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만만치 않은 대통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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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16일 12:3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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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어린 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고 물으면 다수가 “부자가 되고 싶다”라는 답을 한단다. 하지만 내가 어린 아이였던 시절, 그러니까 30여 년 전쯤인 1970년대에는 꽤 많은 아이들이 “대통령이요”라고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통령이 꿈이었던 그때 그 시절

    당시 한국 최고의 부자로 알려져 있던 이는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었는데, “이병철 같은 부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답했던 어린 아이들은 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적어도 내 주위에는 말이다. 그때는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 독재체제를 통해 온 국민 위에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많은 어린 아이들이 부자가 아닌 대통령을 꿈꾸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혹시 그 모든 이의 위에 설 수 있는 권력에의 욕망 때문이었을까?

    1979년 10월 26일이 하루인지 이틀인지 지난 어느 날 새벽, 며칠짼가 집에 못 들어오신 아버지께 전화가 걸려왔다.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를 마친 어머니께서 “큰 일이 일어난 것 같으니 길 조심해 다니고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오거라”하고 당부하셨다.

    당시 내 아버지는 육군본부에 근무하고 계셨다. 아침이 되어 학교에 가니 선생님들이 비상 회의를 하시느라 수업을 늦게 시작할 것 같으니 자습을 하고 있으라고 하셨다. 얼마 후 학급장이 자습은 하지 않고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대통령 ‘각하’께서 ‘서거’하셨는데 떠들어서 되겠어”라고.

    그랬다. 그 당시 대통령은 어린 아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동시에 존칭의 대상이었다. 그것이 박정희 독재정권의 우상화 정책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대통령은 ‘최고’를 의미했다.

    대통령 씹기가 국민스포츠가 된 오늘 날

       
      ▲ 왼쪽부터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10여 년 전쯤인가, 한국을 방문한 해외 유명 학자 한 사람이 한국을 ‘정치가 일상화된 나라’라고 규정했다. 다방이라는 곳을 가보면 삼삼오오 모여 앉은 성인 남자들이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쉽사리 볼 수 있다는 게 그 구체적인 현상 중 하나였다.

    그는 이에 덧붙여 그들 모두가 대통령을 개인적으로 매우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며, 자신 보다 어리석은 바보로 여기는 것 같다고 했다. 1~2년쯤인가 지금은 장관직을 맡고 있는 모정치인이 “대통령 씹기가 국민스포츠냐”며 볼멘소리를 낸 적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전 사회적 비난’이 그침이 없었던데다, 여당마저 합세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쯤부터인가 내 친지 한 분은 길에서 주운 개를 ‘무현’이라고 이름을 졌고, 지금도 그 이름으로 기르고 계신다.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거론되기도 하는 한국의 ‘문호’ 황석영씨는 최근 어느 유력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과거의 대통령에 비해 그렇게 욕을 먹을 정도로 큰 잘못도 없었다.” “노무현씨는 그야말로 평지돌출한 평범한 변호사였다. 서구식으로 주말 여행에 동행할 수 있는 평범한 시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다.” 우리들은 ‘보통사람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보통사람인 대통령’, 그래서 대통령이 만만해진 나라에서 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누가 만만치 않을 대통령이 될까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더라”라며 대통령스럽지 못한 말을 아주 쉽사리 평범한 사람답게 뱉어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면서 형성된 정부를 좌지우지하는 ‘내장된 권력체계’로서의 관료집단의 영향력, 대통령이 여전히 전지전능해야 한다고 여기면서도 마구 헐뜯어댈 수 있는 자유로운 언론과 호사가들의 존재. 이 두 가지를 고려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말이 결코 무능한 대통령의 자조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대통령은 우상으로서 군림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코 만만한 자로 여겨져서도 안 되며, 결코 만만한 자가 대통령을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법-제도적으로도 대통령은 여전히 군통수권과 공무원 임면권, 재정 경제적 처분권, 계엄선포권, 법률의 효력을 지니는 명령발휘권 등 그 어떤 누구보다도 크고 강한 권한을 갖고 있으며, 그러한 권한이 대통령에 의해 어떻게 행사되느냐의 여부에 따라 나라의 명운이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만하든 그렇지 않든 대통령은 어쨌든 이 나라의 최고 지도자다.

    이명박, 박근혜, 손학규, 정동영, 김근태, 천정배, 권영길, 노회찬 등 주요 3당의 내노라 하는 정치인들 상당수가 2007년 대선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개 취급 당하는 욕을 먹지 않을 자신이, 그래서 그저 만만한 대통령이 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일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지도자론을 연구해온 모든 연구자들 거의 대부분이 동의하고 합의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유일한 지도자의 조건은 “지도자는 기본적으로 탁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윤리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이러한 지도자의 탁월성을 지적-도덕적 탁월성으로 정리한 바 있다.

    “나 똑똑해”라고 스스로 얼굴에다 써놓고 다녔던 죠스팽이나 고어가 시라크와 부시에게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 최고 지도자는 지적으로 탁월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지식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지혜를 갖고 있는 ‘철인’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도덕적 탁월성은 단지 청빈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희생 능력 또는 이타적 공동체 의식을 뜻한다. 이 때문에 최고 지도자는 공동체적 삶에 대해 섬세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지적 탁월성과 결합하여 공동체의 이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당연히 이상주의적인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여러 가지 현실적 제약을 고려함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 시대가 요구하는 지적-도덕적 자질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 그래서 결코 만만치 않은 대통령, 바로 내가 원하는 대통령이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자들 중 누가 이러한 탁월성을 근사하게나마 갖고 있는지 현재의 선호도 여부를 떠나 세심히 뜯어볼 일이다. 자, 여러분들은 누가 그렇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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