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그리고 2007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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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09일 12: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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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앞으로 돌아와서 보면 삼국지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뭐니뭐니해도 적벽대전이다. 오나라가 수전에 능하다고는 하나, 조조가 일으킨 거대한 군사의 승리는 예상되는 것이었고, 조조가 승리할 경우에는 유비에게는 아무런 기회도 없게 된다.

제갈공명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된 적벽대전은 천하삼분지계의 결정판이었다. 제갈공명은 세치 혀로 초기부터 오나라를 뒤흔든다. 싸움에 임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분기시키기 위해 주유와 손권의 여자까지 들먹인다. 사실 유비와 제갈공명은 자신은 별다른 희생을 하지 않으면서 오나라를 위해 조조의 군사를 막아낸 것과 다름이 없었다.

천하삼분지계의 결정판

   
 

적벽대전의 결과 조조는 당분간 움츠려 들 수밖에 없었고, 승리하였다고는 하나 오나라 또한 그 피해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힘의 공백은 유비로서는 촉나라의 기반을 다지는데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이것은 단순히 제갈공명의 개인의 기이한 능력만은 아니었다. 공명은 첫째, 위와 오나라 주요 인사들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의 심리를 알았기 때문에 적벽대전에서와 같은 계략의 총 집결판이 가능했던 것이다.

둘째, 자신의 명성과 인맥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알았다. 자신의 출사로 이미 알만한 사람들은 ‘와룡공명’과 ‘봉추방통’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고, 특히 방통의 경우 신비한 인물로 포장되어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를 이용하여 조조를 속아 넘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바람을 바꾸는 등의 특이한 능력 – 아마도 바람을 바꾸는 능력이었을 수도 있고, 기후의 변화를 잘 아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을 전쟁에 적절하게 결합시켰던 것이었다.

공명이 보여준 바는 소수세력이 불의한 다수세력에 맞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보여주었다는 데에서 그 정치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기반을 말살할 수도 있는 다수파를 견제하였고, 자신의 최소한의 희생만 하였으며, 이를 통해 자신의 기반을 마련하여 드디어 천하삼분지계가 만개하도록 한 것이었다.

반한나라당과 상설연대체라는 ‘발목’

이 과정에서 공명은 자신의 능력과 정보를 총동원하여 활용하였던 것이다. 사실 제갈공명은 적벽대전을 통하여 다시 태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에도 눈부신 활약을 했지만, 적벽대전을 통해 당대의 전략가로 세상 사람들에게 확고한 이미지를 준 것이었다.

현재의 상황을 본다면, 아마도 소수세력에게는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대선이라는 대회전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다수파는 수습 불가능할 정도로 혼란한 상태고, 그에 대항하는 세력은 아니나 다를까 뼛속 깊은 전근대성과 퇴행성을 계속 노출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소수세력이 얼마나 이용하는가는 공명이 보여준 바와 같이 자신의 장점과 능력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가와 자신의 지지기반을 대선 이후에 얼마나 확대, 강화할 수 있는가일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민중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하는 정당은 ‘반한나라당 전선’이니 ‘상설연대체’니 하는 과거의 유산에 발목을 잡혀 있다.

공명이 오에 협력한 것은 오가 좋아서가 아니라 결국 촉을 창건해서 천하삼분지계를 완성하기 위함이었고, 그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한 계략이 사실 주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반한나라당 전선의 오류는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목적이 천하삼분지계가 아니라는 것이고, 민주노동당의 성장과 발전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그 주창자들의 의도와 결과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있는 대표적인 정치적 수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반한나라당 전선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소명을 주창할 뿐, 그것이 대선이후 민주노동당의 성장과 발전에 어떠한 기여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런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즉, ‘반한나라당 전선’의 목적은 민주노동당의 발전과는 사실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북한에게 민주노동당은 ‘계륵’

그렇다고 ‘민주적 사회주의’가 ‘반한나라당 전선’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선거라는 국면에서 아무리 사기성이 농후한 주장이라고 하더라고 추상적인 주장이 구체적인 슬로건을 절대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대중들의 입장에서 전자는 전혀 예견되지 않는 도박적인 주장이고, 좋든 싫든 간에 후자는 그나마 구체적인 것이 예견되기 때문이다.

북한의 간절함 또한 좋지 않은 조건이다. 북한정부 입장에서는 한나라당의 집권을 반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진짜로 반대하는 것인지는 따져봐야 하지만 말이다.) 그것이 간절하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의 존재는 그야말로 ‘계륵’일 뿐이다.

조선사민당 간부들이 민주노동당 간부들의 방북을 처음에 바라지도 않았고, 그 방북이 관광코스처럼 되어 버린 것은 이러한 북한의 시각이 잘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국민당을 지지하던 스탈린의 소련공산당이 중국공산당의 성장을 바라지 않아 사사건건 훼방을 놓은 것처럼 북한의 조선노동당도 사실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의 바램과는 달리 민주노동당의 성장은 남북관계 경색의 주요한 원인이 될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에 대해서 도덕적 정당성까지 주장할 수 없는 북한이 된다면, 자신들의 입장에서 그것보다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사방이 적인 것이 정치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조직에서는 이러한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자신의 실리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반한나라당 전선, 민주적 사회주의, 북한의 민주노동당에 대한 시각 – 이 모든 것은 민주노동당의 실리가 아닐 것이다. 대선이라는 대회전을 앞두고 우리의 실리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따져 이를 관철시킬 수 있는 공명의 지혜가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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