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우울하다"
    By tathata
        2006년 10월 11일 04: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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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 활동가들이 우울하다. 금속연맹과 금속노조 상근자들은 최근 건강종합검진을 받고 뜻밖에 결과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정신건강을 검사하는 우울증 테스트에서 대부분의 상근자들이 ‘경미, 중등, 심각’ 등 수위는 다양하지만 우울증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금속연맹과 금속노조 상근자 21명이 참여한 이번 테스트에는 10명이 우울증 진단을 받아 50% 가까이가 우울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준에 따라 경미한 우울증은 4명, 중등도 우울증은 2명, 전문의의 상담 등 요양이 필요한 심한 우울증도 4명으로 나타났다.

    일반 기업 10%, 공공연맹은 30% 수준

       
     금속연맹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 상근자.
     

    이같은 검사결과는 지난해보다 훨씬 우울증이 심해진 것이다. 우울증 검사를 담당한 윤현옥 성동주민의원 간호사는 “지난해 경미한 수준을 보였던 사람이 올해는 중등도를 받는 등 해가 갈수록 우울의 정도가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연맹은 기업이나 다른 단체에 비해서도 압도적으로 우울증세가 높았다. 윤 간호사는 “기업체의 경우 직원들의 우울증 수준은 평균 10% 안팎에 불과하지만, 금속연맹은 매우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 실시한 공공연맹의 활동가도 30%대에 이르는 우울증을 보였다.

    이 설문지에는 우울증을 진단하는 질문으로 정도에 따라 ‘나는 슬프다’, ‘나는 앞날에 대해서 비관적이다’, ‘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실패한 것 같다’, ‘나는 죄책감을 느낄 때가 많다’ 등 15개 문항을 물었다. 

    활동가들도 전반적으로 ‘우울하다’는 점에는 동의하고 있다. 상당수 활동가들이 심리상담과 약물투여, 휴직요양 등을 통해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민주노총 서울본부 박상윤 사무처장이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일어나 주위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재미가 없다, 열심히 싸워도 못 이기고"

    이번 건강검진에서 ‘경미한 우울증’으로 진단이 나온 금속노조의 한 관계자는 “운동이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흥에 겨워 신이 나서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관성적으로 하는 것 같다”며 “열심히 싸워도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내지 못하고, 노동조합도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중등도 우울증’으로 나온 다른 한 관계자는 “운동의 미래를 생각할 때 전망이 보이지도 않고, 개인적으로도 많이 부족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도부의 성향에 따라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저임금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만도 빠듯하다”고 말했다. 다른 한 활동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정파의 활동을 볼 때마다 우울하다”고 말했다. 활동가들은 전반적으로 지친 표정들이었다.

    그들의 우울은 저임금과 업무과다에서부터 노동쟁의 사업장 투쟁의 잇따른 실패, 조직 내부의 이견과 정파갈등은 물론 노동운동 전망의 부재 등 다양한 원인이 자리잡고 있었다.

    활동가들이 이처럼 우울증세를 보이는 것은 개인의 불행에서 나아가 조직의 운영에도 ‘빨간불’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어느 조직, 어느 집단이든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은 있기 마련이지만, 활동가들의 우울증은 운동 자체의 건강성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야 될 것으로 보인다.

    한 활동가는 “선배 활동가에게 ‘힘들다’고 토로했더니, ‘투쟁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한혁 서울본부 대외협력국장은 “개인의 고민을 사소한 것으로 폄하하고, 활발한 토론보다는 희생과 결의만을 강조하는 운동권의 문화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내부에는 없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기도 한 그는 노동운동 내에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통로가 없다고 진단했다. “스스로를 가꾸고 돌보는 여가를 즐기는 것 보다는 주말에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더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술 마시기와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무마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그는 “의견이 다를 수 있는 것도 ‘차이’로 인정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으로만 판단하는 것도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신체의 건강만이 아니라 정신의 건강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조경석 금속노조 조직부장은 “정신의 감기라고 불리는 우울증 또한 감기처럼 신체적 질병으로 여기고 상담과 치료를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단위 사업장에서도 신체적인 산업재해는 물론 노동자의 정신건강마저 진료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심리치료사나 정신과병원을 마련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의 우울증도 심각하다. 코오롱 해고 노동자는 "한 시간 전에 무엇이 일어났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울만큼 무기력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우울 증상이 부인과 가족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가족 전체가  침울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 우울증도 심각

    박애선 심리학박사는 "인간으로서 당하지 않아야 할 모멸감을 당하는 등 회사의 탄압이 극심하지만 이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극심한 생계고를 겪어 장기투쟁 노동자들은 자살을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활동가와 노동자의 우울은 특정한 한 원인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기보다는 현재 노동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상황과 맞닿아 있다. 그것이 심리상담과 약물치료 등을 통해 완치될 수 있는 개인적인 고민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자신이 소속된 조직 자체가 그들을 우울하게 만든다는 점이 사람들을 더 우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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