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실험 파장 여권 노선 갈등으로 비화
        2006년 10월 10일 06:5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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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한반도 주변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대북정책을 둘러싼 여권 내 노선차이가 표면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을 비롯한 여당 지도부는 10일 여러 자리에서 대북 포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대북 포용정책의 궤도수정을 시사한 것과는 확연히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김근태 의장은 이날 노 대통령의 면전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대북 포용정책의 실패가 아니라 부시행정부의 북한 무시 정책이 실패한 것"이라고 했다. 김한길 원내대표도 "정부가 대북 포용 정책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 열린우리당 긴급비상대책위원회의
     

    여당 지도부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드러낸 상황인식과 판박이다. 김 전 대통령은 잇따른 공개적 발언을 통해 북핵 위기의 악화 원인으로 미 네오콘 세력의 대북 강경책을 꼽았다. 지난 9일 경향신문과의 특별인터뷰에선 "햇볕정책은 성공한 것"이라며 "훨씬 더 성공할 수 있는데 북미관계 때문에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김 전 대통령은 대단히 예민한 주제를 끄집어냈다. 바로 대북송금 특검이다. 김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을 계승한다 해놓고 대북송금 특검을 했는데 특검만 하더라도 현 정부가 무리하게 강행해 가지고 수많은 희생을 냈고, 결국 (박지원 실장이) 1백50억원을 수뢰했다고 했는데 무죄판결을 받지 않았느냐"고 노 대통령을 비판했다.

    대북송금 특검은 대북정책에 있어 DJ의 노선과 노 대통령의 노선이 갈리는 분기점이다. 최근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김성호 전 의원의 표현에 따르면 "햇볕정책의 근간을 훼손하고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미를 부정하려는 냉전세력의 요구에 화답하는 것"이자 "민주평화세력에게 깊은 상처만을 안겨 준 ‘선무당의 칼춤’"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김근태 의장도 지난 5월 광주에서 "(대북송금 특검은) 김대중 대통령의 열정적인 햇볕정책에 대한 이견이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임종석 의원 등 상당수의 여당 내 재야파 의원들은 공사석을 막론하고 대북송금 특검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 북 핵실험 이후 대북 포용정책을 둘러싸고 표면화되고 있는 노 대통령과 여당 의원들의 입장차는 이와 같은 뿌리를 갖고 있다.

    김성호 전 의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분단 상황에서 민족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동적인 정치군사적 문제와 별개로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꾸준히 병행 추진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정경분리원칙이 바로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햇볕정책의 기본정신이며, 이와는 반대로 경제협력과 문화교류를 정치군사문제와 연계하자는 것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기계적 상호주의’였다"고 했다.

    그는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실험 발사 이후 현 정부가 쌀, 비료 등의 인도적 지원을 중단한 것을 두고 "햇볕정책을 폐기하고 이회창 전 총재의 ‘기계적 상호주의’를 택한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서 김 전 의원은 재미있는 표현을 썼다. 노 대통령을 김영삼 전 대통령에 빗댄 것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는 냉전수구 세력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여 햇볕정책을 철저히 짓밟는 대신 김영삼 정권의 냉온탕 정책을 답습함으로써 남북관계를 파탄지경에 빠뜨렸다"고 했다.

    노 대통령을 YS에 빗댄 것은 단순한 비유 이상의 정치적 함의가 있다. 노 대통령은 YS 밑에서 정치를 시작했고, 이른바 영남 민주화세력의 일원으로서 갖는 정체성이 강하다. 김 전 의원의 이 같은 지적은 노 대통령이 DJ의 노선과는 화합할 수 없는 정치적 뿌리를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이를 "DJ가 ‘호남-민족문제’의 정치적 판을 갖고 있다면 노 대통령은 ‘영남-주류세력 교체’라는 지각판을 갖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이 같은 두개의 지각판이 충돌하면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여권 내 노선 차이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예고되어 있는 정계개편에 어떤 영향을 줄 지 주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북의 핵실험으로 인해 내년 대선의 최대 이슈는 대북 정책이 될 공산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당 지도부가 10일 대북 포용정책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선 데는 대선을 앞둔 정치적 계산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노 대통령과 5당 대표 및 원내대표의 조찬 회담에선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문제 등 대북경협을 둘러싸고 ‘반한나라 연합’이 자연스레 구축됐다. 김근태 대표는 이날 오전 자문위원단 회의에서 "고무적인 것은 앞의 말씀대로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관광사업이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야당대표들의 이야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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