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국을 배신한 터키 청년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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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09일 12:2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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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라크 북부의 칸딜산은 쿠르드 게릴라의 근거지로 유명하다. 이곳에는 5천 명에서 1만 명 사이의 게릴라들이 쿠르드 민족의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주로 터키군과 전쟁을 벌여왔다.

    이들은 20년 이상을 터키군에 맞서 게릴라 투쟁을 벌여오면서 양적인 확대를 거듭해왔다. 물론 대부분이 터키와 이란, 시리아의 쿠르드 지역에서 젊은이들이 자원입대 해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이나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쿠르드 출신의 젊은이들까지 자원입대 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자원해오는 모두가 쿠르드 출신만은 아니다.

    지난 2003년 8월,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 만났던 쿠르드 게릴라들 중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 있다. 그만큼 받은 충격이 컸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는 쿠르드인이 아니라 터키 출신이었다. 나이도 나와 엇비슷한 동년배였고 안경까지도 비슷한 두터운 검은 뿔태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

       
     ▲ 칸딜산의 쿠르드 게릴라

    물론 나보다 책을 더 많이 봤는지 안경도수는 훨씬 높았다. 전선으로 떠나기 전 그와 한 시간 가량 대화를 나눈 게 전부였다. 어쨌든 한 시간 동안 그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세월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있다.

    기억을 추스르면, 터키 출신으로 이스탄불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던 학생이었고 재학 중 산으로 올라와서 게릴라가 됐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그리고 20년 만에 처음으로 나와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는 말도 떠오른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나는 그의 순수한 혁명적 열정에 무한한 감동을 받았고 그의 앞에서 한없이 줄어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터키인이었지만 자신의 조국 터키가 쿠르드 민족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데 맞서 총을 들고 20년 동안을 항거했다. 20대와 30대의 젊음을 고스란히 바쳤고 지금도 투쟁하고 있다.

    터키정부에서는 아마 그를 ‘민족반역자’로 낙인 찍었을 것이고 대다수의 터키인들도 정부와 마찬가지로 그를 배신자로 단죄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민족을 위해, 민족의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총을 드는 것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자신의 민족이 착취하고 억압하는 민족의 편에 서서 총을 든다는 것은 더욱 힘들 것이다. 자신의 민족에게 완전히 버림받아가면서까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투쟁하는 무명의 게릴라가 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의 삶은 진정한 국제주의자의 모범이랄 수 있다.

    터키 출신의 게릴라처럼 일제강점 기간 동안에 일본인 사회주의자들도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운동을 지원하다 체포돼 복역한 사례가 많았다. 이들 역시 일제 정부에 의해 민족반역자로 낙인 찍혀 투옥됐거나 처형당했다.

    물론 이와는 조금 다른 사례지만 아리랑의 주인공 김산의 활동을 들 수 있다. 그의 활동은 당연히 국제주의자의 활동이다. 김산은 우리나라 출신으로 일제시대 때 중국을 건너간 뒤, 그곳에서 중국 민중들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면서 명성을 날렸던 혁명가였다.

    현대사에서 또 다른 혁명가를 든다면 체 게바라를 들 수 있다. 체 게바라는 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국제주의적인 혁명가의 전형으로 들 수 있다. 그에게는 남미 전체가 혁명운동의 무대였다. 그의 이력만 보더라도 국제주의적임을 알 수 있다.

    아르헨티나에서 출생하여 쿠바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나중에는 볼리비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체 게바라가 지금도 신화적 인물로 존경받는 이유는 혁명운동을 하다 죽음을 당한 때문일 것이다. 혁명이 성공한 쿠바에서 권력을 차지하여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버렸고, 끝내는 볼리비아에서 생을 마감했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운동가들도 국제적 차원의 운동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과 레바논 침공에 맞서 이스라엘 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이와 더불어 평화활동가들의 쿠르드 지원활동이나 레바논에 대한 구호활동도 국제주의적 민중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과거와는 달리 우리의 운동도 압박받는 다른 세계의 민중의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국제적인 차원으로 확대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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