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의 정치적 힘은 어디서 나오나?
        2006년 09월 30일 04:1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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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력이 나쁜 사람들이 안경을 쓰면 갑자기 세상이 뚜렷하게 보이는 것처럼 김대중 전 대통령을 뵈면 그런 느낌이 든다". 지난 19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의 김 전 대통령 면담 후 김한길 원내대표가 밝힌 소감이다. 그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나라의 갈 길에 대해서 숙고하신 내용을 가끔씩 국민들께, 또 우리에게 이야기 해주시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이 문제(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관한 한 북의 태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 북이 수긍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주셔야 할 것 같다. 누가 할 수 있겠는가." 이는 민주노동당 문성현 대표가 지난 28일 김 전 대통령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그는 대북 문제에 있어 김 전 대통령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이 같이 말했다.

       
      ▲ 김대중 전대통령 (사진=연합뉴스)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은 모두 다섯이다. 이 가운데 권좌에서 물러난 후 ‘정치적-정책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김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최규하 전 대통령은 그의 짧은 재임기에 그랬듯 존재감이 없고,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군인 출신 대통령의 퇴임 이후는 5월 학살과 5.6공 비리를 단죄하는 길고 지루한 후일담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DJ와 현 정권에 대한 맥락없는 독설을 지치지도 않고 쏟아냈지만 정치적 발언의 횟수와 강도가 정치적 영향력의 크기와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만을 증명했을 뿐이다.

    김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세 가지의 원천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호남의 지역정서다. 김 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영향력의 물리적 기반이다. 호남민심은 아직도 ‘포스트 DJ’를 찾지 못하고 있다.

    호남 맹주를 자처하는 민주당은 DJ의 희미하고 불확실한 잔영일 뿐이다. 호남을 집토끼로 간주하는 열린우리당은 노무현 대통령과 동색이다. 노 대통령은 "호남사람들이 내가 예뻐서 찍어줬겠느냐"고 말한 사람이다. 지난 대선의 호남표심을 지역주의에 입각한 전략적 사고의 소산으로 규정한 사람이다.

    갈 곳을 못찾는 호남민심은 여전히 DJ를 정치적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서진정책을 추진하는 한나라당이 DJ와의 화해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DJ의 적자 경쟁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음은 한반도 평화문제에 관한 김 전 대통령의 안목과 경륜이다. 김 전 대통령이 갖고 있는 영향력의 정책적 바탕이다. 김 전 대통령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통일문제 전문가다.

    임종석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난 5월 이수훈 동북아시대위원장을 향해 "이 위원장은 통일문제에 관한 한 김 전 대통령의 발끝에도 못미치는 인물"이라고 비판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 "정부로서는 별로 기대하는 바가 없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었다.

    최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의 인터뷰나 부산대 강연에 대한 국내외의 반응에서도 확인되듯 김 전 대통령의 발언은 여전히, 아니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더욱 더 커다란 파급력을 갖는다. 이는 현 정부의 무기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정체되고 북핵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역할에 대한 상대적 기대담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끝으로 김 전 대통령의 고도로 절제된 언행도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요인이 된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정치 현안에 대한 언급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정치적 이해관계의 그물망을 빠져나왔다. 대신 이따금 나오는 그의 발언에는 원로의 무게가 온전히 실렸다. 최근의 미 네오콘 비판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현실 정치를 떠난 김 전 대통령은 여전히 현실 정치에서 무시 못할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한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의 행보를 이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노령의 김 전 대통령에게 중요한 건 현재의 정치적 지분 행사보다 미래의 평가라는 지적이 보다 설득력있게 들린다. 김 전 대통령의 최근 행보도 자신의 최대 업적인 남북화해정책에 대한 위기감의 발로가 아닌가 싶다. "DJ가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순간 DJ의 정치적 영향력은 소멸된다"는 정치공학적 셈법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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