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음 세대 평화 위해 이주노동자를 이웃으로"
    By tathata
        2006년 10월 08일 10: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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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괭이부리말 아이들 이후 근황은?

    =별로 달라진 게 없습니다. 지금 공부방 후배들 세 가족과 강화에 살면서 마을 아이들과 작은 공부방을 하고 있고, 농사도 짓습니다. 물론 농사는 남편과 후배가 주로 짓고요. 오전 중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습니다.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만석동에 있는 공부방을 오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고요.

    -I 시 M동과 동두천은 아주 흡사한 모습으로 비춰져 ‘나’의 혼을 빼앗았다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빼앗긴 자들의 남루한 삶의 모습이겠지만… 이 두 마을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듯 여겨집니다. 1970년대의 동두천과 현재의 M동에서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제가 I시의 M동의 골목을 처음 갔을 때 단박에 그 골목에 빠져 들었던 것은 미로 같은 골목과 비릿한 갯냄새, 비좁은 골목에 가득한 아이들과 그 좁은 골목에 앉아 부지런히 굴을 까는 여자들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찻길 때문이었죠. 기찻길을 사이에 두고 이어진 판잣집들.. 막연히 그 골목의 풍경들이 낯익고 푸근하다고 느꼈지요.

    그 뒤 십 여 년이 지나 동두천에 가서 다시 골목을 다니며 M동의 골목과 동두천의 골목이 닮았다는 것을 느낀 거지요. 그러나 그 것은 그 골목이 가난하고 빼앗긴 자들의 남루한 삶을 상징하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어서 사라지고 철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빈민지역이, 사실은 가난한 이들이 숨쉬고, 일하고, 먹고, 자고, 사랑하는 삶의 자리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개발론자들과 많이 가진 자들은 미처 알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질기고 질긴, 그러나 따뜻한 삶의 모습이 살아 있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의 동두천과 2006년의 M동의 공통점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2006년의 동두천과 2006년의 M동이 오히려 닮았지요. 점점 비좁아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자리, 상실감, 버릴 수 없는 희망.

    -재민, 윤희언니, 경숙이, 해자는 동두천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동두천에 살면서 혼혈아를 낳고 양공주로 일하면서 힘겨운 생활을 거듭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정아는 네팔 이주노동자 자히드와 결혼해 살아갑니다. 동두천과 이주노동자. 30여년 시간의 간극을 두고 일어나는 이 두 ‘사건’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동두천의 사람들, 지금 2000년대의 이주민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부조리하고 모순덩어리인 이 사회를 지탱하는 뿌리입니다. 30년 전의 동두천 사람들이나 지금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 이주민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를 받쳐주는 뿌리입니다.

    저는 어느 시대건 민중들의 삶이 고달프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고달픈 삶을 견디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기쁨에 전부를 걸고 사는 것이지요. 또한 그들은 사회의 희생자들이고 핍박 받기만한 민중이지만 자신들의 방법을, 삶을 살아가고 거친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힘껏 자신의 현실과 맞선 사람들입니다.

    다만 정아는 자신의 상처를 숨기려들지 않고 그 상처 위에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용기를 가진 인물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리는 적극적인 인물을 통해 70년대와 오늘의 차이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정원이가 정아의 결혼을 축하하는 것은 버려지고 잊혀졌던 동두천과의 화해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 ‘나’가 정아의 결혼을 축하하는 것은 동두천과 화해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두천이 ‘나’의 적이었던 적은 없으니까요. 다만 숨기고 싶은, 모르는 척하고 싶은 나의 또다른 모습이었을 뿐이지요. 그러나 그 것이 진정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정아와 자히드의 결혼은 동두천이 단지 과거의 추억거리가 아니듯이, 이주민이란 존재 역시 우리의 그림자가 아니라 함께 가야 할 이웃이고, ‘나’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경숙과 해자의 가족은 우리 현대사의 그늘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안고 돌아와 동두천에 정착하는 그들은 또다른 핍박을 받습니다. 그들은 이 땅에 살면서도 ‘뿌리’ 내리지 못합니다. 소설의 제목 ‘거대한 뿌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무의 뿌리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나무를 땅에 단단히 뿌리박게 하는 심지와 나무의 영양분을 제공하는 수많은 실뿌리들이지요. 그 실뿌리들은 스스로 영양분을 찾아 흙을 더듬어 영양분을 빨아들입니다.

    그 가느다랗고 여린 뿌리들이 실제로 나무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땅의 민중들이 바로 그런 존재들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의 삶이 이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요. 이 사회는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살아남았습니다. 때로는 같은 형제자매들의 죽음 위에, 상처를 딛고 서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저는 재민이도, 윤희언니도, 경숙이도, 해자도 그렇게 이 땅의 거대한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민중들의 모습을 낭만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내가 사는 강화도의 농촌 마을의 농민들도, 여전히 공부방이 있고 저의 삶의 자리인 M동의 주민들과 아이들도 마냥 순수하고 선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숨겨진 탐욕이 드러나고, 거짓과 비겁한 모습이 보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합니다.

    앞으로 세상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더 핍박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삶을 포기할 리는 없습니다. 그들은 밟히면 밟히는 대로 다시 뿌리를 뻗고 싹을 내밀 곳을 찾아낼 테니까요.

    올 여름 이라크에서 온 공부방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분은 이라크의 상황을 이야기하며 평화에 대한 간절한 염원과 절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공부방 아이들에게 이라크 아이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평화를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러던 그가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습니다. 얼마 전 일곱 번째 아이가 태어났다고요. 그는 앞으로 다섯 명쯤 아이를 더 낳겠다고 말했습니다. 또 하나 이번 추석에 방글라데시 친구랑 이야기를 했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경찰이었다던 그는 부패한 경찰로 돈을 받으며 살고 싶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고 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이승에서 지은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떳떳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우리 아이들과 더불어 그들이 거대한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주노동자는 우리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 사회의 외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튀기’를 바라보듯 이주노동자의 아이들 또한 소외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진보진영 또한 이주노동자의 문제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대하고 있고요. 이들을 포용하고 조화롭게 살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런지요?

    =저는 빈민지역에 살 때나 지금 농촌에서 살면서나 운동과 멀리 있습니다. 더욱이 이주노동자 운동의 전문가도 아니구요. 그래서 거창하게 이 사회의 과제에 대해 말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사회가 더는 이주민들을 외부인으로 터부시하며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노동 현장이 값싼 노동력인 이주노동자들을 받아들이면서 부작용이 많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이미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된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더 큰 혼란과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욱이 우리 아이들이 자랄 다음 세대에게 평화를 물려주려면 이주민들을 우리의 이웃으로 인정하고 함께 가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한 아이들에게는 지속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가는 법을 배우게 해주어야합니다.

    저희 식구는 이번 추석 때 라마단을 지키는 방글라데시 친구를 초대해 서로 문화를 배우고 배려하는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진보적인 이들이 그런 운동을 펼쳐간다면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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