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동당 총체적 난국"
        2006년 09월 30일 03: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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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의 모습은 총체적 난국이라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민주노동당의 한 평당원이 당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영남노동운동연구소(소장 임영일)가 발행하는 <연대와실천> 10월호에 ‘무기력한 민주노동당, 어찌하오리까’라는 글을 기고한 이장규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마산위원회 당원은 “민주노동당 당원으로서 최근 민주노동당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마디로 답답함을 금할 수 없다”며 “5.31 지방선거의 패배 이후 민주노동당은 전혀 당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당원은 “어차피 선거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것이거니와, 선거만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 선거에서 패배한 것 그 자체가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며 “문제는 선거가 끝난 이후 지금까지 당이 보여준 모습”이라고 주장했다.

    포항건설노조 투쟁이나 한미FTA 저지투쟁, 판교의 고분양가 논란 등 각종 부동산문제나 사교육문제 같은 사회경제적 사안 등 당외의 각종 중요한 현안들에 대한 당의 대응은 “한마디로 ‘면피’ 수준에 지나지 않는 무기력함의 연속”이었고 당내에서는 “온갖 잡음들은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무산으로 끝난 노동부문 최고위원 선거과정에서의 온갖 잡음들, 당사이전과 관련된 이런저런 내부적 혼란들, 열린우리당의 외곽조직에 적극 참여한 이를 당기위원장으로 선출했다가 당원들의 거센 비판에 부랴부랴 사퇴시킨 황당한 사태에 이르기까지 온갖 사건과 사고들이 끊이지 않았다”며 “외부적으로는 무기력하면서 내부에서는 사고만 치고 다니는 철부지나 다름없다고 말하면 지나친 표현일까”라고 물었다.

    이 당원은 이런 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온전히 현재의 당 지도부로 돌리거나 단순히 사람의 문제 또는 특정 노선의 문제로 보는 시각을 경계했다. 현재의 당 지도부만 문제가 되고 국회의원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현재의 무기력함은 정파를 막론하고 당내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핵심은 당적 구심력의 부재”

    이 당원은 “핵심적인 문제는 당적 구심력의 부재”라고 주장했다. 당 외부적으로나 내부적으로나 구심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당 외부적으로는 무엇보다도 열린우리당으로 대표되는 개혁세력과의 확실한 구별정립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자신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상태에서는 부동층에 대한 구심력이 작동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노선 내지 반수구연대라는 미명 하에 현재의 어정쩡한 상태를 그대로 인정한 채 오히려 당이 중간지대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일부 ‘운동권’의 관념일 뿐 자신이 주관적으로 중간지대로 옮겨간다고 대중들이 그걸 인정해 주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현 정권의 온갖 실정에 실망한 서민대중들에게 민주노동당도 그들과 비슷한 세력이라는 기존의 인식만 강화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당원은 “진보와 사이비 개혁의 경계를 흐림으로써 사이비 개혁세력의 잘못까지 함께 덤터기를 쓰게 만드는 일임은 이미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오히려 “현 정권으로 대표되는 사이비 개혁세력과의 철저한 대립을 통해 그들과 우리가 전혀 다르다는 것을 대중적으로 각인시켜야만 광범위한 서민대중들에게 진정으로 당적 구심력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당원의 주장이다.

    그는 최근의 당기위원장 사태도 이런 측면에서 파악해야 한다며 “87년 이래의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완전히 청산하지 않는다면, 당 외부에 대한 구심력이 아니라 진보와 사이비 개혁 사이에서 동요하는 원심력이 더욱 확대될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따로 노는 단위들, 전당적 사업이 없다"

    이 당원은 더 나아가 외부적 구심력 즉 정체성이 불분명한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내부적인 구심력의 부재라고 강조했다.

    즉 “당의 각 단위들이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연관성 하에서 움직이고 있지 못하고 원내와 원외, 중앙과 지역, 정책단위와 조직단위, A정파와 B정파 등 당 내의 거의 모든 단위들이 따로따로 놀면서 각자 알아서 고된 각개전투를 하고 있을 뿐 전체적인 기획에 의거한 전당적인 사업이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 당원은 포항건설노조의 투쟁에 대한 당의 대응을 예로 들었다. 그는 “당이 해야 할 일은 단순히 현재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광범위한 서민대중들의 삶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지 이야기하고 그들의 투쟁이 일반 시민들에게도 이익이 됨을 설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현재의 투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방어하는 것과 함께, 지금의 상황을 개선시킬 정치적·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며 이런 요구들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다시 정치적·조직적으로 접근하는 제반 과정” 즉 현장투쟁과 계급정치의 결합과정을 아우르는 것이 단순히 집회에 결합하는 차원을 넘어서 당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당적 기획 하에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포항건설노조 투쟁의 경우 다단계 하도급과 공사비 부풀리기로 대표되는 건설업종의 문제는 지자체의 각종 건설공사비를 과다지출하게 함으로써 시민들의 혈세를 낭비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한 점을 포착해 단순히 건설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세금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릴 필요가 있었는데 “그들의 투쟁을 이데올로기적으로 방어하는 것이 당의 역할임에도 정책이나 기획 등 어느 단위에서도 이런 노력이 제대로 이루진 것 같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 당원은 적정한 수준의 직접시공비율 의무화 및 다단계 하도급 시 고용의제 등 나름대로 갖고 있는 일정한 대안이 결국 시민들과 건설노동자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해당 의원실이나 당의 정책단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고 당의 조직단위나 각 지역조직들은 이러한 대안을 담은 제도개혁요구나 관련조례제정 등을 매개로 해당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조직적으로 접근해 나가려는 고민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당원은 포항건설노조 투쟁뿐 아니라 “어떤 사안에 대해 전체적인 당적 기획 하에서 의원실과 중앙당 및 지역조직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움직인 적이 없고, 그러다보니 당 내부적인 구심력이란 게 작동할 여지가 없었다”며 “결국 각자 알아서 자신이 관심있는 부분에만 신경쓸 뿐 다른 쪽에는 무관심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으며 당적 통일성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일종의 정파별·지역별 할거체제가 민주노동당의 현 주소인 것”이라고 일갈했다.

    "총괄기획기능 획기적으로 강화돼야"

    이장규 당원은 당적 구심력의 부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이 추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갈지에 대한 기본적인 비전이 제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안사회의 모습 같은 근본적인 주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음 대선 이후 5~10년간 한국사회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진보정당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기본적인 수준에서는 공유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당원은 기본적인 비전이 공유된 상태에서 “당내 각 단위의 유기적 결합을 위한 총괄기획기능이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래 민주노동당이 최고위원회 제도를 도입했을 때 최고위원회에 정치적 책임과 함께 총괄적인 전당적 기획의 임무도 부여했지만 최고위원제도가 일종의 자리나눠먹기처럼 되어버리면서 이러한 총괄기획 부분은 완전히 실종되어 버렸다며 제도를 바꾸든 사람을 바꾸고 보강하든 적절한 방법을 통해 총괄기획기능을 강화함으로써 일정한 시기의 핵심사안에 당내의 모든 단위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도록 해야 하며, 이를 통해 당의 내부적인 구심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장규 당원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전의 공유와 외부적, 내부적 구심력의 확보를 통해 민주노동당을 제대로 된 ‘당’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는 또 하나의 창당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며 “한미FTA 반대투쟁과 내년 대선을 거쳐 2008년에는 제대로 된 진보정당과 산별노조가 이 땅에 들어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는 말로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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