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공의, 집단휴진 무기한 지속
    의료공백 피해, 환자들에게 돌아가
    이보라 “집단휴진 지속···전문성·특수성에 대한 의사 권한과 위력에 대한 자신감”
        2020년 08월 31일 03:5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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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지난 21일부터 이어온 집단휴진을 무기한 지속하기로 결정하면서 정부는 집단휴진 중인 전공의 일부를 고발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처럼 의사계의 집단 이기주의와 정부의 일방통식 정책 추진이 맞물리면서 의료 공백이 확대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중환자와 응급환자 등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전협은 두 차례의 표결 끝에 “모든 전공의는 대전협 비대위 지침에 따라 단체행동을 지속한다”는 결과를 30일 발표했다. 이후 7일 동안 단체행동 관련 주요 의사결정은 비대위원장에 위임하기로 했다. 대전협은 국회와 정부 관계자 논의에서도 정부-의사단체 협의회를 구성해 재논의하자는 제안도 거부한 채 “정책 철회” 입장만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의를 위한 어떤 여지도 두지 않은 채 정책 백지화만을 요구하는 대전협의 태도에 대해선 의사계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직 의사인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이날 오전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 인터뷰에서 부정적 여론과 정부의 절충안에도 집단휴진을 지속하기로 한 것에 대해 “의사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특수성에 대한 권한과 위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하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의대정원 확대 등의 정부 정책 추진을 일단 중단하고 코로나19 상황이 끝나면 협의기구를 만들어 재논의하자는 제안까지 거부됨에 따라, 정부 또한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한다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전국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상황
    응급처치 병원 찾지 못한 환자와 이송불가 통보 받은 심정지 환자 모두 사망

    윤태호 중앙사고수습본부 방역총괄반장은 3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오늘부터 비수도권 수련병원의 응급실·중환자실 10곳에 대해 3차 현장조사를 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전국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된 상황이고, 정부는 전국 수련병원에 전공의들이 복귀했는지 여부를 현장조사하고 있다. 만약 현장조사 시 전공의들이 업무에 복귀하지 않은 것이 확인될 경우 개별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되고, 고발조치 될 수 있다. 현재까지 업무개시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전공의 10명이 고발된 상태다.

    정당한 이유 없이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면허정지 처분이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고, 의료법 위반으로 금고 이상의 처분을 받으면 결격 사유로 인정돼 면허까지 취소될 수 있다.

    이처럼 의사계와 정부가 강대강으로 대치하면서 발생한 의료 공백의 피해는 온전히 환자에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26일 부산에서 약물을 마신 40대 남성이 응급처치를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울산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졌고, 이틀 후인 28일에도 경기 의정부시에서 30대 심정지 환자가 인근 병원의 ‘이송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끝내 사망했다.

    일각에선 전공의 집단휴진만으로 ‘의료 마비’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두고 한국 의료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공의의 장시간 노동으로 간신히 유지돼온 민간 중심의 한국의료 체계의 취약성이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보라 공동대표는 “유명 대학병원 대부분이 의료 상당 부분을 전공의에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전공의가 멈추니까 의료가 멈추기 직전까지 가게 됐다”며 “이는 그만큼 한국 의료체계가 취약하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이 공동대표는 이어 “이런 구조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병원들이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를 싼값에, 장시간 노동을 시켜왔기 때문이다. 병원의 영리적인 운영을 위해 전공의에게 의존하는 구조가 대한민국 의료의 약한 고리를 만들어낸 것”이라며 “코로나19와 의사 파업을 계기로 의료 체계의 체질 개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지금처럼 민간 사립병원 출신의 의사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수련을 해서 자기가 원하는 과에 가서 수도권에 개원하는 시스템이 계속 간다면 그만큼, 소위 말하는 밥그릇 싸움이 더 심해질 것이고, 의사들은 사람을 살리는 본연의 임무를 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의료체계를 완전히 바꾸게 된다면 의사 수가 증원되어도 의사들의 근무 여건도 훨씬 좋아지고 국민들이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의 질도 훨씬 나아질 수 있다”며 “이는 민간 중심의 체계로는 절대로 할 수 없다. 공공병원이 중심이 된 체계가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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