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 3개월 논의 '혁신안' 발표
    강령 좌클릭 권고, 대국민 메시지 미흡
    복수의 안으로 가다가 단일 혁신안으로 조정 수렴
        2020년 08월 13일 08: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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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이 3개월 가까운 논의 끝에 단일 혁신안을 발표했다. 기후위기와 불평등 문제 등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를 개정할 강령에 담아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큰 성과다. 다만 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당 내부 문제에 한정한 것이라, 비당원인 국민을 향한 메시지는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는 비판적 평가도 나온다.

    정의당 혁신위원회는 13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총 14가지 제안을 담은 혁신안을 발표했다. 혁신위는 지난 5월 24일 발족해 전국 당원 의견 수렴을 시작으로 3개월 가까이 당 혁신을 위한 논의를 이어왔다.

    혁신위는 당 혁신의 제1과제로 ‘강령 개정’을 꼽았다. 5년 전 강령 제정 당시 설정한 ‘정의로운 복지국가’가 현 시대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령 개정 권고안에서 “2015년에 개정된 정의당의 현 강령은 이전까지의 진보의제를 가장 온건한 수준에서 집약하고 있다. 기존 진보의제의 온건한 수준의 업데이트는 중도정당인 민주당과 진보정당인 정의당 사이에 ‘장강이 흐른다’는 느낌을 주기 어렵다”며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에 대응하여 ‘녹색 사회국가-평화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는 새로운 강령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탈자본주의 대안사회 논의 필요성 강조 눈에 띄어

    혁신위는 강령개정 권고안에 기후위기, 불평등, 노동, 젠더, 지역운동 강화 등을 개정할 강령의 방향성으로 담았다. “현재의 소득 불평등, 자산 불평등, 빈곤 및 이를 영속화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과 이를 넘어설 새로운 사회구조에 대한 인식을 담아야 한다”며 “‘탈자본주의 대안사회’에 대한 토론을 지금부터 심도 깊게 시작해야 한다”며 ‘탈자본주의 대안사회’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눈에 띄는 지점이다.

    당이 한국사회 내 하위 80%를 대변하는 정당이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혁신위는 “한국사회를 20:80으로 나눈다면 상위 20%는 산업화 보수세력과 86세대로 대변되는 ‘브라만 좌파’이고 하위 80%는 빈곤과 불안정노동, 가계채무의 그늘에 있는 사람들”이라며 “정의당은 고학력 엘리트를 대변함으로써 불평등 해소라는 시대적 과제에 전혀 손대지 못하는 ‘브라만 좌파’와 결별하고, 정의로운 재분배를 지향하는 혁신 진보로 거듭나야 한다. 개정 강령은 무너져가는 사회에서 정의당이 누구의 편에 서서 사회를 재조직화하려 하는지 보다 선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혁신위 내부에서도 당의 ‘좌클릭’을 요구한 강령개정 권고안은 성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홍명교 혁신위원은 “(강령개정 권고안은) 세계적인 자본주의 위기에 맞서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 80%의 빼앗긴 사람들의 입장을 정치적으로 대변하고 그들이 삶을 바꾸는 무기를 쥐어주는 방식으로 포지션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며 “사민주의보다 더 오른쪽에 있던 기존 강령을 비판하고 더 왼쪽으로 바꾸는 것을 권고했다는 점을 작지만 성과”라고 말했다.

    김준우 혁신위원은 “기존 강령의 ‘정의로운 복지국가’는 시효가 만료됐다고 보고, 현 정부의 ‘사람 중심의 포용 국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세기 북유럽 사민주의 벤치마킹만으로 진보정당임을 자임했던 시절에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 구조적 모순 맞닿아있다’는 표현을 어렵게 담았다”고 설명했다.

    권수정 혁신위원은 “권고안은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 것”이라며 “(차기 지도부가) 강령개정 방향성을 받아서 체질 개선 등의 노력을 한다면 ‘저 당이 나를 소환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조금 더 정의당을 나의 당으로 인지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도체제 전환에 대한 요구는 부대표를 기존 2인이었던 선출직 부대표를 5인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앞서 일부 혁신위원들은 ‘심상정 체제’ 하에서 지적돼온 일방적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현재의 단일지도체제를 집단지도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나, 책임정치 약화에 대한 우려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 외에도 혁신안은 ▲당원 직접 민주주의 ▲당권제도 ▲당원교육 ▲조직문화 ▲대의기구 ▲청년정의당 ▲부문·직능·과제별위원회 ▲지역강화 ▲당무시스템 ▲기관지 및 당 메시지 업무 시스템 ▲재정 혁신을 위한 제언 ▲조기동시당직선거 실시 등을 제안했다. 혁신안 초안 공개 시 논란이 일었던 당비 인하는 당원들의 반대로 혁신안에 담기지 않았다.

    외부 향한 메시지는 미약 혹은 부재

    혁신안의 내용이 대부분 당 내부에 관한 것이라는 점, 정의당의 혁신을 드러낼 만한 상징적 정책이 부재한 점, 진보적 의제를 설명할 대중적 언어가 부족한 점 등 국민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매우 미흡하다는 비판은 피해가기 어려워 보인다. “이번 혁신안은 펄럭이는 깃발 같은 혁신안이라기보다는 매일의 식탁 위에 놓인 그릇 같은 혁신안”이라는 장혜영 위원장의 말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읽힌다.

    익명을 요청한 한 혁신위원은 “혁신의 방향이 내부에 매몰돼있다. 강령개정 방향에서 밝히긴 했지만 진하게 드러나진 못했다”며 “국민적 메시지를 창출하지 못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것이 현재 진보정당의 실력인 것 같다”고 밝혔다.

    혁신안의 미흡함은 혁신위 구조 자체에서 비롯됐다. 앞서 혁신안 초안이 공개된 이후에도 당 안팎으론 ‘이도 저도 아닌 맹탕’이라는 혹평이 잇따랐다. 위원장 포함 18인의 혁신위원이 모두 동의하는 내용을 담기 위해 선명하지만 논쟁적인 내용들을 배제한 결과였다. 예컨대 지역정치와 사회운동과의 결합 강화 등 당 내에서 오랫동안 제기돼온 원내·외 활동 분배와 관련한 문제마저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김준우 위원은 “당이 비례정당을 넘어서기 위해, 원내에서밖에 보이지 않았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역구 현장에서 뿌리를 내리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그런데 (일부 혁신위원들 중엔) 사회운동정당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끼는 혁신위원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강령개정 권고안도 마찬가지였다. ‘탈자본주의’라는 이슈가 될 표현들이 혁신안의 ‘별지’에 담긴 이유도 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초안 공개 후 토론회에서도 애초에 18인의 혁신위원에게 하나의 혁신안을 마련하라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요구였다는 비판이 압도적이었다. 최종적으로 단일한 혁신안이 나오긴 했지만 그에 앞서 복수의 안을 내고 당 의결기구에서 표결에 부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그만큼 혁신안에 대한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 어려웠다는 뜻이다. 한 혁신위원은 혁신안의 최대 성과를 “단일안이 나온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혁신위 논의 막판에선 강령개정 권고안 내용 바탕으로 한 선언문을 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선언문 내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면서 이 또한 좌절됐다. 혁신위가 비당원인 국민을 향한 ‘뾰족한’ 혁신의 메시지를 내지 못했던 이유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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