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겁게 하는 게 제일 세다
    [낚시는 미친 짓이다 ⑨] <재미>
        2020년 09월 21일 02: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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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낚시는 과학이다. 이렇게 말하면 웃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이다. 찌, 낚싯줄, 바늘 등 다양한 요소가 정확하게 결합되어야만 물고기를 만날 수 있다. 수 천 년을 내려온 인간의 지혜가 집대성된 것이 낚시다. 인간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물고기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연구가 있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양경규 위원장의 집이 있는 산청에 놀러 간 일이 있었다. 거기 경호강가에서 은어낚시를 하는 노인들을 보았다. 은어(sweet fish, 銀魚)는 어릴 때 바다로 나갔다가 다시 하천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살에서 수박향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여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은어는 잘 발달된 돌이끼의 주변 일정한 반경을 확보하여 자신의 영역으로 삼는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은어는 자신의 영역 안에서 규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자기 영역을 지키려는 텃세 행동을 한다고 한다. 이런 은어 생태에 대한 관찰을 통해 은어를 ‘미끼’로 하여 은어를 잡는다. 즉 은어를 공격하게 하여 잡는 방식이다. 물론 요즘은 가짜 미끼인 루어를 이용하거나 지렁이 생미끼를 이용하기도 한다.

    아무튼 긴 장대에 미끼 은어를 달아 그 은어를 살리면서 다른 은어를 환상적으로 잡아 올리던 동네 노인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배워보려 했으나 쉬운 게 아니었다. 오래된 경험을 바탕으로 은어의 습성을 정확히 알고 있는 그 분들이 연신 잡아 올리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돌아왔다. 그러다 얼마 전 [도시어부]라는 프로그램에서 바로 그 은어낚시를 했다고 해서 보았다. 그들은 나와 달리 엄청 잘 잡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 은어 성격에 대한 연구(?) 없이는 세계에서 별로 유래가 없는 그런 방식의 낚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덧붙이자면 [도시어부] 출연자 중 이태곤이라는 사람이 “낚시는 내 인생을 바꾼 은인이죠. 조급한 성격도 바뀌었습니다.”라고 말했으니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참고하길!

    다른 낚시도 마찬가지다. 아주 오래 전에 지금은 청주 공예비엔날레 사무총장으로 있는 박상언이라는 대학 동기랑 견지낚시를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열 마리를 잡을 때 나는 겨우 한 마리 잡는 수준이었다. 이상했다. 똑 같은 미끼에 똑 같은 장소인데도 그랬다. 바다낚시를 즐기는 바두기라는 친구의 경우를 보니 갈치, 쭈꾸미, 우럭 등 대상 어종에 따라 낚싯대가 모두 달랐다.

    대상 어종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연구가 조과(釣果)의 차이를 낳는다.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민물낚시도 자신이 즐겨하는 방식에 따라 낚싯대가 다르다. 내림낚시, 중층낚시 등 방법도 다양하다. 그만큼 과학적(?)으로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게 낚시다. 적어도 낚시인들이 그저 낚싯대를 던져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한심한 사람들은 아니란 말이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 하이텔과 데이콤 등이 제공하던 CUG라는 게 있었다. 폐쇄이용자그룹(Closed User Group)이라는 것으로 가입된 사람들끼리 특정 정보를 나누곤 했다. 낚시 동호회를 통해 정말 많은 정보를 얻었다. 한번은 거기서 논쟁이 붙었다. ‘찌와 봉돌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가 수면 위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찌는 봉돌의 무게에 영향을 받는다. 그 무게중심을 잡아 무중력상태로 만드는 것을 ‘찌맞춤’이라고 한다.

    나처럼 봉돌만 달아서 맞추는 사람도 있고, 더 민감하게 보려고 바늘까지 달아서 바늘과 봉돌이 모두 바닥에 닿은 상태로 맞추든지, 아니면 봉돌을 분할해서 맨 밑의 봉돌만 닿도록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것을 두고 CUG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각종 물리학에 표면장력에 대한 이론까지 동원되면서 아주 심각해졌었다. 그 때 한사람이 “그럴 거면 나는 낚시 안 할란다”라는 명언을 남겨 논쟁은 중단되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그에게 한없는 박수를 보낸 기억이 있다.

    “그래서 재미있냐?” 일본 낚시 애니메이션 [낚시광 강바다]에 나오는 대화다. 과학이든 말든 재미있는 게 우선이다. 물론 최대한 연구를 하면 그만큼 물고기를 만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학도 재미에는 양보를 하는 게 맞다. 수 만평의 저수지에 꼴랑 낚싯바늘 서너개를 던져 놓고, “물어라, 물어라”하는 이 미친 짓을 즐기지 못하고 거꾸로 스트레스를 받을 거면 낚시를 그만 두는 게 맞다. 밤새 찌올림 한번 못보고도 재미를 느낀다면 이상한가?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긴 투쟁은 천하의 투사도 지치게 만든다. 이상한 얘기지만 “재미”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덜 지친다. 뭐든지 즐겁게 하는 사람을 이길 장사는 없다. 그래서 투쟁도 재미있게 하자고 말들을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수년 전에 정관장을 만드는 인삼공사에 복수노조를 만들고 그걸 인정받느라고 오랜 시간 투쟁을 했다. 공장은 충남 부여군 규암면에 있다. 노조법에 따른 최소한의 노조활동 보장 등을 받으려고 3명이 해고당하고, 조합원들이 이런저런 수모를 겪었다. 난 주거침입으로 조사를 받기도 했다. 회사 앞에 친 천막 안에서 190일 동안을 살았다. 농성을 하면서 물론 호시탐탐 낚시할 기회를 엿보기도 했다. 시골이어서 도처에 낚시할 곳이 널려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못했다. 믿지 않겠지만 정말이다. 차에 실어 둔 낚싯대만 만지작거렸을 뿐이다. 돌아보면 바보였다.

    천막농성을 하던 곳에서 아주 가까이에 반산저수지가 있다. 투쟁이 끝나던 전날에야 간부들과 그곳을 찾아서 밤낚시를 했다. 붕어 대신 빠가사리만 잔뜩 잡았다. 거짓말 안 보태고 거기 빠가사리는 메기만한 크기였다. 시골이라 각종 매운탕 재료는 넘쳤다.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매운탕을 먹으며 투쟁을 끝냈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자신의 내부에 숨 쉴 수 있는 여유 공간을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가끔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다. 운동은 사람을 힘이 나게 하지만, 절망에 가까운 좌절을 주기도 한다. 사람들과의 만남이란 게 원래 그런 측면이 있기도 하다. 재미있게 활동을 하고 싶지만 억지로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정말 재미없을 때도 많다. 재미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낚시가 그런 재미를 충분히 준다고 장담한다. 물론 믿고 말고는 내 몫이 아니다.

    <침묵연습> 8

    아는 사람만 아는 단어
    돌아와
    너는 모르지
    그 바람 그 물결
    돌아와 돌아와
    잘못했다 말 할 기회를
    한번은 줘야지
    돌아와 돌아와 맘이 곤한 이여
    새벽 교회 찬송가 종소리는
    더 애절하고나
    내게 하는 말 같구나
    저 멀리 수탉은 괜시레 목청을 높이고
    나는 그저 기다릴 뿐
    돌아와 돌아와

    ▲ 반산지

    충남 부여 규암면에 있다. 38만평에 이르는 꽤 큰 저수지다. 다만 관리를 안해서 먹을 것 등은 모두 준비해서 가야 했었다. 2년전인가 다시 찾았을 때는 관리인도 없어서 결국 낚시를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최근 기사를 검색해 보니 부여군 관계자가 “천혜의 자원인 반산저수지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계획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래도 모르니 혹시 찾을 분은 반산낚시터(041-835-1997)로 연락부터 해 보시길 권한다.

    필자소개
    이근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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