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창 가북교회,
    거창양민학살사건의 증인
    [그림 한국교회] 한국현대사의 비극
        2020년 08월 17일 03: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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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거창하면, 거창고등학교와 거창양민학살사건이 떠오릅니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강당의 오래된 액자에 걸려있다는 ‘직업선택 십계명’의 일부입니다. 1956년 전영창 선생은 빚을 얻어 폐교 직전의 거창고를 인수해 인성교육의 본산으로 키웠는데, 이사장 원경선 선생이 크게 기여합니다. ‘풀무원 농장’을 운영하며 국내 최초로 유기농을 시작하며 ‘정농회’를 설립하고 환경생명운동과 평화운동을 전개한 분입니다.

    거고는 군사정권에 맞서서 세 번이나 폐교 위기에 몰렸습니다. 전영창 교장은 ‘교장실에 박정희 대통령 사진을 걸라’는 지시를 거부했고, 1980년, 원 이사장은 광주시민항쟁과 참상을 학생들에게 알렸습니다. 학교 폐쇄조치가 내려졌지만 교장과 교사들은 자기 집에서 수업을 계속했습니다. 군사정권은 ‘사회정화’를 내세워 삼청교육대를 만들고 문제학생들 명단을 넘기라고 각 학교에 지시했는데, 거고는 도리어 군 당국에게 따졌습니다. 거고는 인성교육에 매진하면서도 매년 30여 명이 서울의 유명대(SKY)에 진학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이 전국에서 몰려들어 경쟁률이 심합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 뒤에 끔찍스런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이 있습니다. 1950년 서울수복 후 국방부가 인민군과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창설한 제11사단의 9연대 3대대장 한동석은 1951년 2월, 작전 중 신원지서가 빨치산의 공격을 받자 주민 719명을 총살했습니다. 국회조사단이 파견되자 김종원 대령은 국군 1개 소대로 공비를 가장, 위협 총격을 가함으로써 사건을 은폐하려 했습니다. 사건전모가 밝혀져 내무·법무·국방장관이 사임하였으며, 김종원, 한동석 등 주모자들이 군법회의에서 실형을 선고받으나 이승만 대통령은 1년도 되지 않아 특별사면했고 특히 김종원을 경찰간부로 등용하였습니다.

    4·19혁명 후 유족들은 진상규명운동을 벌여 유골을 모아 봉분을 만들고 위령비를 세우고, 사건 발생 당시 신원면장이었던 박영보를 잡아 생화장하였습니다. 국회는 거창사건을 비롯해 한국전쟁기 학살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과 피해자 구제조치 등 권고안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로 박산골 비석은 징으로 쪼여져 묻혔고 유해는 흩어졌습니다.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제정되어 사망자 피해유족을 확정하고 거창군 내에 기념관을 건립했지만,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진상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7월 28일, 부산에서 같이 모임을 한 후 가북교회로 저를 데려다 준 이진숙 목사님(거창 영락교회)은 보수적인 지역에서 의연하게 사역하는 듬직한 분입니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차창으로 보이는 거창이 뜻밖에 넓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리산과 덕유산, 가야산 3대 국립공원 가운데 자리잡은 넓은 분지이고 자연경관이 수려하다고 합니다.

    그림=이근복

    그날 붉은빛의 가북교회는 비 가운데 처연하게 서 있었습니다. 거창지방에 복음을 전해준 이는 미 북장로교 심익순(Smith, Walter Everett) 선교사입니다. 그는 1902년에 내한해 부산지부에 소속돼 있으면서 7년간 거창지역을 순회전도하머 세운 8개교회 중 개명리교회(1904)는 이 지역 최초의 교회입니다.

    1906년에 세워진 가조교회 교인들의 전도로 가북에 교인들이 생겨나자, 당시 거창지역의 순회목사로 12년간 사역한 이자익 목사가 1934년에 가북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장로회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한 존경받던 이 분은 마부로 일하다 예수 믿고 금산교회의 초대장로가 되었고, 평양신학교 졸업 후 금산교회 2대 목사로 섬기다, 호주장로회 선교부의 요청으로 1926년에 순회목사로 부임한 것입니다. 가북교회 교인들은 일제의 혹독한 신사참배 강요에 온몸으로 맞섰고, 교인들이 거창경찰서에 감금되는 등 수난을 당했습니다. 해방 후 거창지역은 신사참배거부운동을 주도했던 주남선 목사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교회들이 고신 측에 소속되었는데, 가북교회가 예장통합측에 속하게 되자 가북교회에서 나온 교인들은 용산교회를 세웠습니다.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 목회아카데미의 주제강사입니다. 2005년 12월 1일 출범하여 인권유린과 폭력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은폐된 진실을 밝혀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에 기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기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상임위원으로 4년 2개월 동안 기여했습니다. 김 교수는 2017년 11월,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자전국합동추모제’에서 이런 조사를 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67년이 지났습니다…… 20세기 발생했던 우리 역사의 최대의 비극인 전쟁 전후 학살사건에 대하여 우리 사회는 너무 무관심했고 또 여기 유족들은 힘들게 살아오셨습니다….. 제주 4.3사건 같은 경우는 미리 진상규명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평화재단까지 설치되었음에도 피해자들에 대한 응분의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현실이 있구요. 거창사건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미군 피해 사건 같은 경우는 제대로 진상규명이 안 되었을 뿐더러….. 우리가 너무나 전쟁의 위협에 무감각하다는 생각을 하고 만약에 이런 한국전쟁의 피해사실이 온국민들에게 제대로 교육되고 알려진다면 어디 감히 전쟁을 다시 할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오겠습니까? ….. 살아있는 우리들이 희생의 진실을 밝히고 이런 비극이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그런 역사적인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추도회를 통해서 우리가 영령들을 위로하고 살아있는 여러분들이 서로를 위로하면서 우리 사회의 화해를 도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국민일보 전정희 선임기자는 거창의 가북교회를 방문하고 이렇게 썼습니다.

    교회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인 거창양민학살사건을 가까이서 지켜본 산 증인이기도 하다. …… 골짜기에 피가 넘쳤고 이웃을 잃은 주민의 눈에서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김재원(77) 장로의 증언. “낮에는 국군이 밥 달라 하고 밤에는 인민군이 산에서 내려와 밥 지으라고 협박을 했지요. 뭐 할 수 있는 게 있나. 밥 내놓지 않으면 죽이겠다는데…. 윗동네 할머니는 빨치산이 밥 내놓으라고 해서 줬더니 다 먹고 총으로 쏴버리는 바람에 돌아가셨어. 다 억울하게 죽은 거지.” …… 그는 교회 앞으로 나가 당시 인민군이 내려왔던 길을 손으로 가리켰다. 길 건너 별유산의 능선 사이가 주요 루트였다.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몸서리가 쳐진다고 했다. 『아름다운 교회길』 (홍성사, 2014.3.20., 206-208쪽)

    깊은 상처를 입은 이들이 출석하는 가북교회(장영춘 목사)는 이 비극을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며칠 전 음악 칼럼리스트 최영옥 선생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클래식은 처음입니다만』(최영옥, 스코어, 2020.7.20)에 답이 있었습니다. 최 선생은 “클래식 아는 만큼 들린다” 등으로 감동적인 강의를 하는 교회권사님입니다. 첫 장은 작곡가 에릭 사티의 “날 널 원해”라는 곡을 소개하는데, QR 코드가 있어 소프라노 조수미가 부른 감미로운 노래도 들었습니다.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태어난 사티가 활동하던 시기는 후기 낭만주의와 표현주의가 주를 이루던 때였다. 그는 즉흥성이 강한 화려함이나 보이는 느낌에 치중하는 음악이 대세이던 이기에 모든 음악에서 일체의 허식을 버려야 한다고 믿었던 작곡가이다. 『가구의 음악』이 대표적인 예이다. 음악은 모두의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옆에 늘 존재하는 가구처럼 떠들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편안함과 안락함, 온기, 그리고 때때로 빛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15쪽)

    교우들을 위로하는 것이 교회의 기본사역이지만, 사실 쉽지는 않습니다. 상투적인 접근은 도리어 더 깊은 상처를 주는 까닭입니다. 편안함과 안락함, 온기와 빛!! 한국전쟁 70주년에 거창민간인학살사건의 증인인 가북교회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가구처럼, 아직도 망연자실하고 있는 이들 곁에서 기도하며 묵묵히 머물러 있으면, 그들 스스로 일어날 것입니다.

    필자소개
    성균관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 전 영등포산업선교회 총무, 새민족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교육훈련원장 역임. 전 크리스챤아카데미 원장. 한국기독교목회지원네트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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