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기되는 대통령의 공약
정부, 의료급여 부양의무자 기준 존치
"5년의 농성, 대통령의 약속, 3년의 기다림, 그 기다림의 결과는 공약파기"
    2020년 08월 12일 07:4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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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생계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의료급여에선 부양의무자 기준을 존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모든 급여의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정부 출범 이후 발표한 국정과제 이행도 모두 무산될 것으로 보인다. 장애·빈곤단체들은 “공약 파기”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을 요구하며 지난달 23일부터 농성을 진행한 기초생활보장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공동행동)은 12일 오후 광화문역 9번 출근 쪽 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공약을 파기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을 규탄한다”며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향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부양의무자 기준이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선정 기준에 부합해도 부양할 직계가족이 있으면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한 제도다. 생계와 주거를 달리하더라도 서류상 가족이 있거나, 가족이 부양할 여력이 되지 못해도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라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부양의무자 기준은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없애야 할 우선 과제로 꼽혀왔다.

10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결의대회 모습(사진=박경석 페이스북)

정부는 지난 10일 중앙생활보장위원회(중생보위)에서 ‘제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1~2023)을 의결했다.

생계급여는 2022년까지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 폐지하기로 했다. 다만 부양의무자가 연소득 1억원 또는 부동산 9억원 초과 재산을 가진 고소득·고재산가이면 제외된다.

의료급여에 대해선 ‘3차 종합계획 수립 시(2023년)까지 수급권자의 부양의무자 기준 개선방안 마련’하겠다고만 언급했다. 해당 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부는 저소득층 의료보장 문제는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의 급여 전환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동행동은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아플 때 병원이 아니라 가족에게 찾아가라고 말하고 있다. 건강보험을 비롯한 차상위 본인부담경감, 재난적 의료비 등의 의료보장제도는 대안이 될 수 없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을 생계급여에서만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의료급여에는 그대로 존치시키겠다는 결정은 균형 잡힌 식생활조차 할 수 없는 낮은 수준의 생계급여를 의료비로 지출하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생계와 주거를 달리하는 가족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조차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고, 가난한 이들의 가족들이 그들의 부양의무자가 되어 빈곤의 족쇄가 된다”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가족 중심의 복지제도를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강제하는 차별을 없애, 가난에 처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는 그간 수차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공언해왔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에 관한 질의서에 모든 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2017년 8월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광화문 농성장에 방문해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에 의료급여를 포함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전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중생보위 회의장 앞에선 “부양의무자 기준은 2년 내에 완전히 폐지하기로 약속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장관은 중생보위에서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의결한 후 브리핑에선 “대통령께서 부양의무자 조건을 철폐하겠다는 것은 생계급여에 초점이 있는 말씀이지 의료급여를 말씀하신 것은 아니다”라고 말을 달리 했다.

공동행동은 “광화문 지하역사에서 5년의 농성, 대통령의 약속, 3년의 기다림, 그 기다림의 결과는 공약파기였다”며 “정부는 공약파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부양의무자기준 완전폐지 공약을 이행할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로 광화문 농성을 마무리한다. 다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등은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폐지, 장애인거주시설 폐쇄 등의 요구를 안고 이날부터 다시 농성을 시작한다 .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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