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먹여 주는 민주주의 위해 새로운 싸움을”
    2006년 10월 10일 04: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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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인? 누구더라……? 기억이 저 멀리 뒤로 물러나자 작은 불꽃이 보이기 시작하고, 이내 시뻘건 횃불이 되어 이글거렸다. 김명인. 민중적 민족문학론을 제기하고, 삶과 혁명과 문학의 통일을 선동한 사람. 그런 그의 주장이 없었더라도 사는 게 혁명이고 문학이 혁명이던 시절, 그 유치하면서도 뜨거웠던 과거에 여러 이름을 묻어두고 우리는 여기까지 와 있었다.

김명인은 국어교사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변신해 있었다.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를 뒤적이며, 인하대 교정 한 켠의 사무실을 찾았다.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에는 문학비평보다 사회비평이 더 많았다. 김명인은 “더 이상 지성과 윤리를 제대로 갖춘 문학은 산출되기 힘들다”는 단언까지도 하고 있었다. ‘부자 아빠’ 류의 출세서가 휩쓴 서점가에 그의 비평을 기다리는 문학 작품이 없기 때문일까?

“한국 문학이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죠. 사람들의 정치적 관심이 희박하잖아요. 환멸하기까지도 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은 87년을 정점으로 하강 중이예요.

이러니, 예전부터 글쓰던 사람들은 피로하게 되고, 새로 글쓰기 시작한 사람들은 지적 성장 과정에서 세계와 접촉할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던 거죠. 좋은 글쓰는 사람이 나오기 어려울 수밖에요.

80년대 문학의 정치지향성, 변혁성, 민중성에 대한 반발이 90년대 문학의 일상성과 개인성이고, 그런 게 지금의 트렌드(Trend, 경향)죠.”

김명인이 ‘사회성 있는 작품’만을 비평거리 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상에는 사회성이 숨어 있게 마련이죠. 말하지 않는 것도 사회적 태도일 수 있고요. 하지만 일상성이나 개인성을 표방하는 작품들 대개는 미학적으로도 뛰어나지 않은 거 같아요.

90년대 문학은 ‘사회에 대해 발언하지 않겠다’는 것을 모토로 삼았어요. 그런데 말하지 않다 보니 아예 말하지 못하게 됐어요. 작위에서 부작위로 변한 거죠.

사회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IMF나 대통령선거를 다루자는 건 아니지만, 근대문학의 핵심은 ‘이 세상이 살만한가?’를 묻는 것이예요. 개인을 다룰 때조차도 그래요. 그 개인이 행복한가,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찾는 것이 문학이죠. 그 물음의 핵심에 ‘지성과 윤리’가 있는 것이데, 지금은 멸종했습니다.”

그가 문학을 비관하는 이유 중에는 노무현 정권에 대한, 그리고 ‘배반한 민주주의’에 대한 환멸도 자리하고 있다. 노무현을 열렬히 지지하던 김명인은 이라크 파병 때, 그 지지를 깨끗이 접었다.

“노무현이 최선이었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어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차악을 선택한 거죠. 노무현에게 그럴듯한 시스템을 기대한 건 아니예요. 시스템을 깨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거죠.

윤리성도 많이 기대했어요. 윤리적 과단성을 기대했죠. 집권 초기 노무현의 막말을 즐기기도 하고, ‘노무현 수호대’를 자처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아니다’예요.

애초에 한 사람, 개인에게 기대하는 게 아니었어요. 만약 한 개인에 기대어 세상을 바꾸려면 엄청난 ‘골통’이어야 하는데, 앞으로 당분간은 그런 ‘골통’이 나오지 않을 거 같아요.

요즘 ‘노빠’들은 궁지에 몰리면서 더 뻔뻔해진 거 같아요. 실패한 원인이 어디 있는지를 찾지 않고, ‘변명과 항변’을 하는 게 정권의 제일 중요한 일이 되고 말았어요. 국정홍보처의 한미FTA 프로파간다(Propaganda, 선전)는 정말 놀라울 지경이예요.”

김명인은 “민주정부가 밥 먹여준다는 환상을 버리라”고 말한다. “이 ‘무늬만 민주 정권’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민주화에 대한 환상도 말끔히 버리고 진정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자”고 외친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죠.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는 의미가 없어요. 저는, 박정희 전두환 체제에서 노무현에게까지 이르는 ‘민주화’가 꼭두각시 놀음이었다고 생각해요. 미국 주도 신자유주의의 한반도 정착화가 바로 민주화인 거죠.

지금 뒤돌아 보면, 신자유주의라는 세계적 조류와 한국에서의 민주화가 일치했어요. 박정희의 비시장적 권위주의에는 신자유주의를 착목시키기 어렵잖아요. 민주화가 박정희 체제를 붕괴시키며, 신자유주의를 들여온 거죠.

우리가 거리에서 싸우고, 피흘리고, 감옥 가며 바랐던 게 이런 사회는 아니잖아요? 이건 민주화가 아니예요. 우리가 꿈꾼 사회가 아니니까.”

‘밥 먹여 주는 민주주의’, 이 글쟁이가 꿈꾸는 이상사회의 현실태는 어디일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쿠바예요. 북유럽 사민주의도 좋겠지만. 저는 한 사회를 평가하는 데 있어 경제적 요소 뿐 아니라 사회심리적 요소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쿠바나 북유럽에는 사회적 진정성, 사회구성원에 대한 예의가 살아 있는 거 같아요.

조금 배고프더라도 인간적인 거 같아서 쿠바가 좋아요. 정치가나 경제학자가 이런 얘기하면 미친 소리지만, 문학하는 저는 그렇게 말하겠어요.”

김명인의 책 곳곳에는 심상치 않은 표현이 심심찮다.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자”라든가, “내년부터는 진정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위한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자”라든가…….

   
  ▲ <환멸의 문학, 배반의 민주주의>(김명인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

“민주노동당 창당할 때, 친구 황광우가 입당하라고 하길래, 한 번 설득해보라고 그랬는데, 그 다음에는 별 말이 없더라구요.

지난 총선부터는 내내 민주노동당 찍고 있어요. ‘내년’이라는 건 대선을 말하는 건데, 총선이나 대선이 얼마나 허망한지 모두들 잘 알고 있잖아요. 하지만 그 대선이 한국 사회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죠. 대선 한 번으로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겠지만…….”

김명인 스스로는 ‘준정치활동’ 또는 ‘유사정치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평한다. ‘준정치활동가’인 김명인이 보기에 민주노동당은 어떨까? 그리고 ‘새로운 전선’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전선’이 구체적인 조직 같은 건 아니예요. 운동의 혁신에 더 가깝겠죠.

저는 지금의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재생산의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이제 전통적인 노조세력은 피착취계층이 아니예요. 이에 따라 자본주의는 새로운 피착취계층, 새로운 주변부를 만드는데, 바로 비정규직이나 외국인 노동자죠. 비정규직 문제를 자기 문제로 안을 수 있는 노동운동, 비판적 성찰을 할 수 있는 노동운동이 형성돼야 해요.

그리고 그 노동운동이 마이너리티와 연대해야죠. 급진적 생태운동과도 연대하고, 정치운동과도 연대하고. 정치 없는 운동이나 정치만 하는 운동은 실패하게 되죠.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위험해요. 하지만 현재의 민주노동당에서 비판적 성찰이나 마이너리티와의 연대가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예요. 예를 들면 통일운동은 보수화됐죠. 백낙청의 ‘분단체제론’ 같은 것은 다른 사회 현안을 억압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민주노동당에는 이런 보수적 흐름이 크게 자리잡고 있어요.”

김명인의 새 책이 나왔을 때, 이러저러한 언론이 그와 그 책을 다루었지만, 몰라서인지 숨겨서인지 다루지 않은 것이 있다. 그는 무림(霧林, 70년대 후반의 서울대 학생운동 조직)의 핵심이론가였다. 김명인은 아직도 맑스주의자일까?

“맑스주의적으로 사고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그게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죠. 그 사람의 큰 틀을 벗어나는 게 쉽지 않네요. 맑스가 구체적인 전략전술에서는 실패했을지 몰라도, 저로서는 맑스의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관점․해석은 전혀 포기할 생각이 없어요.

저는 글쓰는 사람입니다. 글 써서 선동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모르겠다. 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혁명이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제 몫을 알고 있는 사람은 행복할 테고, ‘환멸과 배반’이라는 극언의 책은 쓴 김명인이 지금 행복하다는 것은 인터뷰 내내 알 수 있었다.

김명인 약력 (1958년 생)

문학평론가, 출판편집인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
1984 ~ 1990 도서출판 풀빛 편집위원
1986 ~ 민족문학작가회 회원
1991 ~ 1992 문예중앙 편집위원
1995 ~ 인하대학교 인문학부 강사
1999 ~ 황해문화 편집주간
2002 ~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 겸임교수
2004 ~ 민족문학사학회 이사

필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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