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슴날과 머슴 생일날
        2006년 10월 09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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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추석은 4대 명절 가운데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명절이다. 그 외 한식이나 단오 설날은 중국에도 있으며 그 기원도 중국에서 찾는다. 우리나라에만 있든 없든 이 4대 명절의 특징이라면 농경 민족의 축제라는 점이다.

    음력으로 8월 15일인 추석은 양력인 24절기로 볼 때 추분과 한로 사이에 있다. 추분은 낮과 밤이 같고 밤이 낮보다 길어지는 절기이며 한로는 글자 그대로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하는 절기이다. 이 때가 되면 들녘의 5곡들이 한창 익어간다. 그 중 제일 잘 익은 햇곡식을 먼저 수확하여 차례 상을 차리고 조상님께 바쳤다.

    농사지으면서 왜 추석은 곡식이 다 익기도 전에 있는지 의문이었다. 서양의 추수제는 곡식을 다 거두고 난 양력 11월 하순 경에 가야 치러지는 것에 비교해 보면 잘 이해가 가질 않았다. 자료를 뒤져보면 신라가 발해를 이긴 전승일이라는 기원이 나오지만 그 오랜 옛날 기념일이 어김없이 내려온다는 것도 잘 납득이 가질 않았다. 

    다만 농경문화의 한 축제라는 점에서 추측해 보건대 조상님께 제일 먼저 바쳤다는 햇곡식이라는 게 사실은 다음 해 종자를 채종하는 의미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조상들은 종자를 귀히 여겨 머리 밑 베갯속에다 담아 보관했다. 먹을 게 없어 굶더라도 절대 종자는 먹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다. 종자를 먹어버리면 내년부터는 아예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년에 쓸 종자는 잘 된 곡식 중에서 햇곡식을 낫으로 베어 거꾸로 매달아 숙성을 시켰다. 그래야 아직 푸른 기가 남아있는 줄기와 잎에 남은 영양이 종자로 더 모아지고 튼실하게 영근다. 그런 햇곡식을 거두어 종자로 쓰면서 함께 조상께 바치고 내년에도 올해처럼 풍년을 기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7월 15일 백중절은 머슴생일날

    4대 명절에는 들지 않지만 5대 명절이라면 꼭 들어가야 하는 게 음력 7월 15일인 백중절이다. 백중절은 전형적인 농촌 축제로 논의 김매기를 다 끝내고 호미를 씻어 걸어둔다 해서 호미씻이라고도 하며, 머슴들이 이제부터 쉬는 날이라 해서 머슴생일날이라고도 했다.

    김매기는 더운 여름날인 복날에 했다. 초복, 중복, 말복은 초벌김매기, 두벌김매기, 세벌김매기 하는 날이었다. 복날에 논의 벼가 나이를 한살씩 먹는다 했다. 그러니까 초복 때 한살, 중복 때 두 살, 말복 때 세살을 먹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아주 정확하다.

    벼는 6월 하순 하지를 지나면서 생식생장으로 넘어간다.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 생식생장이 복날 급격히 진행되는 것인데, 벼 이삭이 포기 밑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린 이삭으로 형성되었다가 날이 더워지면 쑥쑥 자라 올라온다. 그리고 말복이 지나면 육안으로 보이게 이삭이 패는 것이다.

    이 때 꼭 김매기를 해야 하는데 벼와 같은 과인 피가 꼭 벼 옆에 붙어서 함께 자라기 때문이다. 이놈들을 일일이 손으로 잡아주어야 영양을 벼에 몰아줄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 힘으로 벼의 이삭이 속에서 힘차게 밀어붙여 올라올 수 있다. 그 마지막 김매기를 말복 때 하고 나면 곧 음력 7월 15일이 되어 휴일 축제를 벌이게 되는 것이다.

    복날엔 왜 개고기를 먹게 됐을까?

    그럼 복날이면 왜 개고기를 먹게 되었을까? 복날의 伏자가 꼭 개복자처럼 생겨서일까? 아니다 이 글자는 개복자가 아니라 숨을 복자다. 그럼 뭐가 무서워 숨는 걸까?

    복날은 음력도 아니고 양력도 아닌 60갑자력, 또는 간지력이다. 간지로 소서 이후 경(庚)자 들어가는 날이 복날인데 말복은 입추 이후에 오는 경자 들어가는 날이다. 그래서 초복 다음 중복은 열흘 후에 오는데 중복 다음 말복은 때론 열흘 후, 때로는 스무날 후에 오기도 한다.

    경자는 오행으로 금(金)에 해당하고 이는 계절로 가을이다. 말하자면 태양은 하지 지나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땅에 강하게 남은 여름 기운, 곧 화(火) 기운이 무서워 가을인 경(庚)이 숨는다는 뜻이다. 그만큼 날이 덥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왜 개를 잡아먹었을까?

    뜨거운 여름날 논에 들어가 허리 굽히고 김을 매느라 머슴들이 고생을 했는데 몸보신 시키려니 마땅한 고기가 없어 개를 잡아먹게 한 것이다.
    농경 사회에서 가축 중에 개가 제일 필요없는 동물이다. 소는 쟁기질을 하고 돼지는 거름을 만들고 닭은 달걀을 만드는데 개는 그저 시끄럽게 짖기만 한다. 먹는 것도 사람과 똑 같아 먹일 게 없어 사람 똥을 먹으면 똥개다. 유목 사회에선 사냥이나 가축 보호를 하는 데 꼭 개가 필요한 것과는 다르다.

    다음으로 백중에 가까워 오면 밭에 심어놓은 여름 작물들이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다. 요즘은 종자를 개량하여 일찍 열매가 열리지만 토종 작물들은 하지 지나 생식생장을 개시하여 복때가 되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먹을 게 풍성해지는 계절인 것이다. 논에서는 힘든 일이 끝나고 밭에서는 먹을 게 많이 나니 이래저래 축제를 벌이기에 참 좋은 시절인 셈이다.

    논농사의 시작 단오절

    백중절이 논농사의 끝이라면 단오절은 논농사의 시작이다. 음력 5월 5일인 단오절은 양력 절기로 6월 초인 망종 때이다. 망종(芒種)에서 망은 까끄라기 망자로 까끄라기가 있는 밀이나 보리를 수확하고 벼를 모내는 철이다.

    논농사의 본격적인 시작이 모내기이기 때문에 단오는 모내기를 시작하기 전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일년 농사를 다짐하고 두레를 조직해 공동농사를 계획하며 하루를 신나게 노는 모내기 축제날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날씨도 차츰 더워지는 초여름이고 곧 장마가 닥칠 농번기에 건강과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邪의 의미로 창포로 머리도 감고 익모초를 즙내어 먹어 몸을 보호하기도 했다.

    우리 명절 중에 단오와 백중이 가장 큰 마을 행사였다. 공동체 문화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축제였던 것이다. 이것이 식민 통치 시기 중일 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의해 전쟁 중에 한가롭게 놀아서는 안된다고 하여 없어졌는데, 아마도 저항의 기초가 될 공동체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설날이나 추석이나 한식 같이 조상께 차례나 성묘를 지내는 가족 행사정도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가장 큰 마을행사는 단오와 백중

    단오 때가 되면 산과 들에서 나던 산들나물들이 억세질 때다. 이제 나물을 해먹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데, 이때 백가지 풀들을 뜯어 물에 데쳐 나물을 무쳐 먹었다. 대표적인 단오 음식으로 쑥떡과 수리취로 해먹는 수리떡이 있다. 반면 산들나물은 끝물이지만 이른 봄에 심은 채소거리들이 이제 거둬 먹을 때가 되었다. 그러니까 단오는 계절 중에서도 여러 가지가 변화하는 꼭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명절 중에 단오가 가장 큰 행사였던 이유를 그런 점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단오 전에 있는 명절은 한식이다. 한식은 강남에서 제비가 돌아오는 음력 삼월 삼짇날과 비슷하다. 24 절기로 보면 3월 하순의 춘분을 지나 청명 근방에 있다. 춘분에서 낮이 밤보다 길어지면서 날씨도 영상으로 돌아오니 청명이 되면 바야흐로 본격적인 봄의 기운이 완연할 때다.

    춘분이 되면 무슨 종자든 파종할 수가 있지만 아직 땅 속에 추운 기운이 남아있어 안전하게 파종을 하려면 청명 때쯤이 좋다. 식목일을 4월 5일로 한 것도 날씨가 본격적으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춘분을 새해의 시작인 정월로 삼은 지역도 있었다. 밀과 보리 농사를 주식으로 지었던 메소포타미아가 대표적이다. 전년 가을에 심은 밀과 보리가 춘분이 되면 본격적으로 성장을 개시한다. 밀 보리 뿐 아니라 겨울을 난 생명들이 춘분을 기점으로 기지개를 켜며 힘을 낼 때다. 기독교의 부활절도 춘분을 기점으로 계산해서 잡았는데 아마 모든 생명이 소생하는 시절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땅의 생명들이 활개를 펴는 계절이니 이때를 정월로 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한식이 되면 조상 무덤을 찾아가 벌초도 하고 성묘도 한다. 마찬가지로 조상님 무덤에도 잡초들이 힘을 내기 시작하므로 잡초도 잡고 구멍난 곳은 새로 땟장을 입혀 깨끗하게 단장을 해둔다. 그리고 올해도 풍년되게끔 조상에게 기원하고 집에 와서는 본격적으로 파종할 채비를 서둔다.

    냉이의 뿌리를 통해 일어서는 입춘

    이제 마지막으로 우리의 정월인 설날이다. 설날은 24절기로 2월 초순인 입춘 근방에 있다. 보통은 입춘 전에 설날이 오는데 입춘 지나 설날이 오면 그해 봄이 춥다.

    입춘은 동지와 춘분 한 가운데 있다. 춘분을 정월로 삼기도 하지만 동지를 정월로 삼는 곳도 있는데 기독교 문화가 대표적이다. 크리스마스를 이때로 잡은 것도 예수의 탄생을 기원으로 삼은 것처럼 새해도 예수의 생일로 삼은 것이다. 동지를 지나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니 새해가 온 것으로 보기에 충분하다.

       
     

    겨울이 별로 춥지 않은 유럽과 달리 동지를 기점으로 추위가 몰아닥치는 우리는 동지를 정월로 삼기에 무리가 있다. 동지를 지나 소한 대한이라는 엄동설한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새해가 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소한 대한도 지났지만 입춘이 되었다고 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꽃샘추위가 몰아닥쳐 겨울 기운이 전혀 물러날 기세가 아니다. 그럼 봄(春)은 어디에서 일어서고(立) 있을까?

    입춘이 되면 봄은 냉이의 뿌리를 통해 일어선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먹을 수 있는 풀이 바로 냉이다. 그래서 곰이 겨울잠을 자고 일어나면 냉이를 캐 먹는다고 한다. 먹을 게 그것밖에 없으니 그럴밖에 없지만 사실 냉이는 고급 영양식이다. 비타민C는 물론이요 단백질도 풍부하다. 그 냉이가 입춘이라지만 아직 추위가 물러나지 않아 잎은 초라한데 살살 캐보면 뿌리는 아주 토실토실하다. 그걸 캐다가 된장찌개나 나물을 무쳐 먹으면 입안 가득 봄기운이 맴돈다.

    대보름 쥐볼놀이와 달집태우기는 논밭 다듬기

    이때 정월로 삼고 우리 조상들은 제일 먼저 한 일이 거름 만들기와 종자 손질이다. 대보름이면 본격적으로 이 작업을 한다. 대보름 행사로 쥐불놀이와 달집태우기는 일종의 살균살충 작업이기도 하면서 거름 작업의 일종이고 논 밭 다듬기의 일종이다. 대보름이면 대동강물도 풀린다는 우수 바로 밑이다. 바야흐로 봄이 피부로 느껴지는 비가 오는 철이다.

    그리고 음력으로 2월 1일, 곧 24절기로 경칩이 다가오는 날을 머슴날이라 해서 머슴들이 농사일로 바빠지기 시작하는 날이라 했다. 춘분과 청명 때 파종을 하려면 거름도 준비하고 종자도 손질하고 논과 밭도 정돈을 해야 하니 마음이 먼저 바빠지는 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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