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사정 사회적 합의 사태와 귀족노조론
    촛불시기에 일시 약해졌던 ‘신자유주의 동맹’의 부활
        2020년 08월 06일 11:0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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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공공운수노조 정치위원회가 발행하는 “노동조합, 정치가 반(半)이다”라는 정치신문 8호에 실린 글이다. 필자와 노조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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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사회적 합의 사태가 일단 끝났다. 지난 3월 이후 거의 반년이나 지속한 사태는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의 반대 결정과 지도부 사퇴로 막을 내렸다. 민주노조운동은 내적으로 심각하게 갈등했고 분열했으며 38 대 62라는 숫자의 균열선은 커다란 상처로 각인되었다. 지금도 계속되는 민주노총에 대한 엄청난 사회적 비난, 여론몰이와 함께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합의로 다시 추진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사회적 대화 외엔 답이 없다?

    과연 사태가 끝났는가? 현직 민주노총 위원장이 수구 언론에 나와 스스로 민주노총을 비방하는 일은 1987년 이후 초유의 사태였다. 요지는 현재 민주노총이 미조직 노동대중, 특히 비정규노동자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으므로 심각한 오류에 빠졌다는 비난 또는 진단이었다.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고용 위기에서 사회적 대화 외에는 답이 없다는 지도부 입장은 사퇴하면서도 되풀이되었다. 또 이에 반대하는 조직노동은 모두 강경파 혹은 정파로 자신의 협소한 이익에 매달리는 이기적 집단으로 규정되었다.

    필자는 사태가 끝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며 비상대책위가 꾸려진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일은 이번 사태의 본질적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진단이다. 일단 필자는 이번 사태의 원인에는 민주노조운동 내부에 깊숙이 침투한 국가와 자본 권력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개별 노조에서 벌어지는 국가와 자본의 지배개입을 우리는 어용노조 문제로 인식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문제가 민주노조운동 전체에, 그리고 총연합단체 민주노총에서 집권 세력에 의해 발생했다. 이른바 민주노조의 자주성 문제이자 민주노총의 어용화 문제이다.

    귀족노조 담론 유포하는 정치권과 언론 보도 자료사진

    자본과 국가의 민주노조 지배개입 전략

    지난 20년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를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을 겪어왔다. 여러 집행부가 퇴진하지 않을 수 없었고 조직 내부 갈등의 골이 깊어져 노조 활동은 큰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장기적으로 또 주기적으로 벌어진 구조적 내부 균열이었다. 민주노총이 되풀이해 거부해도 끊임없이 참가 논란은 되살아났다. 과거 사회적 대화 논란의 본질도 민주노조의 자주성 문제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대화를 추진했던 지도부 중 상당수는 보수정당에 입당하여 변절했고 지금도 자본의 이해를 앞장서서 대변하고 있다. 사회적 대화는 온갖 미사여구와 수사에도 불구하고 불법 국가폭력이나 좌경용공 이데올로기가 더는 유효하지 않은 민주화 이후 시기의 노동배제 통제전략에 불과하였다. 요컨대 사회적 대화로 인한 갈등과 내부 균열의 진정한 원인은 자본과 국가가 주도하는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지배 개입전략이다.

    귀족노조라는 낙인

    김명환 집행부의 난행이 특별히 심각한 이유는 전태일 이래 민주노조의 이념적 지주인 자주성을 스스로 공개적이고 대중적으로, 특히 자본과 손잡고 부정한 점이었다. 자본과 수구 세력, 집권 정치집단과 정부, 대부분의 시민사회 세력 그리고 조중동 경제신문 종편은 물론 이른바 ‘자유주의 개혁언론’ 모두가 연합하여 민주노총을 비방하였다. 놀라운 일은 직선으로 뽑힌 지도부가 내부에서 이에 호응해 비난을 주도적으로 유도 증폭했다는 사실이다. 자본과 국가권력에 맞서 싸우겠다고 약속한 집행부가 거꾸로 그들과 손잡고 자기 조직, 조합원 대중을 공격하는 꼴이었다. 당연히 지배 세력의 이데올로기 공세와 노동 통제의 효력은 배가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은 깊이 균열했고 반대 의견을 제출한 62% 조합원 대중들은 속수무책 강경파, 이기주의 집단, 정파로 지탄받지 않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민주노총이 ‘귀족’, ‘귀족노조’라는 사회적 낙인이었다.

    반(反) 귀족노조 연대의 형성

    ‘귀족노조론’의 명칭을 만든 것은 2003년의 노무현이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확산한 것은 이명박 박근혜정부였다. 2017년 대선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는 ‘강성 귀족노조론’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았으나 큰 위력을 발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촛불정부를 표방하며 ‘노동존중’을 약속했던 문정부가 2018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탄력근무제 추진, ILO기본협약 비준과 전교조 합법화문제 등에서 노동전략을 180도 전환하면서 상황은 급변하였다. ‘노동존중’ 폐기, 재벌 주도 성장전략으로 회귀하는 데 큰 걸림돌인 민주노총을 통제하는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안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수구 정치 세력과 집권 여당, 그리고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이 하나로 뭉친 반(反)‘귀족노조’ 연대가 형성되었다. 촛불 시기에 일시 약해졌던 ‘신자유주의 대동맹’(neoliberal grand coalition)이 더 크게 살아난 양상이었다. 180석 거대 자본 정당의 공고한 지배는 ‘귀족노조론’이 과거 문제이거나 사소한 오해가 아니라 미래의 중차대한 극복과제임을 말하고 있다. 이들의 ‘귀족노조’ 칼은 수구가 아니라 민주노조와 진보정당을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적 우호적 노동연구자들의 문제

    마지막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일과 과제가 있다. 귀족노조론을 생산한 것은 국가와 자본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적어도 스스로 개혁적이고 민주노조에 우호적이라고 주장했던 연구자들 문제이다. 국가 노동연구기관, 특히 사회적 합의 기구에 종사하던 이들 ‘개혁적 노동연구자들’은 이제 스스로 권력이 되어 민주노조에 대한 그들의 지식과 관련된 연줄망을 귀족노조론을 생산하고 유포하는 데 사용하였다. 또 ‘분절노동시장론’을 주장하는 많은 연구자가 아무런 정치 사회학적 논리나 증거도 없이 분절의 책임을 민주노조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귀족노조론을 생산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이런 현실은 ‘민주노조가 과연 귀족노조인가’라는 학술적 정치적 논쟁과 이데올로기 비판이 우리에게 긴요함을 보여준다. 또 “‘모든 사회적 대화’는 선이다”는 이해할 수 없고 무책임한 주장에 대해서도 다시 답할 필요가 있다.

    필자소개
    한신대 교수, 노동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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