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 문제 당내 노선투쟁이 필요하다”
        2006년 10월 11일 07: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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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은 반핵강령을 분명히 하는 정당이다.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모든 민족이 자주권을 확보하는 토대 위에서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로 상호 협조하는 국제관계와 핵전쟁 등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된 국제적 평화체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며 “핵무기를 완전히 철거하고 미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핵 발전소의 추가 건설 중지와 같이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서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런 강령에 입각해보면 북한의 핵개발 문제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불을 보듯 뻔할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북한의 핵실험을 성공했다고 발표한 9일 민주노동당은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입장을 정리했다. 4개의 단락으로 간략하게 정리된 입장이었지만 이것이 정리되기까지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다.

    이날 발표된 민주노동당의 입장에는 북한의 핵실험 강행에 대해 “강한 충격과 유감을 표명”하는 것과 “지금의 상황은 미국의 악의적 대북 무시 정책과 북한의 극단적 선택이 빚은 지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초 회의에서는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반대”를 표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유감” 수준으로 정리됐고 “북한의 잘못된 선택”이라는 표현은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핵시험은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조선중앙통신의 주장에 대해 “민주노동당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삭제됐다. 

    또 최근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해 “대치국면에서 핵이 자위적 측면을 갖고 있다”거나 “핵실험에 대해 북 당국에 어떤 요구를 할 수는 없다” 또는 “북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닌가”라는 말이 민주노동당의 주요 지도부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 김기수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김기수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은 이에 대해 “북한의 핵실험을 옹호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민주노동당을 고립시켜 반미반전, 평화투쟁의 동력을 상실시킬 것”이라며 “북핵에 대한 명료한 반대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9일 긴급대책회의에서 이같은 주장을 강하게 피력한 김 최고위원은 “북핵에 대해 미온적이거나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민주노동당의 반핵 비핵화 강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는 꼴”이라며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핵실험 선언 직전에 북한의 조선사회민주당이 민주노동당을 초청한 것과 관련해 “추진과정에도 문제가 있고 더구나 민주노동당이 핵실험 강행에 대해 우려와 반대 입장을 밝혔음에도 북한이 이를 무시하고 남측의 평화 진보세력을 협력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북측의 태도에 대해 경고하는 뜻에서 이번 초청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김기수 최고위원과의 인터뷰 전문.

    – 9일 열린 긴급대책회의에서 어떤 얘기가 오고갔나.

    = 이용대 정책위 의장이 한 인터넷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민주노동당은 원천적으로 핵은 반대하는데 대치국면에서 핵이 자위적 측면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내가 문제제기를 했다. 또 북한의 핵실험, 자위적 수단으로서의 핵 이용도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최고위원은 “비핵화 원칙을 확인하는 것은 필요하나 우리가 대북제재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북의 어려움에 대해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핵실험에 대해 북 당국에 어떤 요구를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뒤집어보면 북한의 핵개발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런 미온적이고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인식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민주노동당의 반핵강령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군축 평화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발언들이 나오고 있다. 진보정당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 브리핑 과정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 회의에서는 ‘반대’의 뜻이 분명히 표현돼야 한다는 데 대체로 동의가 있었지만 ‘유감’이라는 말로 대체됐다.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표현도 사라졌다.

    – 민주노동당이 북의 핵실험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것인가.

    = 핵실험에 대한 분명한 반대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과 9.19 합의에 따라 핵프로그램을 폐기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또 남북한 민중의 생존권, 생명권을 볼모로 해서 핵무기를 협상카드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조선노동당 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공개서한을 통해서라도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유감’ 정도로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반대는 민주노동당의 원칙이기도 하고 정체성과 관련된 중요한 사항이다.

    더구나 우리의 다음 행보를 위해서도 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미국의 추가적인 제재, 그리고 핵실험으로 인해 파생될 수 있는 일본의 재무장, 남한의 전술핵 배치 등을 저지하기 위한 싸움을 무슨 논리로 할 수 있겠나.

    북핵사태에서 민주노동당의 직접적 역할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최소한 남한민중의 동의를 얻어서 비핵화와 교류확대 등을 주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북의 잘못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핵실험으로 촉발된 위기는 지금 시작 단계이다. 미국이 대북 압박의 강도를 높이면서 이 위기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인데 여기서 민주노동당이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 북한 핵실험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발표는 그렇게 끝났지만 향후 전개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나야 할 때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국회에서 대북결의안이 제출될 경우 어떻게 임해야 하나.

    = 대북결의안에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경협 중단과 철수 등의 내용이 포함된다면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하지만 핵실험에 대한 규탄과 평화적 해결, 비핵화 원칙이 담겨 있다면 당연히 찬성해야 하고 이런 방향으로 마련될 수 있도록 의원단이 적극 나서야 한다.

    – 조선사회민주당의 초청에 대해서도 강하게 문제제기를 했는데.

    = 핵실험 선언 직전인 10월2일에 24일부터 4박5일간의 일정으로 초청한다는 팩스가 접수됐다. 13일에 금강산에서 실무접촉을 한다는데 최고위원회에 전혀 보고된 바가 없다.

    9일 회의에서 사업계획에 포함돼 있는 것을 보고 문제제기를 했다. 답변이 더 문제였는데 실무접촉을 통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보고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북이 남쪽의 다양한 세력과 접촉해서 위기상황을 풀기 위한 과정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북의 필요에 의한 것이다.

    – 조선사민당과의 교류에 대해 당의 전략이 없었다는 것인가.

    = 전혀 없었다. 실무교섭이라고 해도 기조와 방향을 잡고 임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지난해에도 조선사민당의 초청으로 방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평가가 ‘조선사민당과 교류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평가가 진행된 바도 없었고 이번에는 최고위에 보고도 없이 추진되고 있다.

    – 조선사민당의 이번 초청을 거부해야 한다고 했는데.

    = 추진과정상의 문제도 그렇고 더구나 민주노동당이 북의 핵실험 발표 이후 이에 대한 우려와 반대 입장을 밝혔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것에 대해 경고하는 의미에서 초청을 거부해야 한다. 남측의 평화 진보세력을 협력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행동이다.

    더구나 북의 핵실험과 관련한 당의 입장을 북의 당국에 직접 전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도 조선사민당과 만나기 위해 방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12일 최고위원회에서 강력하게 제기할 생각이다.

    – 앞으로 북과의 정당교류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나.

    = 정당교류로 좁혀서 얘기하지 않겠다. 무엇보다 당의 대북사업 전략이 필요하다. 교류 파트너는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해야 한다. 조선사민당이 꼭 교류 파트너여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전제가 있어야 한다. 주요한 의제가 간접적인 방식으로라도 북 당국에 전달될 수 있다면 이 통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북측 당사자를 직접 접촉하는 것이 교류의 전부가 아니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고 대중조직에도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 전략적 마인드 없이 파편적 대응만 해서는 안된다.

    – 최근 들어 민주노동당 내에서 북한문제와 관련한 논쟁이 한층 더 첨예해진 것 같다.

    = 이제 북핵문제가 현실적인 문제가 됐으니 더 첨예해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북핵문제는 미국의 ‘주장’ 또는 북한의 ‘주장’의 문제에 머물렀으나 이제는 현실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그동안 북핵에 대해 ‘미국의 억지’라고 주장해온 진영은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막연한 추정을 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북의 요구에 따라 움직여주는 꼴이었다.

    하지만 이번까지 그러면 안 된다. 남한 진보세력의 입지가 축소될 수도 있는, 매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렇지만 민주노동당내 정파구도상 합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문제일텐데.

    = 당내 노선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최근 지도부 위치에 있는 인사들의 발언으로 비춰볼 때 대북문제 논란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고 당내 노선투쟁은 불가피하다.

    논쟁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명색이 진보정당인데 핵문제에 대한 분명한 원칙이 흔들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 북핵문제에 대한 소극적인 대응은 향후 대선정국에서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 대선정국 뿐 아니라 민주노동당의 일상사업에도 영향을 줄 것이다. 지지율도 지지율이지만 진보정당의 대의와 원칙의 측면에서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지금 명확히 하지 않고 넘어가고 북한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이 문제는 그냥 묻혀버리고 만다. 그럴 경우 민주노동당의 향후 행보가 더 난감해질 수밖에 없다. 핵폭탄은 민주노동당 앞길에 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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