, 이 두 단체는 각각 미국과 캐나다에서 지역수준과 전국수준에서 지역 먹거리 증진을 중심으로 지역사회 먹거리 보장을 증진하는 일을 하는 각 분야 시민단체들 – 농업을 비롯하여 보건의료, 지역사회, 환경, 소비자, 먹거리 안전 등 먹거리(food) 관련 – 의 연합회 성격을 띠고 있다.

    이번 행사에는 1천여명 남짓한 북미 전역의 활동가들과 정부 및 지자체 관련 담당자들, 그리고 그 밖의 국가들에서 온 전문가 일부 – 호주, 브라질, 멕시코, 네덜란드 및 한국(필자와 경남대 사회학과 김종덕 교수) – 가 참여하였다.

       
    ▲ 밴쿠버 회의 광경
     

    미국의 CFSC가 발전해온 배경은 세 가지 정도의 맥락을 따져보아야 한다. 즉 1980년대부터 시작된 환경 정의 운동(environmental justice movement)을 시작으로 촉발된 먹거리 정의(food justice)와 지역사회 먹거리 보장이 하나이고, 1996년 미국의 농업법(Farm Bill)에서 규정하기 시작한 ‘지역사회 먹거리 보장’과 이를 지원하는 미 농무부의 각종 로컬푸드 증진정책이 두 번째이다. 그리고 최근 미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비만,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의 비만과 건강문제가 세 번째 맥락이다.

    환경 정의 운동은 미국 사회에서 환경문제와 관련된 정책시행이나 오염의 피해가 저소득층이나 흑인들에게 집중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깨끗한 자연환경의 수혜나 오염으로 인한 피해가 사회적으로 부당하게 특정 지역이나 계층, 인종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각종 사회운동을 뜻한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먹거리 정의로 관심이 옮겨지게 된다. 즉 지역사회 속에서 그 누구도 먹는 것이 부족해서 굶는 사람이 없도록, 그리고 질적으로 적당한 먹거리를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특히 저소득층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도심에서 이들이 직접 농산물을 길러 먹을수 있도록 지역사회 공동 텃밭을 만들거나 공동으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지역사회 공동 주방을 만드는데 집중하였다.

    이러한 활동들은 더욱 발전하여, 글로벌 먹거리 체제 속에서 다국적 농업자본이 이윤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 대해 지역사회 내의 농민과 소비자가 합심하여 양자 모두가 가격 면이나 질의 면에서 이득을 볼 수 있도록 관계를 맺어주는 일에 집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로컬푸드의 증진’을 통한 ‘지역사회 먹거리 보장’의 핵심이다.

    이같은 민간부문에서의 노력과 압력을 결국 미국 연방정부에서도 수용하게 된다. 1996년 농업법에 가족 소농이 갖는 지역사회, 환경, 건강 측면의 장점들을 인정하면서 이를 증진하기 위하여 지역사회 먹거리 보장을 법제화하고 이를 위한 각종 정책적 수단들 – 농민장터, 지역사회지원형농업(CSA: 일종의 소비자-농민간 계약농업), 지역식량정책협의회 결성 등 특히 소비자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 에 예산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에서도 수출지향 기업농 육성에 치중한 나머지 그 속에서 고사해가는 지역 소농의 문제를 더 이상 손놓고 바라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CFSC라는 연합회도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하였고, 정부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전국적으로 각 지역 수준의 단체들과 협력,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미국 미네소타주 남부지역 농민들의 상황(1969~2003): 농가수지 상황이 계속 나빠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연 그 돈들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마지막 맥락은 미국 사회에서 패스트푸드나 식생활 문제로 인한 심각한 비만 문제에 대해, 정부나 지자체, 그리고 민간부문에서 가능하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신선한 먹거리 소비(특히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증진하여 소비자들의 건강문제를 개선하는 동시에 지역 소농들의 생계도 보장하고자 하는 최근의 경향이다. 즉 먹거리 정책과 보건의료 정책을 연계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특히 학교급식에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의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지역산 신선 농산물의 사용을 늘리고자 하는 노력과, 학교에서의 농사체험과 먹거리 교육을 건강 및 보건교육과 연계하여 진행하고자 하는 노력은 CFSC의 핵심적인 과제로 설정되어 있는 동시에, 미 농무부가 지원하는 ‘농장에서 학교로'(Farm to School), 그리고 ‘농장에서 대학으로'(Farm to College) 프로그램으로 나타나고 있다.

    인상적인 것은 CFSC가 국내 먹거리 문제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연대 노력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제스처일 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둘째 날 기조연설자로 멕시코의 농민단체 대표가 나와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멕시코 농업과 먹거리를 어떻게 파괴했는가를 생생하게 증언하여 참가자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또한 주제별 세션에서도 김종덕 교수가 제기한 한미 FTA 진행상황과 농업문제, 그리고 향후 한국 지자체가 펼 수 있는 로컬푸드 정책에 대한 FTA라는 장애물 – 자국의 지역사회 먹거리 보장은 지원하면서 타국의 지역사회 먹거리는 불안하게 만드는 미 농무부의 이중성 – 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지속적인 연대의 뜻을 보여왔다.

    무엇보다도 2007년 개정 예정인 미국 농업법이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농업과 먹거리 문제, 그 중에서도 특히 개도국들의 식량주권에 미치게 될 영향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실천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에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동의하는 것으로 보였다(특히 미국과 다른 나라들이 맺게 될 FTA로 인한 농업과 먹거리 문제에 대해 농업법 개정을 통해 이를 저지 또는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

    이러한 분위기는 CFSC라는 단체가 갖고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관계가 있다. 이번 회의에는 미 농무부(USDA) 관료에서부터 주정부나 지자체의 먹거리 관련 담당자들(특히 보건 담당자) 같은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먹거리와 농업, 식량문제에 있어서 익히 알려진 진보적인 인사들(<희망의 경계>의 공동저자인 안나 라페, 미국의 진보적인 농업연구소인 <푸드퍼스트>와 IATP 관계자)과 소농을 대표하는 전미농민연합(NFU)과 가톨릭농촌회의 등이 모두 참석하였는데, 주 회원단체들은 후자이고 이들은 유전자 조작과 다국적기업의 먹거리 지배, WTO와 FTA에 대해 단호한 반대입장을 갖고 있다.

       
    ▲ 멕시코에서 초청된 농민단체 대표의 연설
     

    글로벌 먹거리 체제에 대항하여 지역 먹거리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소농과 환경, 건강, 지역사회를 살리는 지속가능하고 정의로운 길이라는 입장은 너무도 확고해 보였다.

    특히 미국과 캐나다의 각 지역과 전국 수준에서 먹거리 문제를 테마로 갖고 있는 제각기 성격과 업무가 조금씩 다른 수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농산물 수출국들도 자국 소농들은 농사의 규모화와 경쟁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무한경쟁시장 속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같은 정책을 펴고 있는데, 과연 우리나라의 농림부는 언제까지나 그러한 정책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인지 정말로 궁금하다.

    또한 국가 수준에서의 식량보장(food security)도 결국에는 각 지역사회 수준에서의 먹거리 보장(food security-같은 단어이지만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점 또한 미국 농무부는 잘 아는데 우리나라 농림부는 왜 모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긴 ‘국익’을 위한 식량보장도 포기하려 하는 정부가 그런 ‘쪼잔한’ 문제에 관심이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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