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월급만 올리는 노동운동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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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0월 02일 11: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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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 수 년 전까지만 해도 산업노조는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한국노총 민주화 노선에서 비밀지하노조 노선까지, 산업노조론은 기업노조론․지역노조론․일반노조론․직종노조론 같은 온갖 조직론과 병합하는 하나의 주장으로 취급되었다. 지금은 슬그머니 이 쪽 줄로 옮겨와 입 다물고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가 “거봐라 한국에서 산업노조는 안 된다”고 다시 떠들어댈 날이 멀지 않다.

    기업노조가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지배적 노선으로 확립된 것은, 조속한 산업노조화를 주장한 전국노련과 기업노조(지구협) 우선 강화를 주장한 전국노운협의 논쟁에서 전노협이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부터다. 운동권 분파들의 노조 나눠먹기, “나라 사랑, 직장 사랑” 류의 민족주의․협조주의 침투도 기업노조 노선의 득세에 기여했다.

       
    ▲ 현대자동차 식당아줌마의 정리해고 투쟁기를 다큐로 다룬 영화 "밥.꽃.양"

    기업노조가 강요된 것이라는 주장은 절반쯤은 거짓이다. 노조 간부들은 산업노조의 장애 요인이 법(14%)이 아니라, 기업노조의 무관심과 반대(36%)라고 자인한다. 바람직한 조직 형태가 산업노조(52%)라고 생각하면서도, 바람직한 교섭 형태로는 기업별 교섭(38%)을 가장 많이 꼽는 현상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다(이상, 이주희 「산별 조직화와 단체교섭 구조의 변화」2003).

    노조의 교섭요구안과 단체협약을 조합원 경제 의제․조합원 비경제 의제․비조합원 의제로 나누어 봤을 때, 1987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5년 가량은 비경제․비조합원 의제가 증가하다가, 그 이후 15년 가량은 축소되는 추세다. 특히 최근에는 정규직의 고용 보장은 강화되고, 비정규직 및 여성노동자 등 취약 노동계층의 차별 시정은 약화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2003년을 기준으로 비정규직을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노조 비율은 0.2%, 사내 비정규직의 의견 청취 규정이 있는 노조 역시 0.2%에 지나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경제 의제에 집중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요구안에는 들어 있는 사회적 의제나 비정규직 의제 같은 것이 교섭과 쟁의 과정에서 상습적으로 행방불명되고, 결국 조합원의 임금만 살아 남는 뿌리 깊은 관행이다. 민주노조운동의 단체협상에서 취약 노동계층의 근로조건이, 자기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교환수단으로 쓰여진 셈이다. 그렇다면 노조 간부들이 기업별 교섭을 선호하는 이유가 지불 능력 있는 대기업 조합원의 배타적 욕구 확대에 영합하기 위해서라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

    노조의 힘이 약했을 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후퇴가 20여 년에 걸쳐 수천 수만 번 반복되는 것은 불가항력도 아니고 실수도 아니다. 처음에 기업노조의 경제주의는 강요된 조건이었다. 하지만 곧 조건에의 안주로, 안주에서 조건의 향유로 변질돼 갔다.

    식당 아줌마들을 저버린 현대자동차 노조가 특별히 나쁜 것은 아니다. 조합원의 단기 경제이익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시키는 선택은 민주노조운동의 고유한 특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경향을 비판하지 않을 뿐더러, 계급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자본과의 투쟁 양상만으로 노조운동을 평가하며 경제투쟁 매몰을 고무해온 활동가․노동단체․노동학자․정파들은 노동계급 분열의 방조범이다.

    계급의 단결과 다른 계급에 대한 영향력은 이익 조화로부터 비롯되는 것인데,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중소기업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이익 조화를 실질적으로 거부했다. 수직적 분업구조와 불공정거래 상황에서 대부분이 대기업인 기업노조의 경제투쟁은 기업 간 그리고 노동계급 내부의 이윤 이동 제도로 고착되었다.

    1980년대에 브라질, 남아공 노동운동과 함께 성장하기 시작한 한국의 민주노조운동은 미국의 그것을, 조직형태․운동양식․정치방침까지 그대로 답습했다. 그리고 미국에서 그러하였던 것처럼 계급이 분열하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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