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팔자 고쳐줄 노학연대
    [어쩌다 노학연대 ④] '성공회대학교 <가시> & 인권위원회’ 강건
        2020년 08월 27일 09:18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노동자-학생 연대의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노학연대 프로젝트 ‘나침반’이 노학연대 학생 활동가들의 생각을 듣는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노학연대에 속해있는 학생들은 무슨 고민을 할까요? 그들은 왜 노학연대 활동을 할까요? 대학이라는 공동체와 그 너머의 사회를 배제와 분리가 아닌 이해와 공감, 연대로 다시 정의하는 그들의 항해에 주목해 주세요.(나침반)

    성공회대 가시X인권위 강건 / 강건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성공회대에서 노학연대 활동하고 있는 강건입니다. 현재 성공회대 노학연대 모임 가시와 제4대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공회대 노학연대 모임 <가시>는 어떤 단체인가요?

    성공회대학교 노동자문제 해결을 위한 학생모임 <가시>가 풀네임이고요, 성공회대학교 제4대 인권위원회와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단체 이름인 가시는 보이지 않던 노동자 문제를 ‘가시화’하겠다는 의미가 있고, 송곳과 비슷한 의미로 노동자 문제를 일으키거나 방관하는 성공회대와 세상을 찌르겠다는 의미도 있어요. 작년 말 노동자문제에 관심을 두는 몇몇 학생들과 인권위원회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만들었죠.

    성공회대 <가시> 인스타 페이지

    https://instagram.com/skhu_labor_kasi?igshid=1un9ggdhyb3yy

    <가시>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함께 활동하게 되셨나요?

    대학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앞장서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진보대학, 인권과 평화의 대학이라고 알려진 성공회대학교에 매우 큰 기대를 걸고 입학을 했죠. 그런데 막상 학교에 다녀보니 기대했던 ‘인권과 평화의 대학’은 없었어요.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했어요. 노동자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고, 관리자의 갑질에 시달리고,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죠.

    그래서 그런지 노사 분규가 크게 터지기도 했어요. 2018년 초, 용역회사가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 두 명을 부당해고한 사건이 있었어요. 당시에 노동자들이 학생들에게 연대를 요청했고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힘을 합쳐서 싸운 결과 사측으로부터 해고자 원직 복직 약속을 받아내는 승리를 거뒀죠. 하지만 투쟁이 끝나고 이어진 단체협약 과정에서 사측이 꼼수를 부려 단체협상을 통해 사측이 원하던 해고가 사실상 관철되어버렸어요. 전투에서는 이겼는데 전쟁에선 져버린 꼴이 된 거죠.

    저도 그렇고,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던 학생들은 학생과 노동자가 서로 더 긴밀하게 연대하지 못해서, 투쟁의 연장선이었던 교섭의 마지막 과정까지 함께하지 못했던 것이 패착이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후에 굳건한 노학연대운동을 만들어내기 위해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보다 밀접한 노학연대활동을 계속해 나갔어요. 그리고 작년 말, 그 결실로써 노학연대모임 <가시>가 결성 된 거죠.

    성공회대 노학연대모임 가시X인권위 2020년 5월 연세대 코코투쟁 연대 / <가시>

    물론 처음에는 시혜적인 관점으로 노동자에게 관심을 보였어요. 노동자가 최저임금도 못 받고 열악하게 살고 있는데,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노조 조합원들과 만나 얘기도 나누고 친해지다 보니 비정규직 문제가 남 일 같지 않았어요. 정규직으로 취직하기도 어렵고, 운 좋게 대기업, 공기업 같은 좋은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한다고 해도 천년만년 정규직으로 일할 수 없잖아요.

    언젠가 이 비정규직 일자리가 내 일자리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지금은 노학연대 활동이 단순히 착한 학생들이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시혜적인 활동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해서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발전하는 데에 기여하면 나중에 나도 더 괜찮은 조건에서 노동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2020년 초에 성공회대에서 부당해고 투쟁이 있던 것으로 기억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성공회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맺은 단체협약을 보면 정년은 65세이고 정년이 넘더라도 3년은 촉탁연장계약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상의 정년연장 조항이 단체협약에 포함되어 있어요. 노동자가 일할 의지가 있고 건강상으로 문제가 없다면 3년 동안 더 일할 수 있는 조항인데, 학교에서 66세가 된 조합원 한 분의 병력을 이유로 해고하겠다는 공문을 보냈죠. 해당 조합원은 암 투병 생활 후 완치해 복직했고, 일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의사소견서까지 제출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지난 투쟁에서 가장 열심히 투쟁했던 조합원이었기에 사측이 노조탄압의 일환으로 조합원을 표적해고한 것이 확실해 보였죠.

    2020 성공회대 부당해고 저지, 노조탄압소장 교체투쟁 카드뉴스 / <가시>

    이대로 조합원이 해고되면 더는 노조가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왔어요. 2018년 부당해고 저지 투쟁과 19년 부당노동행위 반대 투쟁에서 두 번을 졌는데, 창립 이후 세 번을 연달아 패하면 노조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죠. 이번만큼은 꼭 이겨야 했죠.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토론하고, 서로를 설득한 끝에 해고를 일주일 앞둔 2월 24일부터 부당해고 철회, 노조탄압 소장 교체를 요구안으로 내걸고 투쟁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전 투쟁 때는 함께 투쟁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는 늘 함께 투쟁하고, 고민하고, 토론하는 학생들이 10명 정도가 됐죠. 처음에는 학교에서 소규모 집회로 시작했다가 외부 연대 세력을 끌어들이고, 지역사회랑 결합해 판을 키워나갔어요. 투쟁이 계속 이어지던 가운데, 학교가 투쟁이 부담되었는지 자신들이 중재안을 내겠다며 대화를 하자는 제안을 해왔어요. 그런데 그 중재안이 완전 엉터리인 거에요. 우리 요구안은 단체협상 준수에 따른 1년 연장 계약이었는데 3개월, 6개월짜리 단기계약을 하는 선에서 투쟁을 접으라는 엉터리 중재안이었죠.

    노동자들과 학생들은 합의안을 거부하고 4월 1일 110명이 함께하는 대규모 집회를 진행하는 등 투쟁 수위를 높여 나갔어요. 이후, 원청인 학교와 이해관계가 있는 상급단체 지도부가 투쟁 중단을 회유하고, 6개월 연장계약으로 만족할 것을 종용하고, 노동자들이 수용하지 않으면 직권조인하고 조합원을 징계하겠다며 협박하는 등 우여곡절도 있었죠. 그래도 노동자와 학생들이 굴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한 끝에, 4월 23일에 해고자 원직복직(1년 계약), 소장 교체를 논하는 진상조사위원회 구성 등에 노, 사, 원청 성공회대가 합의하며 투쟁은 승리로 마무리가 되었어요. 이후 진상조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노조탄압을 일삼던 소장도 교체가 되었고요.

    2020년 4월 23일, 성공회대 부당해고 저지, 노조탄압소장 교체투쟁 합의 직후 / 강건

    투쟁에서 뿌듯했던 점이 있나요?

    투쟁하면서 노동자들과 학생들 모두에게 가장 강조했던 이야기가, ‘학생들은 착해서 도와주러 온 것이 아니다. 모두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나의 투쟁을 한다는 마음으로 결합한 것이다.’ 였어요. 노동자와 함께 논의하고 토론하고 활동할 수 있는 투쟁의 주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활동의 지속가능성이 없고 함께 운동할 동력이 부족하리라 생각했거든요.

    2020년 부당해고 복직투쟁에서도 학생들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진지하게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함께하고 있는지 강조했어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집회를 준비하고,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고, 저녁 늦게까지 투쟁 전략을 논의하며 다음 투쟁을 준비하는 등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그 진정성이 조합원들에게 전달이 된 것 같았어요. 처음에는 고마운 학생이었다면, 나중에는 의견이 있으면 함께 토론하고 얘기하는 동지적 관계가 됐거든요. 노동자들에게는 동지로 인정받고, 학교와 회사에는 무시할 수 없는 투쟁세력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이 뿌듯했어요.

    2020년 복직투쟁에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떤 것이었나요?

    투쟁에서 승리했지만, 막상 투쟁이 끝나고 나니 투쟁하면서 만들어낸 노동자-학생 간의 동지적 관계가 원점으로 되돌아가 버렸어요. 투쟁 직후에 단체교섭이 시작되었는데요, 학생들은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위해 70세 정년 조항을 반드시 단체협약에 포함해야 하며 대화와 교섭만으론 정년 연장이 어려울 수 있으니 새로운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어요. 기존 단체협약의 해석 차이로 힘겨운 부당해고 저지투쟁을 했으니 이런 불상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정년연장을 통한 고용안정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노동자들은 지난 투쟁이 너무 고단해서,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자는 제안을 굉장히 부담스러워했던 것 같아요. 다가올 단체교섭 대응방식을 정하는 토론이 한창이던 어느 날, 노동자들이 학생에게 임금 협약 및 단체협약은 학생들과 함께하지 않고 상급단체와 노-사 당사자끼리 논의하겠다고, 제 3자인 학생들은 빠져 달라고 통보해왔죠. 현재로서는 사실상 <가시>와 <인권위원회>가 동력이 떨어진 상태죠.

    저도 그렇고, 함께 투쟁했던 학생들은 노동자들이 투쟁을 못 하겠다고 하든, 보다 평화적인 방식을 고수하겠다고 하든 노동자들과 함께 하고 싶었어요. 그런 방식이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말이죠. 어떤 결정이라도 좋으니 같이 토론하고 함께 결정하고 책임지는 관계를 만들자고 약속했고 투쟁 속에서 동지로 인정받았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하루아침에 갑자기 노동자들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버려서 저도, 다른 학생들도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학내 노학연대활동의 구심점이었던 <가시>와 <인권위원회>의 동력도 사실 많이 떨어진 상태고요. 원래는 청소경비노조와 함께 투쟁을 계속해서 기숙사 노동자, 급식실 노동자들도 기존 노조를 중심으로 조직해보자는 계획이 있었는데 전부 무너졌어요.

    하지만 아쉬운 만큼 소중한 교훈도 얻었어요. 저는 투쟁하는 노동자를 떠올릴 때, 전태일 열사처럼 굉장히 영웅적이고 헌신적이고 대단히 특별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 같이 평범한 일개 대학생이 그런 대단한 노동자들과 만나고, 투쟁한다는 사실이 설레고 자랑스러웠죠. 그런데 사실 제가 만나서 함께 투쟁했던 그 노동자들도 나처럼 굉장히 평범하고, 시시한 사람들이었던 것 같아요. 매일 아침 “오늘 아프다고 뻥 치고 투쟁하러 가지 말까”를 수없이 고민하던, 투쟁이 너무 길어지고 일상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두려워했던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었던 거죠. 그렇게 평범하고 시시한 사람들이 만나서 싸우고, 잠시 동안이었지만 동지가 되었던 시간이었기에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완벽한 결말이 나오기 어려웠던 게 아닐까요? 전태일이나 멋진 투사가 아닌, 평범한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이기고, 동지가 될 수 있는 노학연대의 새 길을 찾아내야 한다는 숙제가 생긴 것 같네요.

    지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저희 학교 조합원 중에 소장한테 진짜 심각하게, 수년간 직장 내 괴롭힘 수준으로 괴롭힘을 당한 분이 계셨어요. 다들 그분이 금방 그만둘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분이 직장을, 노조를 그만두시지 않더라고요. 이유를 여쭤봤더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별다른 경력이 없는 중년여성 노동자를 써주는 직장이 없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벗어나고 싶어도 못 벗어나는 거죠. 노조를 한다는 이유로 더 많이 괴롭힘을 당하고 당장은 노조가 힘이 없어서 그런 자신을 지켜주지도 못하지만, 노조 조합원으로라도 남아있어야 잘리지 않을 것 같아서 노조에도 남아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아무리 힘들어도 함부로 포기조차 할 수 없는 구조적 위치에서 놓여있는 것 같아요. 갈 곳도 없고 어딜 가나 조건이 별반 다르지 않을 테니까요. 이런 비정규직 세상에 살아가는 저도 그 구조적 위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거예요. 도피처도 마땅히 없을 테고요. 그런데 이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솟아나갈 구멍이 딱 하나 있는 것 같아요. 지치고 힘들어도 견뎌내고 투쟁해서 승리하는 것, 그래서 자신의 노동조건을 자신의 힘으로 개선하는 것 만이 비정규직 노동자가 살길인 것 같아요.

    괴롭힘을 당하시던 그 조합원님은 지금까지 견뎌 내셨고, 투쟁하셨어요. 그분이 용기를 내셔서 자기가 당한 괴롭힘을 공론화하신 덕분에 소장은 쫓겨났고, 지금은 아주 행복하고 당당하게 일하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자신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있기에, 그들이 만든 승리를 직접 목격했기에 저도 포기하지 않을 원동력을 얻는 것 같아요.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노학연대 활동을 하는 저도 포기하지 않고 함께 싸우면 노동자로 살아갈 제 팔자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요?

    2020 성공회대 부당해고 저지, 노조탄압소장 교체투쟁 노동자-학생 총회 이후 / 강건

    앞으로의 진로를 물어봐도 될까요?

    막연히 제가 살아갈 세상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투쟁하면서 우리 투쟁에 함께하는 학생 중에 노무사 같은 무시 못 할 전문가가 있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혈기만 왕성한 학생들이라고 무시당하는 게 정말 짜증 났거든요. 반은 농담이고 허무맹랑한 꿈인 것 같지만 졸업하기 전에 노무사 자격증을 따서 학생들을 무시하던 학교, 용역회사를 아주 박살 내버리고 싶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궁금해요.

    당장 학교에서의 투쟁이 어려워졌더라도 노학연대 활동이 재생산되었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패배하거나 실패하는 경험이 많더라도 포기 하고 싶지 않아요. 어떻게 다시 투쟁을 조직할 수 있을지, 투쟁이 없는 휴전 기간에는 함께하는 학생들과 함께 실력을 쌓으며 어떻게 다음 투쟁을 준비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함께 희망을 잃지 않고 나아가고 싶어요.

    [어쩌다 노학연대③] ‘숙명여대 만년설’ 나수빈 씨와의 대화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