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보순례전도여행으로
탄생한 교회들의 후손교회
[그림 한국교회] 경북 의성제일교회
    2020년 08월 31일 10:05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수고하십니다. 저는 ‘명성교회 수습안결의철회 예장추진회의’ 집행위원장 이근복 목사입니다. 여러분의 수고에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압력과 방해가 있었을 터인데, 이렇게 세습반대 걷기를 추진하신 여러분들이 대단하십니다…… 코로나19로 교회가 새로운 길을 가야 하는데, 저는 그 출발은 작년 총회의 명성교회 수습안결의철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8월 13일 오전 10시, 경북 안동시 신한은행 앞 작은 공원에서 열린 “명성교회 세습반대, 총회 헌법수호를 위한 걷기대회”의 시작예배에서 격려사를 하였습니다. “경안지역 교회바로세우기 목회자연대”가 주최한 이틀간의 도보집회는 예배 후 30여명이 경찰차의 인도를 받으며 시작되었습니다.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은 “세습반대”, “총회헌법수호”라는 몸자보를 하고 피켓을 들고 안동시내를 관통하여 걸었습니다. 이틀 동안 죽령휴게소까지 총 60여 km를 7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여기는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의 고향(영양군) 근처이고 이 지역 출신 목사들이 예장(통합)에서 교권을 장악하여 ‘안동사단’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 근거지에서 뜻있는 목사들이 단호하게 일어난 것입니다. 저와 서울에서 내려간 친구목사들은 일정상 1시간 반 정도만 걸었는데, 도보행진 중에 이 지역을 걸으며 전도여행을 하였던 미 북장로교 배위량 선교사와 평화순례를 진행하는 성공회 김현호 신부가 생각났습니다.

2018년 6월 13일, 의성제일교회에서 열린 “배위량 순례단 창립예배 및 총회”에서 배위량 선교사를 알게 되었습니다. 배위량 선교사의 선교를 연구하며 순례단을 열심히 이끌고 있는 배재욱 교수(영남신대)의 초청으로 참석하였는데, 이날의 학술대회(특강)와 자료집을 통해 도보순례전도여행으로 복음을 전파한 배위량 선교사의 사역을 잘 배울 수 있었습니다.

배위량 선교사(William M. Baird, 1862-1931)는 하노버대학과 맥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직후 한국 선교에 나서 1891년에 부산을 거쳐 인천에 도착하였습니다. 1893년 4월, 경상도 지역선교를 위한 선교지부를 물색하기 위해 부산 동래를 출발하여 양산, 밀양, 대구, 상주, 예천, 안동, 의성, 영천, 경주, 울산에 이르는 1,240리나 되는 먼 길을 한 달간 걸어서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서경조와 박재용이 동행했지만 낯설고 물선 땅에서 위험을 무릅쓴 덕분에, 대구에 영남지역 선교지부를 세워 서울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시대를 열었습니다. 그가 1897년 평양에 세운 숭실학당은 1906년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인 숭실전문학교로 발전하였습니다. 숭실대학을 떠나 문서사역을 하게 된 그는 사경회와 순회전도를 하는 한편, 성경번역사역에도 적극 참여하여 오늘의 개역성경의 모태인 “성경젼셔”를 내는데(1911) 기여하였습니다.

이 복음의 씨앗이 결실하여 인구 5만3000명 정도인 의성에 교회가 150곳, 그중 100년 역사를 가진 곳이 30개나 됩니다. 의성의 첫 교회는 1900년 설립된 비봉교회인데, 김수영이 청도 장터에서 전도사 이야기에 감동받아 배위량 선교사에게 세례 받고 돌아와 마을 주민들과 예배를 드린 것이 출발이 되었습니다. 비봉교회에 출석하던 여신도가 옥산면으로 출가해 시댁에서 예배를 드리다 1903년 설립된 것이 실업교회이고, 처가가 있던 비봉마을을 왕래하면서 신앙을 갖게 된 교인이 1908년 읍내에 세운 것이 의성교회입니다. 의성에서 개신교가 지역사회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모범을 보였고 교회가 교육과 독립운동에 기여한 덕분입니다.

비봉교회는 설립 직후 ‘계신학교’를 열었고, 의성교회는 1920년대에 ‘숭신유치원’을 세웠으며, 경북지역 3·1운동은 의성 교회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30부터 평양신학교 학생들이 농촌계몽운동에 나섰다가 일제의 탄압을 받은 ‘농우회(農友會) 사건’도 의성이 중심이었습니다. 일제는 의성교회 유재기 목사 등을 체포하면서, 1938년 8월 신사참배에 반대해온 평양 산정현교회 주기철(1897~1944) 목사를 이 단체와 연루됐다며 체포하여 먼 의성으로 압송해 의성경찰서에서 7개월간 옥고를 치르게 했고, 1939년에는 신사참배에 반대하였던 권중하 전도사가 혹독한 고문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이 흔적을 배위량 순례단 창립총회 후 방문한 ‘의성상설전시관’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은 문이 닫혀 안을 볼 수는 없었지만, 큰 한옥건물은 악명 높았던 옛 의성경찰서였습니다. 의성은 역사적으로 국난이 닥칠 때마다 분연히 일어나서 의성인들은 강직하며 기개를 굽히지 않는다는 평판이 있다고 합니다. 유난히 복음화율이 높았던 의성의 기독교인들은 3.1 만세운동의 선봉에서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며 앞장섰고, 의성경찰서가 기독인과 애국지사들을 극심하게 탄압했던 것입니다. 이번에 그린 의성제일교회(이상훈 목사)는 의성교회에서 1961년에 분립한 젊은 교회입니다. 배위량 순례단 창립식 장소였던 교회당은 참 아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림=이근복

대한성공회 대북지원단체 “평화를 일구는 사람들”(TOPIK)의 상임이사인 김현호 신부는, 2014년부터 동두천 나눔의 집을 섬기며 매년 사순절에 두 주간씩 ‘죽음의 문화를 참회하며 걷는 생명평화기도순례’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 신부님과는 2년 반 전부터 매달 한 번씩 갖는 “용서와 화해 기도회”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대면 기도회 대신에 카톡으로 예배하고 있는데, 작년 기도회에서 도보순례의 가치를 의미있게 들었습니다. 김 신부님은 도보순례를 통해 새롭게 형성되는 삶의 태도를, 단순해지기, 환대, 화를 덜 내게 되고 포용력이 커지는 강해지는 심장, 평화의 감수성, 연대성 인연, 무상무념, 겸손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김 신부님은 “사순절이 기다려지는 이유”라는 글을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순례는 부드러운 변혁의 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나자렛 땅에 오신 예수님도 부드러운 변혁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는 진리의 길을 좇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회당과 성전의 경계 안에서 머물지 않고 그 경계를 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현장 위를 걸었지요. 그 걸음 위에서 평화는 자라고 기적은 꽃을 피웠습니다. 발바닥이 울도록 걷다보면 오염된 우리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나아가야할 진리의 길을 보게 되지요. 죽음이 아닌 생명의 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함께 걸어야할 선한 이웃들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 자신이 정화되지만 깨끗해진 마음들이 모이면 사회가 조금씩 변화되어 갑니다.”

요즘 전광훈의 기이한 행태와 종교 탄압이라고 대면예배를 강행한 일부 교회들로 인하여, 개신교는 유통기간이 끝났고, 파산했으며, 교회로부터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는 신문기사들을 접하며 참담한 심정을 가눌 수 없습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걸음을 멈추면 내 생각도 멈춘다. 내 말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함께 천천히 걸으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라 순례자로 살아야 함을 인식하고 스스로 정화할 때, 한국교회의 생명이 되살아나는 게 아닐까요?

배위량 선교사의 도보순례전도여행으로 탄생한 의성제일교회가 어려운 지역주민들과 동행하며 힘을 주고, 경안지역 목회자들의 세습반대 걷기로 인하여 예장(통합)의 불법적인 명성교회 수습안결의가 철회되어 한국교회가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필자소개
이근복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