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교육개혁을 가로막는가
[기고 칼럼] 학교 현장을 답답하게 하는 관료행정
    2020년 08월 31일 09:3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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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교육부 장관이 기자회견을 하였다. 엄중한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시국은 무엇이 개혁을 가로막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말로는 안전과 생명이 우선이라지만 필자가 보기엔 ‘입시’가 우선이다. 고3은 예외로 등교할 수 있다는 교육부 지침은 입시 일정을 생각하지 않고선 나올 수 없는 지시사항이다. 고3 학생들과 고3 담임교사들, 그리고 고3 교실 수업을 들어가는 교사들은 고스란히 바이러스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열화상 감지기를 출입문에 설치하고 마스크 착용과 학교방역을 철저하게 하고 있는 게 학교의 일반적 현실이다. 그러나 학교 안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180도 급변한다. 왜냐하면 교실은 여전히 과밀학급이기 때문이다. 밀집된 장소이자 밀폐된 공간이다. 필자가 가르치는 교과는 수능 탐구과목 가운데 전국적으로 선호도가 높은 과목이다. 무려 36명이 수강한다. 20평 조그만 교실에 30명 넘는 학생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교육 관료들은 30명 넘는 교실의 경우 강사를 채용하여 교실을 두 반으로 나눌 수 있다고 공문을 내려 보냈다. 하지만 절차가 복잡하여 현장에서 신청하기가 엄두가 나질 않는다.

방학 전엔 다행스럽게도 교사-학생 누구도 감염자 없이 무사히 지나갔다. 그러나 대폭발의 조짐이 보이는 지금 상황에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무더위에 3학년 교실은 예전처럼 쉴 새 없이 냉방기를 가동할 것이다. 그리고 창문을 열어 놓고 수업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마스크 착용은 잘 지켜지지만 거리두기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게 학교현실이다. 서울지역 고등학교의 경우 학급당 학생수는 25명 안팎이다. 우리 학교는 3학년 각반마다 30명 안팎이다. 선택과목일 경우 30명이 넘는 과목도 존재한다. 이런 학교현실에서 거리두기는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바이러스가 고3이라고 학생들과 교사들을 일부러 피해가는 것도 아니다. 입시일정에 맞춰서 개학을 강행할 일이 아니다. 방역전문가들이 강조하듯이 9/11까지 전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하는 게 고3 학생과 고3 교사들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길이다. 이를 위해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법정 수업일수를 감축하면 된다. 간단히 해결될 문제이다. 바이러스 시국은 우리로 하여금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는 사회로 변모하는 만큼 우리들 사고 역시 혁명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고사응시 사진(출처 : 교육부)

실제로 한국 고교생 연간 수업시수는 프랑스 고교생보다 1/3이 더 많다. 수업시수가 많다고 공부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니다. 아니 학문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더 생기는 것 또한 아니다. 이참에 대통령령으로 규정된 법정 수업일수를 170일로 줄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무더위에 아이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등교할 필요도 없고 교실수업 또한 강행할 이유도 없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학급당 학생 수를 15명으로 줄이고 교사를 매년 증원하여 학생들 삶의 질과 교육의 질을 동시에 높여나가야 한다. 그게 교육정책의 흔들림 없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위기상황에서 관료적 지침이 필요하고 때에 따라선 중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평상시든 비상시든 언제나 관료적 지침에 따라 움직여 왔다. 현장교사들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항상 교육청-교육부 지침을 바라보는 것으로 교사의 역할은 한정돼 왔다. 이젠 교육행정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바꿔야 한다. 관료적 지침보다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의지를 믿고 교사의 자발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교육정책을 전환해야 한다.

핀란드 교육개혁이 성공한 최대 관건은 교사의 자발성을 드높이고 교사 자율에 기초해 장학감사제도를 완전히 철폐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런 교육환경을 조성해 주는 게 교육행정이 할 역할이다. 의무연수나 강제연수가 100% 폐지되었음에도 핀란드 교사들은 스스로 전문성 신장을 위해 거의 100% 자율연수에 참여한다. 쉼 없이 연구하고 학생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한다. 존중받는 만큼 교직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렬하다. 핀란드 사회에서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신뢰와 존경심이 높은 이유이다.

우리나라보다 수업시수가 적음에도 세계 최고의 교육수준을 보이는 핀란드(출처 : 한겨레 자료사진) 핀란드 학생들은 학교에 가는 걸 행복해 한다. 자기성장을 맛볼 수 있고 삶의 주인으로서 기쁨이 존재하는 능동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부에 고언 하나 드리고 싶다. 올해 새로운 지침이 내려왔다. 생활기록부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 란에 모든 학생들을 기록하라는 내용이다. 교사로서 그 지침의 교육적 취지를 모르지 않지만 솔직히 매우 비현실적인 지침이라고 단언한다.

교사가 한 학년에 5개 반, 심지어 7개 반을 주당 1시간씩 수업을 들어간다면 거의 불가능하다. 마스크를 낀 상태로 아이들 얼굴도 모른 채 수업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더구나 격주로 대면수업과 온라인 수업이 진행되다 보니 학생들 이름조차 모르고 수업이 진행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학생들 개개인의 세부능력을 일일이 알아서 특기사항으로 적어줄 수 있다는 말인가! 관료행정의 극치가 아니고서야 설명할 도리가 없다.

교육을 바로 세우고 개혁을 제대로 하려면 책상머리에 앉아서 관념적으로 지침을 내리는 것으론 부족하다. 학교현장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교사와 학생들의 생각을 제1의 지표로 삼아야 개혁에 제대로된 시동이 걸린다.

교육부는 2019년 ‘민주학교’를 지정해 시범운영하고 있다. 이른바 ‘민주시민교육’을 학교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한 실천이자 소중한 정책 실험이다. ‘민주학교’는 2010년을 전후한 ‘혁신학교’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은 실험학교이다. 교육 주체인 교사와 학생의 의견을 중시하고 학교를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기본이다. 교사와 학생의 자발성과 자율성에 기초해 공교육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개혁 선도학교이자 모델학교이다.

교사와 학생들이 학교라는 교육공동체를 통해 ‘민주주의’를 생활 속에 체험하고 민주시민으로서 가치와 덕목을 체득하며 함께 성장하는 공간이다. 주권자 의식을 갖고 공동체 문제에 관심과 참여를 보이며 협력과 연대의 정신을 실천한다. 나아가 배려와 존중의 정신을 발휘하여 인간적 성숙을 기하는 공적 공간으로 학교를 새롭게 자리매김하려는 정책이다. 이를 제도화하고 일상화하려는 의도에서 교육부가 2019년부터 정책적으로 ‘민주학교’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를 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지원법’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게다가 ‘민주시민’ 교과를 독립 교과로 지정해 ‘2022 개정 교육과정’에 포함시키려는 교육시민 단체의 연대 활동도 활발하다.

강민정(열린민주당), 박찬대(더불어 민주당), 권인숙(더불어 민주당)의원이 주최하고 교육부가 후원한 민주시민교육법 관련 토론회 장면(출처 : 하성환)

교육계 한 사람으로 모쪼록 교육개혁이 성공하길 빈다. 이를 위해선 가장 먼저 사립학교법을 전면 개정해야 한다. 횡령을 비롯해 온갖 비리를 저질러도 건재하는 모습은 교사-학생-학부모 모두에게 상실감을 낳게 한다. 아니 전 국민에게 극심한 무력감을 안겨다 줄 뿐이다. 지난 해 한유총 사태는 사립학교의 비리가 임계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었다. ‘사학의 자율성’ 은 존중받고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본 전제가 선행돼야 한다. 비리와 부조리가 척결되고 공정하게 학교가 운영된다는 기본 전제 말이다. 더 이상 공익제보 교사들이나 일부 사립학교 교사들의 양심에 의존하는 것으로 사학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사학법 전면 개정과 동시에 민주적인 학교운영의 전면적 실천이다. 교사와 학생들의 자발성에 기대어 그들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 등 교육환경을 민주적으로 재구조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우선적으로 얄팍한 교원평가나 천박한 교원성과급제를 학교현장에서 즉시 철폐하고 교사들을 근본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개혁을 위해선 감시와 통제보다 신뢰가 우선이다.

교육에 대한 일선교사들의 열정과 의지, 그리고 교육개혁에 대한 역량을 믿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감시와 통제, 그리고 장학감사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그것도 맨 마지막에 꺼내들어야 할 카드일 뿐이다.

필자소개
상암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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