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실가스 배출, 누가 책임져야 하나?
    [에정칼럼] 농촌·지방·약자에 책임 전가해서는 안돼
        2020년 09월 21일 01: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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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져 가는 빙하, 녹아내리는 영구동토, 연이은 태풍과 50여일간의 장마, 역대급 폭염, 끝을 알 수 없는 산불. 기후 재난이 이미 시작되었고, 우리는 그 출발점을 한참 지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앞으로 일어날 재난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최대한의 행동이 필요한 때이다. 그 핵심에는 재생에너지 보급과 확대가 필수 과제로 자리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까?

    사실, 찬찬히 살펴보면 재생에너지 확대가 곧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2008년에서 2017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은 연평균 2%씩 상승했다. 온실가스 배출량 중 35%(2017년 기준)를 차지하는 발전부문(공공전기 및 열생산)의 배출량은 연평균 2.96%씩 증가했다. 유사기간인 2007년에서 2018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생산(용량기준) 비중은 약 2.4%에서 약 5.8%로 높아졌고, 발전량을 기준으로 하면 약 1%에서 약 8.9%로 그 비중이 증가했다.

    사실상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재생에너지 증가가 곧 온실가스 배출 감소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생에너지가 증가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아졌을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분이 재생에너지로 다소 완화되었다고는 할 수 있다. 따라서 재생에너지 확대가 온실가스 배출 저감으로 이어지려면 화석연료 소비가 재생에너지 소비로 대체되어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화석연료 소비는 당장 억제되어야 한다.)

    에너지 소비는 인간 삶의 필요를 채우는 필수적 수단이다. 현재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삶을 꾸려가는 상황에서 화석연료 소비 억제는 그 규모와 속도에 따라 버거운 삶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 점에서 재생에너지는 급격한 화석연료 소비 억제가 인간의 삶의 필수인 에너지 소비 급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변화의 완충 역할을 한다. 현재 화석연료에 기반한 에너지 소비 규모가 고스란히 재생에너지로 대체될 수 있을지는 별도로 따져볼 문제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필요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선 화석연료 소비를 줄이는 규모와 속도에 넉넉히 대응할 수 있을 정도로 재생에너지가 증가해야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부담, 어디서 지고 있나?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 누가 어디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한 부담을 지고 있을까? 2018년 기준 전체 신재생에너지 생산량 중 폐가스가 31.6%를 차지하고 있고, 뒤이어 태양광 11.1%, 목재펠릿 8.3% 순이다. 그렇지만 최근의 재생에너지 확대를 주도하는 것은 태양광이라 할 수 있다. 태양광의 경우 2016년 신규 발전용량이 900MW로 잠시 주춤했지만 2017년 1.4GW, 2018년 2.3GW로 급증했다. 2019년의 경우 약 3GW(2020년 초 잠정치 기준)로, 태양광 확대 규모와 속도 변화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태양광은 특성상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대체로 땅값이 싸다는 이유, 유휴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도시가 아닌 농촌, 중앙이 아닌 지방에서 태양광으로 인한 갈등의 부담을 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 기준 태양광 누적 보급 용량의 경우 전남이 1.6GW, 전북이 1.3GW로 전체 8GW의 37%를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태양광이 입지하는 농촌지역 주민들은 발전사업이 외지사업자 중심의 이익추출 수단이며, 의사결정과정에서 지역주민이 배제되고, 관련 정보는 비대칭적이며, 경관/환경이 훼손된다는 등을 이유로 태양광을 반대하기도 한다. 이에 대응해 재생에너지 수용성이란 관점에서 주민참여, 이익공유가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농촌과 지방이 유휴공간과 저렴한 입지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역으로 도시와 중앙의 높은 밀도와 부동산 지대는 막대한 사회적 자원이 투입돼 형성됐다는 점에서 농촌과 지방의 재생에너지 갈등은 공간적 불평등의 단면을 보여준다. 여전히 농촌과 지방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도시를 위해 여러 변화를 감당하도록 요구받고 있는 셈이다. 기후위기라는 사태의 시급성 때문에 더 빠른 속도로, 더 큰 규모로 재생에너지 확대가 요구될 것이다. 도시와 농촌, 중앙과 지방의 불평등 구조 속에서 더 적은 에너지를 사용하는 농촌과 지방의 재생에너지 입지가 기후부정의로 치닫을 위험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어디에서 온실가스가 배출되고 있는가?

    다시 2017년 온실가스 총배출 현황으로 돌아가 보자. 온실가스 총배출량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문은 에너지-연료연소 부문으로 총 86%를 차지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 부문의 에너지산업 항목의 공공 전기 및 열 생산이 전체 배출량의 35%를 차지한다(이는 발전부문이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되면 전체 배출량의 35%를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 다음으로 제조업 및 건설업의 연료연소가 총배출량의 26%를 차지하고, 수송부문의 연료연소가 총배출량의 13%를 차지하고 있다.(두 항목이 전체 배출량의 40%를 차지한다.) 결국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제조업 및 건설업 등 산업부문과 수송 부문의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따라서 제조업 및 건설업과 수송 부문 연료연소 에너지 소비의 전기화, 전력의 재생에너지화가 요구된다. 하지만 30년 전이라면 그 변화를 느긋이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기후위기가 재난으로 돌출되는 상황에는 지금 당장의 화석연료 소비 감소가 절실하다. 산업부문은 에너지 소비 감축 조치를 취해야 하고, 수송부문에선 내연기관차의 사용 감소와 함께 물류와 인간의 이동량 감소가 요구된다. 이는 산업부문에서는 총생산량 감소와 총이윤감소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수송부문에서는 먹거리, 소비재 등 물류이동체계의 재편과 생활권 재편, 즉 우리 사회의 공간 체계 재편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자발적이며 민주적인 총생산량과 총소비의 감소를 시작해야하고, 한국 사회의 막대한 자원을 흡수하면서 전환의 책임은 덜 지고 있는 서울-수도권 중심 질서는 해체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문제는 재생에너지 확대의 부담을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구조에 놓인 농촌, 지방에서 짊어지는 것처럼 온실가스 저감으로 인한 변화의 부담을 사회적으로 불평등한 구조에 놓인 이들이 짊어질 확률이 높다는 점이다. 기업/자본의 이윤감소는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전가되기 쉽다. 대기업의 이윤감소는 하청업체들의 단가인하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대기업 자본의 부담은 늘 그렇듯 노동에 전가되기 쉽고(쉬운 해고), 노동 측에서도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에 전가되기 쉽다. 노동 부문의 고용 안정성(그것이 개별 작업장 고용 안정성이든, 사회 전체 고용안정성이든)은 정규직 중심으로 논의가 될 것이다. 그만큼 비정규직의 불안정성은 높아질 것이고, 연이어 산업 작업장내 재생산 서비스를 담당하는 청소노동, 식당노동 등의 비정규직 종사자는 쉽게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동시에 비정규직 종사자 중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노동자에게 변화의 충격이 먼저 가해질 가능성이 매우 짙다.

    차별화된 책임이라는 원칙 기억해야

    따라서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변화의 충격에 대응할 더 많은 자원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더 많은 책임을 져야한다. 자본 측은 사회적 안전망 확보나 사회적 고용유지,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책임을 분담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노동 측은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얼마간의 임금 인하를 수용해야할지도 모른다. 산업 부문의 총이윤 감소에 대한 자본과 노동의 아슬한 연대는 해체되어야 할 것이며. 동시에 정규직 중심의 노조활동의 체제는 재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이 변화의 바탕에는 사회구성원들의 기본적 생계와 삶의 필요를 뒷받침할 수 있는 보편증세와 사회안전망 확충이 동반되어야 한다.

    결국 기후위기 대응은 재생에너지의 양적 확대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 탄소배출 저감이라는 변화의 충격에 누가 얼마큼의 차별화된 책임을 질 것인지에 따라 기후위기 대응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각 사회부문 혹은 진영은 더 약한 이들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 저감의 차별화된 책임을 자발적으로 짊어지면서 각자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동시에 더 많은 권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기에 변화의 충격에 대비할 여력이 있는 집단과 부문이 마땅히 그 역할을 다하도록 압박할 수 있는 사회 세력간 연대 및 동맹구축이 절실하다.

    나아가 차별화된 책임을 중심으로 세부 논쟁이 필요하다. 그 길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겠지만, 이런 혼란과 논쟁이 없다면, 결국 고통은 약자에게 전가된다. 책임을 약자에게 전가하는 사회만큼 절망적인 미래는 없다. 연대의 원칙은 책임의 자발적 최대화이면서, 행동의 방향은 더 많은 권력과 자원을 가진 이들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압박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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