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나 정말 돌아버리겠어"
    “네가 미쳤으니 지금껏 버텼지”
        2006년 10월 12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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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닉스와 매그나칩의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든 지 만 2년, 그리고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길거리로 쫓겨난 지 660여일만인 11일 하이닉스 청주공장을 다시 찾았다.

    회사는 굳게 걸어잠근 정문을 바리케이트로 막고 그 위에는 날카로운 철조망을 씌우고, 다시 그 뒤를 콘터이너 박스로 막아 3중 방어막을 설치했다. 노동자들은 경비실을 거쳐 쪽문으로 출입해야 했고, 회사가 고용한 수백명의 사설경비원들과 감시카메라는 하청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공장은 노동자들이 걸어놓은 현수막과 조합원들의 소망이 담긴 가지각색의 헝겊천으로 뒤덮여 마치 무당집에 온 듯 했다. ‘질긴 놈이 승리한다 끝까지 싸우자’고 씌여진 현수막은 비바람과 눈보라를 맞으며 두 해를 보내 낡았고, ‘돈 몇 푼이 아니라 일터를 원한다’는 글귀가 조합원들의 마음을 쓸쓸이 전하고 있었다.

       
     
     

    “올 겨울은 넘기지 말아야죠”

    하이닉스 정문 앞에서 만난 경비는 “안에 있는 사람들도 지겹지만 밖에 계신 분들도 얼마나 지겹겠어요?”라며 “올 겨울은 넘기지 말아야죠”라고 말한다. 오늘도 70여명의 조합원들은 아침 9시 공장 정문에 모여 집회를 하고, 3개 문으로 흩어져 선전전을 했다.

    “엄마 나 돌아버릴 것 같아.” “그래 너 미쳤어. 미쳤으니까 지금까지 버티는 거지.” 박기범(29) 조합원이 며칠 전 엄마와 나눈 대화다. 공장에서 쫓겨난 지 1년 10개월, 제 정신이라면 정말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다.

    2004년 10월 22일 저녁 7시 청주시 복대동에 있는 민주노총 충북본부 회의실에서 금속노조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지회를 만들었다.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각종 수당을 없애고, 정규직의 50%도 안되는 저임금에 시달리던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향한 열망은 뜨거웠다. 순식간에 200명이 훨씬 넘는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했다.

    기쁨은 순간이었고 고통은 길었다. 회사의 집요한 회유에 채 한 달이 안 돼 로얄테크 소속 60여명의 조합원이 노조를 탈퇴했다.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한국노총으로 가면 노조 인정하고 임금협상하겠다”는 속임수에 간부와 조합원들이 넘어갔고, 파업의 효과가 큰 업체의 조합원들이 빠지면서 노조는 흔들렸다.

    2004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회사는 노조의 파업을 깨기 위해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용역경비 500여명을 투입했다. 이 날부터 2년 동안 조합원들은 공장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하이닉스 2년 전쟁

    ‘하이닉스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이닉스 공장 앞은 조합원들이 흘린 피로 얼룩졌다. 공장진입 투쟁, 고공 송전탑 점거농성, 다리 난간 농성, 충북도청 옥상 점거농성…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는 열 번도 넘는 지부 파업을 벌였고, 금속노조 2천여명의 간부들은 몇 번씩 청주로 모여 싸웠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댓가는 잔혹했다. 신재교 지회장이 벌써 1년 가까이 감옥에 갇혀있고, 민주노총 충북본부 김용직 조직국장을 포함해 7명이 옥살이를 하고 있다. 석방된 5명을 포함하면 지금까지 12명이 구속된 것이다. 경찰서에 잡혀가보지 않은 조합원은 한 명도 없어서 80여 조합원이 모두 재판을 받았다. 하이닉스 2년 전쟁이 순박한 노동자들을 전과자로 만들었다.

    하이닉스 회사는 5명에 대해 34억여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이들의 아파트 등에 대해 가압류까지 신청했다. 공장진입 투쟁과정에서 조합원들에게 벌어진 폭력도 상상을 초월했다. 경찰과 용역경비들에게 맞아 병원에 실려간 조합원들은 30명이 넘었다.

    감옥보다 두려운 건 경제적 고통이었다. 내 한 몸 못 먹는 건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족에게 닥친 고통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적금 해약하고, 전세방을 빼고, 아이들 학원도 끊었다. 아내가 날품팔이라도 나가 근근이 버텼다. 그러나 집안에 압류딱지가 붙기 일쑤였다. 견디지 못한 조합원들은 천막을 떠나갔다.

    같이 싸워온 ‘동지’의 결혼식에 못 간 이유

    공장 앞 선전전을 마친 조합원들이 오랜만에 외식을 한다. 평소에는 공장 앞에서 밥과 김칫국으로 점심을 때웠는데 이 날은 얼마 전 결혼을 한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조남덕 사무국장이 ‘결혼턱’을 낸다고 식당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식당으로 가는 조합원들의 발걸음은 가볍지 못했다. 오랫동안 같이 투쟁해왔던 ‘동지’의 결혼식이었는데 조합원들은 거의 참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말이면 노가다와 우유배달, 주유소와 전단지 아르바이트 등 ‘생계투쟁’을 하기 때문이었다. 축의금 낼 돈이 없어서 가지 못한 조합원도 많았다.

    모처럼의 외식이라고 자리마다 소주도 한 병씩 올라왔다. 조합원들은 소주잔을 건네며 그동안 서로에서 말하지 못했던 얘기들을 털어놓는다. 한동안 공장에 나오지 못했던 사연이며, 힘겨운 집안 얘기들을 꺼낸다. 이 싸움을 꼭 승리로 이끌자는 다짐도 함께 한다.

    밤에는 주유소 낮에는 투쟁

       
     
     

    ‘천막농성 632일’이라고 씌여진 천막 앞에서 만난 김충열(42.사진) 조합원의 눈은 붉게 충열되어 있었다. 지난 밤 7시부터 새벽 7시까지 12시간 동안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이날 집회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밤에 한 두시간 잠깐 눈을 붙이고 정 힘들면 낮에 천막에서 잠을 청한다. 2개월 전부터 시작한 아르바이트로 90만원 남짓 받아 조그만 공장에 나가는 아내의 월급을 합쳐 생활하고 있다. 그는 “굉장히 힘들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며 “이번 도청 점거 때 야간에는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해 미안했다”고 말했다.

    아내가 야간에 걸리면 꼼짝없이 아이들은 일주일 내내 부모 없이 자야 한다. 집에 가면 쓰러져 자기 일쑤고, 애들 돌보는 사람이 없다보니 아이들 성적이 떨어졌다. 그는 “밤에 전단지 돌리는 일을 하다 큰아들이 다니는 영어학원 원장을 만나 투쟁 끝날 때까지 학원비를 유예받았다”며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학원 좀 보내달라는 얘기를 할 때마다 그는 가슴이 무너진다.

    학원 보내달라는 말에 무너지는 가슴

    그는 허리와 목이 많이 아프지만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처음 용역경비한테 맞아서 허리를 다쳤는데, 주유소에서 계속 서서 일하니까 허리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목은 몇 달째 부워있고 몸살기가 계속되지만 병원비가 아깝기 때문이다. “제가 15년동안 맞교대를 했는데 요 2년간이 15년 한 것 보다 더 힘들어요.”

    그는 1991년 1월 18일 입사해서 2004년 12월 25일 직장폐쇄를 당할 때까지 만 14년을 이 공장에 다녔다. 그는 반장을 하고 있었는데 정규직과의 임극격차가 계속 늘어나고, 최저임금을 맞추기 위해 수당을 없애는 걸 보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청회사 사장한테 하소연했지만 “원청회사가 그것 밖에 안 줘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후배들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을 때 흔쾌히 동의했고, 같이 싸워서 우리의 권리를 찾자고 얘기했다. “솔직한 심정으로 왜 후회가 안 되겠어요. 하지만 아직까지 내 선택은 옳았다고 판단해요. 그 상태로 계속 갔다면 글쎄 인생이 얼마나 비참했겠어요?”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 하이닉스

    그의 통장과 사무용품이 회사 안에 있다. 2004년 12월 25일 기습적인 직장폐쇄로 공장에 못 들어갔다. 회사는 달라면 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원치 않았다. 무조건 공장으로 들어가 내 자리에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조합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그는 더 마음을 굳게 먹는다. “우리가 제대로 이길려면 공장생산 타격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지를 회사에 보내줘야 한다고 봐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투쟁 몇 가지가 있어요. 그런 투쟁을 어느 시기에 단행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하이닉스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 됐다. 이 싸움에서 패배하면 당분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일어서기 어려워질 것이고 이 싸움에서 승리하면 비정규직들이 자신감을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우리를 보고 배우지 않겠어요. 우리 투쟁을 꼭 승리로 이끌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쟁하면 된다는 동기를 부여하고 물꼬를 확 바꾸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는 민주노총과 금속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연대를 해 줄 것을 호소했다.

    오후 3시 2교대 근무를 하는 하이닉스 청주공장은 많은 노동자들의 출퇴근 발걸음으로 분주했다. 어김없이 방송차에선 투쟁가가 울려퍼지고, 조합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자며 이를 악문다. 추석 직전부터 회사와 대화의 물꼬가 트였지만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얼마나 버티고 어떻게 싸우느냐가 이 투쟁의 승패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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